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홍승의 클래식 이야기>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 Military Marches)과 임을 위한 행진곡 (Marching for Our Beloved)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백홍승의 클래식이야기
백홍승의 클래식 이야기>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 Military Marches)과 임을 위한 행진곡 (Marching for Our Beloved)
  • 입력 : 2019. 10.10(목) 13:01
  • 편집에디터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광주시향 연합공연 (김대성작곡 임을 위한 행진곡 주제에 의한 교향시 '민주' 사진제공 광주시향

지난 9월25일 저녁 8시 독일 뮌헨의 가스타익(Gasteig)센터 칼 오르프 홀(Carl Orff Hall)에서는 광주시립교향악단과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합동 연주회가 진행되었다. 여러 곡의 연주곡 가운데 5·18 광주민중항쟁을 상징하는 곡이며 우리나라 대표적 민중가요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주제로 한 김대성 작곡의 교향시 '민주'(民主)도 연주되었다. 연주회가 끝난 후 리셉션(reception) 참가를 위해 공연장 근처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던 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광주시향 단원들 중 누구려니 하고 듣고 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니 전혀 뜻밖에도 합동연주회에서 같이 연주했던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의 단원들이었다. 이 노래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좋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왠지 느낌이 슬프고(Sad), 비장(Tragic)하다고 했다. 이 사람들은 5.18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리셉션이 진행되는 내내 좀 전에 만났던 독일 사람들의 멜로디가 귓전을 떠나지 않았고 그동안 광주에서 열렸던 5.18 기념식이 생각났고 서울 광화문의 촛불집회가 떠올랐다. 수만 명, 수십만 명이 합창하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언제나 무겁고 비통했었다. 문득 2019년 영국 런던에서의 BBC Proms 마지막 날 공연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하이드 파크에 모인 수만 명의 청중들은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중 '희망과 영광의 나라'(Land of Hope and Glory)를 영국 국기를 흔들며 열광적으로 노래했다. 조상을 잘 만난 그들의 합창은 희망과 자부심이 넘쳤다. '희망과 영광의 나라'는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 슬프거나 비장하지도 않으면서 아름다웠다. 그 결핍도 없고 가파르지 않는 노래 가사(歌詞)의 온전함이 더욱 부러웠다.

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 Military Marches Op.39)은 영국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가 작곡한 관현악을 위한 행진곡집이다. 제1번부터 제6번까지 모두 6곡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중 엘가가 작곡하여 완성한 곡은 5곡이다. 제목인 'Pomp and Circumstance'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델로'(Othello) 중 3막 3장의 한 대사에서 끌어온 것이다. 대강 이렇게 번역이 될 것 같다.

Farewell the neighing steed and the shrill trump,

울부짖는 군마(軍馬)여, 드높은 나팔소리여,

The spirit-stirring drum, th'ear-piercing fife,

영혼을 울리는 북 소리여, 귀를 뚫을 것 같은 피리 소리여,

The royal banner, and all quality,

Pride, pomp, and circumstance of glorious war!

왕의 깃발이여, 영광스러운 전쟁의 자랑도, 찬란함도, 장관도 모두 다 끝이다!

사전적 의미로 'pomp'는 '장관의, 화려한'으로 'circumstance'는 '환경이나 상황'이란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면 '위풍당당'이라는 제목은 직역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의역이라 하겠다. 어쨌든 일반적으로 연주회나 방송에서 이 곡을 소개할 때 '위풍당당 행진곡'이라고 하면 제1번을 말하거나 그 중간부의 트리오(Trio) 선율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영국에서는 이 트리오(Trio)부분의 선율에 '희망과 영광의 나라'(Land of Hope and Glory)라는 제목으로 가사를 붙여 부르고 있으며 영국 제2의 국가로 여겨질 정도로 사랑 받고 있다. 영국 국민들은 이 곡을 듣고 애국심을 느꼈으며 특히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 인기는 절정에 달한다. '희망과 영광의 나라' 가사는 다음과 같다.

'Land of Hope and Glory'

희망과 영광의 나라

Land of Hope and Glory, Mother of the Free,

자유의 어머니, 희망과 영광의 나라

How shall we extol thee, who are born of thee?

당신에게서 태어난 우리, 어떻게 당신을 찬양하리오?

