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131-1>“겁나 좋제라”…민생안정지원금에 전통시장 '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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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이슈131-1>“겁나 좋제라”…민생안정지원금에 전통시장 '활기'
● ‘최다 50만원 지급’ 영광군 가보니
영광터미널시장·소규모 매장 ‘북적’
상인 “계엄·참사로 닫힌 지갑 열려”
소비 촉진 넘어 공동체 회복 기여
인접 군민 “상대적 박탈감” 호소도
  • 입력 : 2025. 02.09(일) 18:25
  • 조진용·정성현 기자
지난 8일 영광의 한 베이커리에서 군민이 영광사랑카드로 ‘민생경제회복지원금’을 사용하고 있다. 정성현 기자
“오늘 석화(굴) 좋은디 가져가소! 아따, 민생지원금은 이럴때 써야제!”

설 연휴 직후 첫 주말이었던 지난 8일, 영광 터미널 시장은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매서운 눈보라가 치는 날씨에도 시장에는 손님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문을 닫은 점포는 찾기 어려웠고, 곳곳에서는 “영광사랑카드 됩니다!”, “오늘 아니면 날씨 안 좋아서 못 나와요!”라는 상인들의 외침이 들렸다. 장바구니를 든 손님들은 더 좋은 상품을 구매하기 위해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다. 예년 같으면 명절 직후 시장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기 마련이지만, 이날 만큼은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됐다.

상인들은 이런 활기가 ‘최근 영광군이 지급한 민생경제회복지원금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영광군은 지난달부터 군민 5만2000명을 대상으로 지역화폐인 ‘영광사랑카드’를 통해 100만원(설 50만원·추석 5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9일 기준 군민 4만9495명(94%)이 지원금을 받았고, 이 중 48%가 전액 사용했다. 대부분 농·축·수산물·가공품점이나 슈퍼마켓·식당, 주유소 등에서 사용됐다. 수치로 약 119억원이 지역을 순환,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셈이다.

수산업자 김모(46)씨는 “비상계엄·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여파로 손님이 많이 줄었는데, 설을 앞두고 지역화폐가 지급되면서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며 “체감 상 코로나19 이전 명절과 비슷한 느낌이다. 힘든 시기 손님들과 새해 인사도 나누고 정을 느낄 수 있어 몸은 힘들지만 보람이 크다”고 활짝 웃었다.
영광군 민생경제회복지원금 안내 및 영광사랑카드 모습. 정성현 기자
같은 날 읍내의 한 베이커리·카페도 밀려드는 손님맞이로 분주했다. 가족·지인 단위 손님들이 몰려들면서 “앉을 자리가 없다”는 안내가 이어졌고, 따끈한 빵은 나오는 족족 팔려나갔다. 손님 대부분이 영광군의 상징꽃인 ‘상사화’가 그려진 영광사랑카드를 이용해 결제했다.

한유승(32)씨는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외식 소비를 줄이는 게 현실이지만, 민생지원금 덕에 평소 빵 한개 살 걸 두개씩 사고 있다”며 “지역경제가 산다는 의미에서 고향 지인들과 번갈아가며 밥값을 내는 등 ‘민생지원금 털기’도 하고 있다. 50만원이 주는 정서적 위안이 크다”고 말했다.

카페 사장 박모씨는 “이전에는 아메리카노 한 잔만 시켜놓고 오래 앉아 있는 손님들이 많았는데, 요즘엔 디저트도 같이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자영업자들은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다’는 말을 한다. 특히 농촌은 대도시처럼 ‘365일 돌아가는 상권’이 없다. 이런 지원이 더 많아졌음 좋겠다”고 밝혔다.

민생지원금이 단순한 소비 촉진을 넘어 공동체 회복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평도 있다. 영광군청 공무원 정남현(37)씨는 “지원금을 수령한 어르신들이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자주 보지 못했던 이웃들과 걱정없이 차 한잔 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이유”라며 “단순히 물질적 지원을 넘어 공동체적 정서와 정겨운 목소리를 나눌 수 있는 매개체가 됐다. 추석까지 정책이 잘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세일 영광군수는 “지원금 예산 확보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군민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낀다”며 “국가적 혼란 속에서 소소한 행복이 됐길 바란다. 앞으로도 재원 확보 등에 힘써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지속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영광군의 지원금 지급을 바라보는 인접 지자체 주민들의 시선은 복잡하다.

함평군민 정수영(32)씨는 “영광군의 지원 소식을 듣고 전입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부터 알아봤다”며 “지자체별 재정 여건이 다르겠지만, 어려운 시기만큼은 형평성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성군민 최기우(41)씨는 “이런 지원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주민들이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지역으로 이주할 가능성도 있다”며 “장기적으로 볼 때 지자체 간 과잉 경쟁과 불균형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지역화폐 혜택으로 지역시장과 소상공인들이 나름대로 특수를 노리고 있다. 좋은 정책임은 틀림 없다”며 “지속가능성을 위해 ‘지역 간 지원금 과열 경쟁’을 막는 장기적인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 넓게는 일회성 정책으로 끝나지 않도록 범국가적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조진용·정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