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를 생각 해본다. 병약한 남편을 위해서 겨울에도 먹을 수 있도록 부뚜막에 심은 채소로 ‘부추’라고 한다. 소나무 잎을 닮았다고 ‘솔’ 이라 부르기도 한다. 정력을 좋게 한다고 ‘정구지(精久持)’ 양기를 돋군다고 ‘기양초(起陽草)’, 남편에게 먹였더니 힘이 좋아져서 부인이 집을 부수고 심었다해서 ‘파옥초(破屋草)’, 너무 힘이 세어져 남의 집 담을 넘는다고 ‘월담초(越墻草)’ 장복하면 오줌 줄기가 벽을 뚫는다는 파벽초(破壁草) 등 지방마다 각기 다른 이름이 정겹고 사랑스럽다. 부추는 오색(五色)과 오덕(五德)을 가졌다고 한다. 줄기가 희어 구백, 싹이 노랗다고 구황, 잎이 푸르러 구청, 뿌리가 붉어 구홍, 씨앗이 검어 구흑이라 하는데 오방색을 갖췄다.
제1덕은 날로 먹어도 되고, 제2덕은 익혀 먹어도 좋고, 제3덕은 절여서도 먹을 수 있고, 제4덕은 오래 먹을 수 있어 더욱 좋고, 제5덕은 매운맛이 변하지 않는 것이 오덕이다. 불가에서는 오신채(五辛菜)의 하나로 스님에게는 금기 채소이다. 법망경(梵網經), 수능엄경(首楞嚴經)에 음란한 마음이 생기고, 분노의 마음이 커진다고 먹지 말라 하였다. 스스로 먹는 자는 경구죄에 해당된다.
부추는 22종이 재배되고 있다. 산야에 야생하는 산부추, 두메부추, 한라부추 등 24종이 국가표준식물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부추는 하얀 꽃이 피지만 ‘산부추’는 꽃이 진보라색이고, 꽃과 줄기가 휘어져서 멋들어진 자태이다. 그리고 꽃이 아래서 피어 올라오면 ‘산부추’이고, 위에서 피어 내려가면 ‘참산부추’이다. ‘두메부추’는 꽃이 연보라색으로 꽃과 줄기가 거의 붙어있으며 잎이 넓다. 부추 중에 가장 맛있는 것이 두메부추(Allium senescens L.)이다. 두메부추는 높은 산골짜기에서 서식하는 부추라는 뜻이다. ‘두메’는 산골을 의미하지만 식물명에서는 보통 고산지대의 식물을 뜻한다. 구례를 두메산골이라고 한다. 두메는 두 개의 ‘뫼(山)’가 있다는 뜻으로 지리산과 백운산이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포옹하듯 만나며 봉오리가 첩첩이 포개어져 있으니 두메산골이 맞다. 두메산골이지만 아쉽게도 지리산에는 두메부추가 서식하지 않는다.
울릉도를 비롯한 강원도 등지의 고산지대에 서식하며 산림청에서 지정한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이기도 하다. 속명 알리움(Allium)은 라틴어로 ‘맵다’ ‘냄새가 난다’라는 뜻이다. 파뿌리와 비슷하게 비늘줄기가 있고, 넓은 잎이 뿌리에서 모여서 돋아난다. 꽃줄기는 30-50㎝로 곧게 자라고, 줄기 끝에 둥근 공 모양의 연보라색 꽃이 핀다. 부추는 간(肝)의 채소라 하여 민초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알카리성 식품으로 인삼녹용과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 새봄의 정기를 받고 올라온 잎줄기를 고추장에 버물리면 톡 쏘며 아린 맛, 데치면 부드럽고 상큼한 맛이 일품이다. 부추전에 막걸리 한잔은 삶에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어준다. 가오리찜에 곁들어 먹는 맛, 돼지국밥에 부추무침, 섬진강 재첩국에 부추의 사각거리는 맛 등 다양하고 운치가 있다.
두메부추의 잎은 두텁고 1㎝정도로 넓다. 잎이 넓지만 부드럽고, 겔이라는 수분이 많아 씹히는 맛이 좋다. 알싸한 향과 매콤하면서 달착지근한 맛이 풍미를 더한다. 알리신(Allicin)성분은 비타민 B1의 흡수를 도와 뇌신경과 말초신경을 활성화하여 몸을 따뜻하게 해준다. 오장(五臟)의 기능을 진정 시키고, 간에 쌓인 독을 풀어주며 살균효과도 높다. 위장을 자극해 입맛을 살려 식욕을 왕성하게 한다.
나트륨 성분을 몸 밖으로 배출 시키니 하늘이 내린 명약이고,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좋은 채소이다. 잎이 넓고 둥근 꽃이 풍성하여 화분에 심어도 관상가치가 크다. 타원형 락소분에 비늘줄기를 모아서 잎이 나오기 직전에 심는다. 햇빛을 적절하게 보여주고, 5월께 잎을 한번 잘라주어도 무방하다. 정원에 심어 조금씩 베어서 그때그때 먹는 맛이 새롭고, 꽃이 필 때는 꽃도 보고, 건강도 챙기는 일석삼조를 효과가 있다. 봄에 비늘줄기를 배수가 잘되고 거름기가 많은 흙에 심으면 4월께부터 수확할 수 있다.
