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한의 동시대미술 수첩〉동시대미술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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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민한의 동시대미술 수첩
장민한의 동시대미술 수첩〉동시대미술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다.
우리 공동체에 대한 이해 - 동시대미술을 접근하는 핵심 통로||동시대미술 작가 6명이 바라보는 ‘우리’는 누구인가?
  • 입력 : 2019. 08.13(화) 14:41
  • 편집에디터

이번 글에서는 8.15 광복절을 기념하여 동시대미술 작가들이 '우리'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동시대미술의 목표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과거 현대미술이 보여주려고 했던 미적인 형식을 넘어서서 동시대미술은 자신의 정체성, 몸, 역사, 장소, 종교, 생태 등 수 많은 주제에 대해 관람객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려고 한다. 이 주제 중 하나인 '우리', 즉 '공동체 정체성'의 문제를 동시대 작가 6명의 작품을 통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동시대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 '그 우리'에 대한 이해가 해당 작가의 작품을 올바르게 감상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동시대 작가들은 미술 자체가 아니라 미술 밖의 세상에 관심을 갖고, 세상과 소통하려고 한다. 다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은 '미술'이라는 효과적인 무기를 가지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작가들은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어떤 매체로, 혹은 어떤 양식으로 나타내야 관람객들에게 공감을 얻을 것인가?' 에 대해 항상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보면, 동시대 작가들은 베스트셀러를 열망하는 출판사 편집자, 혹은 클라이언트를 감동시켜서 주문을 따내려는 광고 연출자와 별반 차이가 없다. 출판사 편집자가 주제에 제한이 없는 것처럼 동시대미술도 주제에 제한이 없다. 그렇다하더라도 미술 이론가들에게 동시대 미술의 대표 주제를 꼽아보라고 요구한다면, 그들 중 반 이상이 작가 정체성의 문제를 꼽을 것이다. 이 주제는 60년대 페미니즘과 미국 시민권 운동 이후 지금까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80년대 후반 이후부터 20세기가 넘어서까지 인종, 민족, 젠더, 성소수자 등의 측면에서 규정된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세계 곳곳에서 제작되었다. 이 작품들은 서구의 남성중심주의 미술계에서 소외된 인종, 민족, 젠더 등의 삶의 방식과 그 가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서구 이외의 지역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제에 목말라 했던 서구 미술계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 진행되는 비엔날레 전시가 낯설고 이해하기 힘든 이유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소수, 혹은 소외 집단의 삶의 가치와 감수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기 때문이다.

동시대미술이라고 항상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해당 작품의 맥락과 미적 전통을 모르기 때문에 낯선 것뿐이다. 작품 옆에 붙은 설명문을 읽거나 도슨트의 설명을 잘 들으면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결국 언어 등의 다른 소통 영역과 마찬가지로 독자의 관심과 공감의 문제일 뿐이다. 특정 작가의 작품 의미를 이해하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그 작가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으로 자신을 귀속시키는 '우리'를 이해하는 방법이다. 동시대 작가들은 자신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집단을 염두에 두고 주제를 찾으려고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소통 방식을 찾기 때문이다. 마치 수필가가 글을 쓸 때 그 글의 독자를 생각하고 쓰듯이, 동시대 작가는 그가 소통할 관람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주제와 소통 방식에 관심을 갖는다. 해당 작품과 대화할 '우리'가 누구인지 파악한다면 훨씬 빠르고 수월하게 그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는 서양화, 한국화, 사진, 설치, 웹툰 등 각기 다른 장르에 정통한 동시대 작가 6명의 사례를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동시대미술에서 '공통체 정체성'이 왜 중요한지 고찰해보려고 한다.

강운 작가 - DMZ에서 살을 에는 고통과 좌절을 공감할 수 있는 '우리'

강운-철책단상,2019

<철책 단상>(캔버스에 콘테 및 오일, 2019)

강운 작가는 20 여 년 동안 <순수형태>, <공기와 꿈>, <물 위를 긋다> 시리즈 작업을 거치면서 사실적 기법의 구상 작업과 자발성에 기반을 둔 추상 작업을 해왔다. 그의 최근 작품 <철책 단상>(2019)을 보면 그가 소통하고자 하는 '우리'가 누구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직접적으로 '우리'를 주제로 삼고 있지 않지만, 그가 그려낸 DMZ의 '철책' 이미지를 보면 그가 염두에 둔 '우리'를 알 수 있다. 작품에 나타난 '철책'은 굵고 엉클어진 곡선들로 나타나고 있다. 어떤 작품은 마른모 형태와 복잡한 곡선으로 화면 전체를 숨 막히게 채워 놓거나, 혹은 또 다른 작품은 좀 더 추상화하여 어지러운 곡선들이 무한 반복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작가는 '캔버스의 선과 색을 통해 분단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상처와 기억을 나타내려고'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가 소통하기 희망했던 관람객이란 33년 전 혹한 속 경계근무 때 살을 에는 작가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고, 좌절 속에서 바라볼 밖에 없는 철책이지만 반드시 제거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우리'이다. 그 작품을 보면서 즉각적인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 관람객은 강운 작가가 생각하는 '우리'에 속하는 사람일 것이다.

