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희용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
아르브뤼는 전통적 예술 교육을 받지 않은 작가나 정신적, 신체적 장애인의 작품을 지칭한다. 이 작품들은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오는 본연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비정상적이거나 기이한 형태지만 더욱 독창적이고 본능적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아르브뤼는 단순한 창작을 넘어,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전시회 직후 한 지역 기업 대표가 광주문화재단에 기부 의사를 밝혔다. 주홍 작가의 미술 치유 활동에 감명받아, 치유 프로그램이 지속되길 바란다는 의미다. 예술치료학 박사인 주홍 작가는 발달 장애인에게 미술 치유 프로그램과 ‘아르브뤼 전시’를 운영했다. 또한 오월 어머니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오월어머니들의 그림농사’ 프로젝트도 매년 운영하고 있다.
소화천사의집 발달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살고 있다. 아르브뤼 작가가 된 이들은 전시회 오프닝에서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났다. 어눌한 말투와 수줍은 얼굴로 떠듬떠듬 전시 소감을 밝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면을 그려놓은 작품들이 갤러리 벽면 가득히 걸렸고 작품 아래에 작가의 이름들이 보기 좋게 붙여져 있었다. 함께한 이들은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가족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미술 전시를 통해 세상과 단절된 이들이 건강한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발판을 찾은 것이다.
‘오월어머니들의 그림농사’는 1980년 5월 가족을 잃은 어머니들의 상처를 보듬기 위한 미술 치유 활동이다. 어머니들은 매주 스케치북 위에 그림 농사를 짓는다. 가족에게 차려주는 밥상, 보름달 같은 내 얼굴, 한복 입은 자화상 등 다양한 주제로 살아온 이야기와 묵혔던 감정을 그림으로 풀어냈다. 한편의 그림이 완성되면 그림을 매개로 대화의 물꼬가 트인다. 마음이 동요되면 노래도 하고 춤도 춘다. 서로 지난 세월 할 이야기가 많아진다. “나, 인기 좋았어. 동네에 한복 입고 나가믄 휘파람 소리 좀 들었제” 어렸을 적 엄마가 지어준 한복을 그리다 웃음꽃도 피운다. “어머니들. 잘 살아오신 거예요.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자유로운 세상에 살아요. 감사합니다!” 주홍 작가는 인사를 건넸다. 모두 치유의 과정이다. 이 치유 안에는 미술이 있다. 궁극에는 예술 치유에 앞장서 온 주홍 작가에게 고맙다. 예술가가 선행을 지속할 수 있게 도움을 준 메세나 운동에 박수를 보낸다.
문화예술 메세나는 예술활동에 대하여 직접 후원하는 제도이다. 광주문화재단을 통하면 지정 기부금을 전액 예술가에게 전달하며, 기부자에게는 세제 혜택을 준다. 기부는 예술의 힘을 확장하는 계기가 된다. 앞으로도 더 많은 기부가 이어지길 바란다. 해외에서는 기업 사회 공헌 활동과 미술 치유 프로그램을 연계해 사회적 약자에게 제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기부를 통해 예술이 가진 사회적 역할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희망을 이어가는 예술이 될 수 있다.
올해 광주 사랑의 온도탑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2월 5일 기준 116도를 돌파하며 59억원의 성금이 모금됐다. 최근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아 모금이 어려우리라 예상했다. 기후 위기와 재난, 사고 위험이 늘어나 시민의 몸과 마음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광주는 시민과 기업, 기관과 단체가 한마음이 돼 사랑의 온도를 높였다. 이것이 바로 광주 정신이다.
이번 미술 치유 기부 사례가 그 시작이다. 예술이 가진 치유의 힘과 나눔의 가치가 더 많은 이들에게 닿길 바란다. 기부로 쌓인 따뜻한 마음이 광주를 더욱 건강하고 포용력 있는 도시로 만들 것이다. 예술은 단순한 창작이 아니라, 사회를 치유하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따뜻한 힘이 될 수 있다. 올 한 해 예술의 치유력을 강화할 수 있는 메세나 운동이 더욱 활발해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