15x10㎝간격으로 3~4월께 심으면 고온장일인 6월 중순경에 꽃눈분화가 되고, 8월경 추대되어 꽃이 핀다. 꽃을 보려면 5월말까지만 수확한다. 멸종위기 식물이지만 종자번식법이 개발돼 재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종자와 종묘 구하기도 쉽다. 10월 중순 열매가 익으면 채종, 파종하거나 냉장 보관했다가 이듬해 4월에 파종한다. 발아는 잘되지만 발아 전과 후에 건조하지 않도록 물을 제때에 잘 주어야 한다. 꽃말이 부추는 ‘무한한 슬픔, 산부추는 ‘신선’이며 두메부추는‘좋은 추억’으로 각각 다르다. 멋진 꽃과 탁월한 효능에 맛도 좋은데 스님들은 오신채라고 못 먹게 하니 슬픈 일인가. 오래 먹으면 힘이 좋아지는데 쓸데가 없어서 슬픈 일인가. 이래저래 무한한 슬픔이로다. 신선과 같은 고결한 모습인가. 2018년을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염원한다. 가을빛에 원망, 미움, 괴로움, 아픔 상념을 털고, 따스한 정을 담아보고 싶다. 가을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가을의 차분함과 풍요를 모아 추억으로 만들어가야겠다.
성은 배씨, 이름은 초향이라
부침개.추어탕 재료로 활용
호랑나비는 꽃향기에 이끌려 왔을까. 잎 향기에 반하여 왔는가. 경계가 모호하다. 시들어가는 꽃에 잎줄기도 퇴색되어 가지만 오묘하고 짙은 향기는 가을빛을 타고 왔다. 향기를 따라 이름을 알아본다.
그래, 성은 배씨에 이름은 초향 이라 했다. 참으로 예쁜 이름이다. 정겨운 이름이로다. 향이 짙어 어떤 식물향기도 물리친대서 ‘배초향(排草香)’ 이라 한다. 꽃보다도 잎에서 나는 향기가 좋은 토종허브로 꿀풀과에 속한다.
‘방앗잎’ ‘방아’ 라고도 하는데 ‘방아풀’과 다르다. 대한민국 전역에 서식하는 다년생으로 종자번식이 잘되고, 뿌리에서 나오는 원줄기는 1m 내외로 자란다. 매운탕과 추어탕의 비린내를 잡아주고, 부침개의 고소한 맛을 더해주는 알싸하고 톡 쏘는 맛이 천하일미(天下一味)중의 하나다. 정원에 한 두 포기 심어서 잎은 방향제로 추어탕이나 부침개에 사용하고, 꽃 필 때는 꽃을 감상하기 무난하다. 햇빛을 좋아하니 양지쪽에 심어야 된다.
생약명으로 ‘곽향(藿香)’이라 한다. 콩잎을 닮았다고 콩잎 곽(藿)자를 쓰는데 성질이 따뜻하고 기를 잘 통하게 하므로 소화, 구토, 복통, 여름감기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암세포 성장분화를 저해하는 루테인(Lutein)과 로즈마린산도 함유되어 있다. 토사곽란에 먹는 곽향정기산을 만드는 원료로 유명하다. 조선 철종때 이원명의 ‘동야휘집(東野彙輯)’에 의미 있는 이야기가 있다.
허준의 청년시절 의방에 노인이 와 있었다. 노인은 출산하다 정신을 잃은 환자의 처방을 “곽향정기산 3첩을 지어주라” 했다. 다음날 열병 환자에도에도 역시 같은 처방을 하라고 하였는데 모두 나았다. 이렇게 신묘한 곽향정기산은 곽향을 주원료로 하여 차조기 잎, 백출, 반하 등으로 조제하는데 물갈이, 배앓이, 장염과 찬음식으로 배탈이 날 때에도 효과가 있다.
꽃말이 ‘향수’ 라고 한다. 향이 좋아 향수(香水)를 만든다는 의미보다 고향의 추억을 그리는 향수(鄕愁) 의미가 적절한 표현 이다. 가난한 시골에서 농사짓고, 뛰놀던 고향의 아련한 향수가 그리운 사람들이 많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잘 살게 되었지만 잊을 수 없는 것이 고향의 향수이다. 가장 그리운 것은 어머니의 손맛이다. 어머님의 땀 냄새와 보리밥에 애호박 된장찌개, 방앗잎 부침개의 소박한 밥상이 그립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냄새는 어머니의 냄새’라고 하는 말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경남 과학기술대학 겸임교수
한국야생화 사회적협동조합 본부장
전 구례군 농업기술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