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홍승의 클래식 이야기>빈사의 백조 (Dying S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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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홍승의 클래식이야기
백홍승의 클래식 이야기>빈사의 백조 (Dying Swan)
  • 입력 : 2019. 08.22(목) 13:07
  • 편집에디터

빈사의 백조를 연기하는 '울리아나 로파트키나'(마린스키 발레단)

빈사의 백조 (Dying Swan)

'빈사(瀕死)의 백조(白鳥)'라는 유명한 솔로 발레(solo ballet)작품이 있다. 1905년에 안무가인 미하일 포킨(Michel Fokine)이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를 위해 만든 독무(獨舞) 작품으로 작곡가 까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ans)의 '백조'를 음악으로 사용했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에서 초연되었다. 파블로바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으며 '빈사의 백조'는 전 세계 발레리나들의 로망이 되었다. 생상스는 본인이 작곡한 동물의 사육제(Carnival of the Animals)를 죽기 전까지 대중에게 발표하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제13악장 '백조'만은 출판을 허용하고 대중에게 공개했을 정도로 애착을 가진 곡이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이곡은 그 아름답고 우아한 멜로디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발레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레리나 중 한 명으로 칭송받고 있는 '안나 파블로바'는 20세기 초 전 세계의 무대를 투어하며 발레의 대중화에 기여하였고 오늘날 유럽과 북미 발레의 발전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그녀는 고전 발레의 아름다움을 세계 모든 관객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을 예술적 신념으로 삼았으며 본인의 출신 성분과 같이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공연에는 특별히 헌신적이었다. 그동안 부르조아(자본가)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귀족적 예술장르 '발레'를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교감하고자 일생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생전에 그녀가 춤추었던 '빈사의 백조'처럼 그렇게 화려하게 날개를 펴다 처연히 짧은 인생을 마감한 안나 파블로바는 오늘날까지도 세계 발레 계(界)의 여제(女帝)로 기록되고 있다. '빈사의 백조'는 가녀리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파블로바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다. 길고 여린 팔을 흐느적거리며 죽어가는 백조를 표현하는 것을 볼 때면 정말 한 마리의 백조가 눈앞에서 애처롭고 처절하게 날개 짓을 하다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 '빈사의 백조'는 파블로바의 대표작이자 상징이 되었다. 한마디로 파블로바는 '백조의 화신'이었다.

러시아에서 태어난 안나 파블로바는 세탁 노동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성장한다.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을 깊이 사랑했고 헌신을 다했다. 파블로바는 여덟 살 때 어머니와 함께 마린스키 극장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처음 보고 난 후 발레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발레리나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처음에는 너무 어린데다 비쩍 말랐다는 이유로 황실발레학교로의 입학은 거절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운명적인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녀의 특별한 재능을 간파한 프랑스 출신의 거장(巨匠)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의 눈에 들게 된 것이다. 이렇게 10살 때부터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파블로바는 마르고 가녀린 몸매 탓에 '빗자루'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무시 받았지만 이내 그녀만이 가진 천부적인 재능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젤',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등 고전발레의 명작들을 주로 공연했으며 유럽, 미국, 인도, 중국, 일본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투어를 진행했다. 더구나 그녀가 세계 투어 공연에 집중하던 시절은 제1차 세계 대전이 한창 이던 때로 유럽 전역을 투어하며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공포와 절망감을 발레로서 달래주려 최선을 다했다. 파블로바는 영국(英國) 발레의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계 3대 발레단에 꼽히는 영국 '로열 발레단'(Royal Ballet)의 저명한 안무가였던 '프레데릭 애쉬톤'(Frederick Ashton)이나 영국의 전설적 발레리나 '알리샤 마르코바'(Alicia Markova) 등 수많은 안무가와 무용수들이 파블로바의 공연을 보고 무용수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평생 '빈사의 백조'를 4천회 이상이나 공연했던 발레 여제(女帝)의 마지막은 너무나 허망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불우아동을 위한 공연을 위해 열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파블로바의 열차에 문제가 생기자 다음 열차를 기다리기 위해 잠시 밖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대기한 것이 독감에 걸리는 원인이 된다. 거기에 무리한 공연 일정의 강행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폐렴과 늑막염 증세까지 겹치게 되자 의사는 당장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리고 앞으로의 발레 공연은 모두 중지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한다. 그럼에도 파블로바는 "발레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며 수술을 거부하고 바로 다음 일정을 강행했다. 결국 1931년 1월 23일 헤이그의 한 호텔방에서 그녀의 상징과도 같았던 순백색(純白色)의 '빈사의 백조' 옷을 가슴에 품은 채 파블로바는 병사(病死)하고 만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직후 '빈사의 백조' 공연이 예정되어 있던 헤이그의 극장에서는 '빈사의 백조'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그녀가 춤추었을 무대를 따라 스포트라이트만이 음악에 맞추어 무대 위를 비추었고 음악이 끝나자 관객들은 모두 기립하여 그녀를 추모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독자 분들에게 꼭 한번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은 발레 영상중의 하나가 이 슬픈 사연의 '빈사의 백조'다.