Wider still and wider shall thy bounds be set,

더욱 넓고 더욱 드넓게 당신의 영역 세워지니

God, who made thee mighty, make thee mightier yet,

당신을 강하게 만드신 신께서 당신을 더욱 더 강하게 만드시리

매년 런던에서 열리는 세계적 클래식 축제인 BBC Proms의 폐막 연주회 날에는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맞춰 로열 앨버트 홀과 하이드 파크에 모인 영국 청중들이 위풍당당 행진곡 중 트리오(Trio) 부분에서 위의 가사를 합창한다. BBC Proms에 참석한 영국인들은 이 곡이 연주되면 모두 유니언 잭을 흔들며 노래하기 시작한다. 유니언 잭이 가장 많이 보이지만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깃발도 꽤 보인다. 또한 이곡은 지금도 영국과 미국의 학교 졸업식에서 매우 빈번하게 연주되는 중요 레퍼토리다.

임을 위한 행진곡 (Marching for Our Beloved)

이 곡은 1981년 5월에 김종률(전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이 광주에 있는 소설가 황석영의 자택에서 썼고 가사는 시민사회 운동가 백기완의 장편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황석영이 붙였으며 1980년 5월 27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중 전남도청을 끝까지 사수하다가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과 1978년 말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되었다. 1982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현 국립 5·18 민주 묘지)에 합장하면서 영혼결혼식을 거행할 때 세상 밖으로 처음 공개된 이 노래는 이후 카세트테이프 복사본, 악보 필사본 등을 통해 삽시간(霎時間)에 전국적으로 유포되었으며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곡으로 자리 잡았다. 고인이 된 두 남녀가 세상에 마지막 남기는 '산 자들'을 향한 당부와 독려가 느껴지는 가사들은 온 몸을 바쳐 싸웠던 치열했던 투쟁과 끝내 죽음으로 끝나고 마는 비극적 결말의 절망감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만 또한 이러한 패배와 절망을 딛고 끝까지 앞으로 나아가자는 비장한 의지와 용기, 결단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4/4박자 단조의 행진곡 풍 멜로디는 어렵지 않고 매우 대중적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97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정부 기념일로 지정된 이래 2008년까지 5·18 기념식에서 제창돼 왔다. 그러나 2009년 이명박 정권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식순에서 제외시키고 식전 행사에서 합창단이 부르는 방식으로 변경해 버린다. 이후 야당과 5·18단체 등은 본 행사 식순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반영해 제창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2017년 5월 10일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틀만인 5월 12일 '업무 2호 지시'로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망자를 위한 위로이자 산자를 위한 격려의 노래로서 광주시민들과 국민들의 아픔을 달래주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상징하는 힘을 가진 노래가 되었다. 나아가 세계 여러 나라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서 불리어지는 노래로서 그 위상은 놀라운 변화를 맞고 있다. 2018년부터 시작된 광주광역시의 공식 문화 프로젝트인 '임을 위한 행진곡 세계화 사업'은 이미 완성된 국내외 저명 작곡가 4명의 작품들과 공모를 통해 선정된 4곡의 창작곡들을 광주시립교향악단을 비롯하여 국내는 물론 해외 유수의 교향악단들에서 널리 연주될 수 있는 길을 찾아 이른바 '세계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장기적 플랜을 세우고 노력 중이다. 이 노래는 우리가 비록 야만적 폭력 앞에 일시적으로 패배하였으나 여전히 인간은 존엄하므로 최후까지 희망과 의지와 용기를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아름답고 위대하다. 그래서 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아직도 심정적으로 더욱 극복해야 할 노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완전히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미 우리는 정신적으로는 승리했으므로 더 이상 슬프지 않고 더 이상 비장하지 않게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그 때서야 비로소 저 영국인들의 '위풍당당 행진곡'처럼, 태극기를 휘날리며 기쁨으로 노래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내년 5.18 40주년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영광과 희망의 나라'처럼 불러야 한다. 노래 가사는 비록 가파르나 마음속에는 위로와 희망과 영광이 넘치기를 기원한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 '음악의 힘'이라고 믿는다.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 합창 (2012 프롬스 폐막연주) 사진출처:httpswww.pinterest.co.krpin545146729886078160

엘가 위풍당당 행진곡1 (영국 군악대) httpswww.classicfm.com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지난 2017년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정우택(오른쪽 네번째)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원내대표는 입을 다문채 서 있었다. 뉴시스

홍콩에서 지난 6월 대규모 '범죄인 인도법' 반대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7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탄핵 환영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종로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