결핍의 틈을 메우는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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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틈을 메우는 이야기의 힘
  • 입력 : 2021. 06.17(목) 15:01
  • 박상지 기자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70년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스테디셀러다. 어린왕자처럼 남녀노소 가리지않고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온 가족이 읽는' 동화 천세진 작가의 '이야기꾼 미로'가 최근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있다. 뉴시스

이야기꾼 미로

천세진 | 교유서가 | 1만4000원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미하엘 엔데의 '모모',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처럼 각 나라마다 온 가족이 함께 읽은 이야기책이 있기 마련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읽어도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남기는 이 책들은 작가들의 고국 뿐 아니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를 굳혀왔다. 최근 국내에서도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동화가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있다. 한때 광주를 무대로 활동했던 천세진 시인의 첫 소설 '이야기꾼 미로'다. 호수마을에 사는 미로가 엄마를 잃은 슬픔에 잠겼다가 이야기꾼을 따라 여러 마을을 여행하는 길에서 꽃과 나무, 버섯 등이 품고 있는 무수한 이야기와 만나고 마침내 눈물호수에 이르러 엄마를 만나는 여정을 따뜻하고 흥미롭게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어느 날 아침 짙은 안개 속에서 등장한 '미로'는 호수세계에서 왔다고 한다. 그가 살았던 호수세계는 한 호수를 중심으로 형성된 여러 마을과 이야기를 글이 아닌 말로 전해주는 이야기꾼이 존재하는 곳이다. 모든 것에는 이야기가 있다고 믿고 이야기를 잃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호수세계 사람들에게 이야기꾼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작은 호수마을에 사는 미로는 엄마를 잃고 슬퍼하던 중 그 마을의 하나뿐인 이야기꾼 '구루' 할아버지에게 그리움거울 호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꽃들의 숨안개를 지나 그리움거울 호수에 가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로는 사랑하는 엄마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호수세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구루 할아버지와 첫 여행을 떠난다.

미로가 살았던 호수세계는 천 시인 특유의 맑고 순수한 문장력과 어우러지면서 동화처럼 펼쳐진다. 커다란 바오밥나무에 집을 짓고 사는 바오밥 호수마을, 무엇이든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고 논쟁이 끊이지 않는 두 얼굴 호수마을, 순록을 따라 여행하는 순록 호수마을 등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다. 마을의 모든 이야기를 보존하는 중책을 맡은 이야기꾼에게도 일반 주민들과 다를 바 없이 희로애락이 찾아오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는 조금 다르다. 두 사람의 여행을 따라가며 구루 이야기꾼이 미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가 지나온 삶의 여정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모든 이야기를 기억할 수는 없기에 바른 이야기를 가려낼 줄 알아야 한다는 구루 이야기꾼의 말은 우리가 진정 기억해야 할 것을 되짚어보게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친 풍요 속에서 무언가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호수세계를 부러워하게 되는 건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는 없는 것을, 우리도 모르게 느껴온 결핍을 그곳에서는 채울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