빈사(瀕死)의 지역 클래식

'빈사의 백조' 영상을 볼 때마다 모든 인생의 마지막은 이토록 가냘프고 쓸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빈사의 백조'의 끝은 언제나 나에게 쓸쓸한 비애감과 허망함을 안겨주었다. 노력하고 갈망하고 처절하게 살아내지만 끝내는 허망한 인간의 삶이 안타깝다. 요즘 우리 광주의 지역 경제가 너무나도 어렵다고 한다. 자영업자 자진 폐업율, 시 내(市內) 사무실 공실률 전국 최고치 등 수많은 경제지표는 최악의 지역경제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사실상 빈사(瀕死) 상태의 지역경제 상황은 곧 바로 지역 클래식계로 연결된다. 일반 시민들에게 예술이라는 것은 민생고가 해결된 후에야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당연히 경제가 어려워졌을 때 가장 먼저 외면당하는 분야 역시 예술 쪽이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관객 개발이 어려운 분야인 클래식 공연의 관람객들은 더욱 급감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겠다는 아이들도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니 이것 역시 지역 음악가들의 생활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예술가들이라고 물만 먹고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 텐데 이 총체적 난국이 정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광주의 대표적 클래식 공연 단체인 광주시립교향악단은 창단된 지 43년이 지났고 그보다 훨씬 이전 처음 클래식 음악이 이 지역 대중에 노출되기 시작하던 1960년대부터로 따지자면 광주의 클래식은 반세기 이상의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고 한때는 전국에서 선도적 지위에 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역사와 전통이 무너져가는 지역 경제 앞에서는 너무나 무력하다. 이전까지 그나마 유지되던 지역의 클래식 고정 관객들의 수는 날이 갈수록 점차 줄고 있다. 내부적인 원인분석 중 한 가지는 지역 경제의 어려움이 시민들이 문화생활 전반에 서서히 반영되고 있는 결과라는 것이다. 그나마 공공 시립예술단체들은 훨씬 사정이 나은 편이고 민간 클래식 공연 단체들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사실상의 존폐 위기에 있다. 지역 클래식 기획사들의 형편 또한 말 할 것도 없다. 해마다 지역 음악대학에서 배출되는 젊은이들은 갈 곳이 없고 규모가 작은 대학의 음악학과는 아예 폐과(廢科)되고 있으며 시민들 대다수는 클래식 음악에 아무런 관심조차 없다. 바로 이 대한민국의 '문화수도',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라는 곳에서는 음악가, 공연기획자, 관객, 학생, 지역의 경제여건까지 무엇 하나 희망적인 것이 없고 총체적으로 이토록 퍼펙트하게 최악의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이제 한마디로 광주 클래식의 평범했지만 평화로웠던 그동안의 일상은 완전히 끝났다고 봐야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지역의 안나 파블로바(Anna Pavlova)를 기다린다. 이 답도 없이 지속되고 있는 절망적 상황에서는 어느 슈퍼스타의 극적인 출현만이 이제 마지막 남은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간성이 말살되는 살육의 현장인 전쟁통속에서도 빛났던 파블로바와 같은 천부적 재능과 예술성과 고귀한 헌신을 보여 줄만한 지역 클래식계의 영웅(英雄)을 기다린다. 우리 지역은 지금 전쟁 중도 아니고 다만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을 뿐이지 않은가? 어딘 가에서는 반드시 우리의 파블로바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사연이나 형편으로 인해 지금은 남들에게 '빗자루'라는 놀림감으로 남아있다거나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아 눈에 띄고 있지 않을지 모르지만 어느 날 신(神)이 정한 그 시간이 되면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날 보석 같은 천재들이 어딘가에는 숨어 있을 것이다. 지역의 클래식계에서 이제 마지막 희망을 걸고 해야 할 일은 광주의 파블로바를 찾아 나서고 지원해서 키워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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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파블로바 (Anna pavl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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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