송필용 작가 -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굽힘없이 삶을 이어가는 '민중'

송필용-역사,2018

<역사>(캔버스에 오일, 2018)

송필용 작가는 산, 강, 폭포, 바위 등 자연 대상을 20년 이상 줄곧 그려오고 있다. 그는 그 대상들의 기운을 잡아내고, 그것에 빗대어서 우리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다. 작가는 최근작 <역사>에서 폭포수의 거센 물줄기 아래서 흔들림 없이 버티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거친 마티에르와 쭉쭉 뻗은 붓질을 이용하여 그 에너지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이 에너지를 그 자신이 생각하는 '우리'의 저력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우리'는 조선 후기 이래로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굽힘없이 삶을 이어가는 '민중'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자신의 이익 추구를 최고 가치라고 여기는 관람객들도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생각지 못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매리 작가 - 거대 서사 뒤에서 스러져간 개인들에서 발견한 '우리'

이매리- 지층의 시간 2018

<지층의 시간>(영상설치, 2018)

이매리 작가는 주로 '하이힐' 이미지가 지닌 상징성과 시간성을 이용해 거대 서사 뒤에 묻혀 있던 개인들의 발자취를 끄집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18년 비엔날레 기간에 무각사 로터스 갤러리에서 전시된 <지층의 시간> 작품은 5.18 희생자 유해 발굴현장 다섯 군데의 흙을 유리박스에 담아 놓은 설치 작품, 5.18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에 대한 영상기록, 그리고 에즈라 파운드의 시로 구성된 복합 영상 설치 작업이다. 작가는 5.18 당시의 흙, 당시의 개인 기록 영상을 보여주고, 에즈라 파운드의 시 낭송을 통해 그 당시 희생당한 개인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 이매리 작가는 거대 서사 뒤에서 스러져간 개인들 하나하나에서 작가 자신의 '우리'를 찾고 있다. 우리가 그의 '우리'를 파악한다면 그의 또 다른 작업에 접근하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이세현 작가 – 작가가 바라보는 특정 서사를 공유한 동시대인

이세현-경계-군함도 2017

<경계-군함도>(잉크젯 프린트, 2017)

이세현 작가는 역사적인 장소를 사진 촬영을 통해 기록하는 작업을 한다. 작가는 그 장소에 놓여 있던 돌을 골라 하늘로 던지고, 땅에 떨어지기 전의 찰나 순간을 역사적인 피사체와 동시에 화면에 포착한다. 작가는 이 작업을 통해 해당 대상의 역사적 혹은 오늘날의 의미를 묻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그 돌은 '이전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 그리고 그 이후의 시간까지 오랜 시간 그 곳에서 머물러 있으면서 역사를 지켜보는 감시자이며 관찰자'이다. 작가는 그 돌을 통해 자연과 대비되는 그 장소의 역사적 사건 전체를 그려보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가 염두에 두었던 '우리'는 작가 본인이 바라보는 특정 서사를 공유한 동시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정광희 작가 - 먹의 번짐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해 탐색

정광희-나는 어디로 번질까,2018

<나는 어디로 번질까>(한지에 수묵, 2018)

정광희 작가는 한지 위에다 먹물이 들어 있는 달 항아리를 깨는 작업을 통해 먹과 한지의 물성과 정신을 보여준다. 작가는 최근작 <나는 어디로 번질까>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개인과 '우리'의 관계를 먹과 종이에 빗대어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번짐'을 깊은 사유이자 무한한 자유로 보고 있다. 달 항아리가 깨짐으로써 그 속에 있던 먹이 한지에 번지는 것처럼, 나의 깊은 깨달음이 너에게 그리고 우리, 더 나아가 이 사회로 퍼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번짐' 현상은 이 순간에도 순환하는 공기처럼, 끊임없이 자연과 인간사의 각 방면에 영향을 미치고, 소리 없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위대한 힘이라고 작가는 보고 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개인의 성찰과 공동체의 관계를 탐색하고 있다.

황중환 작가 - 너와 나를 배려하는 성숙한 공동체로서 '우리'

황중환-배려, 2018

<배려> (인디안 잉크 혼합, 2018)

황중환 작가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를 통해 각박한 일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웹툰 작업을 주로 해왔다. 작가는 나와 네가 다르지 않다는 '역지사지' 입장에서 '우리'를 생각하고 있다. 나와 너는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고, 서로를 포용할 수 있어야 성숙한 공동체가 된다는 입장에서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다. 작가는 <배려>라는 작품에서 "새들도 쉬어갈 수 있는 상상 속의 나무 아파트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배려의 미덕을 갖고 산다면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우리'는 너와 나를 배려하는 성숙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장민한 (조선대학교 교수, 미학)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