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패러다임의 변화로 동시대미술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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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미술 패러다임의 변화로 동시대미술을 바라보다
  • 입력 : 2019. 02.21(목) 17:00
  • 편집에디터

유르트 안의 여인들

프롤로그

한 달 동안 우리 미술계에서 개최된 행사들 중 이슈가 될 만한 전시 한 두 개를 선택하여 그와 관련된 동시대미술 이슈를 설명하고, 그 전시의 미학적 가치를 분석하는 칼럼입니다. 우리 지역에서는 아시아문화전당 전시, 광주비엔날레, 미디어아트페스티벌 등 동시대미술 전시가 국내 어느 도시보다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민들이 올바로 동시대미술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안목을 키우는 데 기여하길 기대합니다.

장민한 교수

미술 패러다임의 변화로 동시대미술을 바라보다

오늘날 제작되는 미술은 현대미술(modern art)라고 하지 않고 동시대미술(contemporary art)라고 한다. 이 둘은 다른데, 둘을 혼동하기 때문에 관람자는 관람자대로 광주비엔날레, 아시아문화전당 등의 전시가 어렵고 재미없다고 불평하고, 기획자는 기획자대로 좋은 전시를 했는데 관람객이 이해 못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전시기획자나 관람자 모두 미술 패러다임의 변화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이 예술가의 독창성을 탐색하는 장이라면 동시대미술은 다양한 이야기를 소통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미술 패러다임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간단히 정리해보자. 첫째, 오늘날은 무엇이든지 미술이 되는 시대이다. 코카콜라병, 벽돌더미, 나뭇조각 등 무엇이든지 미술이 될 수 있다. 현대미술은 물감, 돌, 흙 등의 매체를 사용하여 예술가 자신만의 심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에 반해 동시대 미술은 효과적인 소통을 목표로 한다. 작가마다 이야기하고 싶은 독자적인 주제가 있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어떠한 재료도 사용할 수 있다. 전통적 매체이든 일상용품이든 무엇이든지 작품의 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동시대 작가는 자신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재료를 이용해서 작품을 만들고, 이를 통해 세상을 작가의 시선으로 새롭게 보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 작가는 관람객에게 심미적 경험을 주지 않아도 된다. 작가가 의도한 소통에 성공하면 그만이다. 만약 비엔날레 전시관에 와서 작품의 제목도 보지 않고, 이것이 나에게 미적 경험을 주었으니 훌륭한 작품이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여전히 모더니즘 패러다임으로 미술을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동시대미술은 효과적 소통에 중점을 두었지, 그 소통 주제 중 어떤 것이 더 우월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현대미술이 미적으로 표현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면, 동시대미술은 작가 자신이 관심이 있는 주제를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소통에 효과적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그 소통 주제 중 어느 특정한 것이 최고라고 말할 수 없다. 동시대 작가는 여성주의, 생태주의, 맑스주의, 민족주의 등 각기 다양한 입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이 입장들 중 어느 입장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에서 동시대미술은 다원주의를 지향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야기를 얼마나 설득력 있고, 독창적으로 소통했는지가 문제이지, 특정 사상이나 매체에 기반을 두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아시아문화전당, 광주비엔날레, 광주시립미술관, 광주문화재단에서는 매해 수많은 동시대미술 전시를 개최한다. 기획자들은 동시대미술은 일반 관람객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관람객 수가 적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관객들은 도외시하고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전시하는지 모르겠다. 대부분의 동시대미술 작가가 희망하는 소통은 심오한 소통이 아니라 일반 관람객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소통이다. 특정 작품을 일반 관람객이 이해 못한 것은 해당 작품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십중팔구는 그 표현방식이 우리 문화권에서 낯설기 때문이다. 공공기관의 기획자들은 이 낯선 표현 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관람객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작품을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전시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다원주의 시대에는 반드시 감상해야할 절대적 가치를 지닌 미술작품은 없다. 관객들에게 제대로 소통시킬 자신이 없는 작품은 전시하지 말아야 한다. 내 주머니에서 전시 비용이 나간다면 그 전시를 할 것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봐야 한다.

동시대미술의 목표는 '미적인 것의 창조와 감상'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확장과 효과적인 소통'이다. 따라서 동시대미술 전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미적인 감동이 아니라 타자가 세상을 보는 독창적인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동시대미술 전시는 미적 경험을 제공하는 장소라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 장소, 그리고 타자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장소가 된다. 아무리 외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일반 관람객들에게 통찰과 공감이라는 목표를 충족시킬 자신이 없다면 그 전시는 개최해서 안 된다.

오늘날 미술 전시를 미술 패러다임의 변화의 관점에서 접근해보면, 그 동안 미술 감상과 전시, 더 나아가 다양한 미술제도에서 발생하는 혼란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 미술 주제의 다양성을 설명할 수 있고, 모더니즘 패러다임에서는 적대적인 관계로 생각해왔던 미술과 비즈니스의 관계를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미술작품을 고독한 아웃사이더의 창작의 결과로서 보지 않고, 작가와 이론가 등의 협업이라는 측면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미술교육, 미술비평, 미술관 제도 등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칼럼에서는 한 달 동안 아시아문화전당, 광주비엔날레, 광주시립미술관, 광주문화재단 등에서 개최된 대형전시들, 그리고 사립미술관이나 갤러리 등의 작은 전시들 중에서 동시대미술의 관점에서 이슈가 될 만한 전시, 한두 개를 선별하여 동시대미술의 관점에서 그 전시의 미학적 가치와 그 의미를 분석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이 동시대 전시를 올바르게 관람하고 즐길 수 있고, 이와 동시에 효과적인 소통이 될 수 있는 차원 높은 전시들이 우리 지역에서 많이 개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자 장민한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아서 단토의 예술철학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 서울국제아트비엔날레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현재 조선대 미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시아현대미술 프로젝트', '한국추상회화 1958∼2008', '앤디 워홀' 등의 전시를 기획했고, 현재 현대미학, 동시대미술 비평방법론, 미디어아트 이론 등을 연구하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현재 진행중인 '마나스'에 전시된 '하르메토브 피르카트, 어느날' 키르기스공화국 문화정보관광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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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