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유전자·손필영>순수한 의식(儀式)은 사회적 관심부터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이타적유전자·손필영>순수한 의식(儀式)은 사회적 관심부터
손필영 시인
  • 입력 : 2025. 02.04(화) 17:31
1월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린 1박 2일 민주노총 철야투쟁에서 시민들이 은박 비닐을 덮은 채 참석해 있다. 뉴시스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수선한 시국 속에서 마음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긴 설 연휴 동안에는 마치 생각을 정리해보라는 듯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농사를 짓는 시인은 4.5톤 트럭에 트랙터를 싣고 남태령까지 올라와 밤을 새우고, 은박지를 몸에 두르고 영하 10도가 넘는 강추위를 견디며 한남동에서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그런 그도 설 연휴에는 눈 쌓인 골짜기에 들어가 나무와 눈길을 찍어 카톡에 올렸다. 마치 로버트 프로스트가 시 ‘눈오는 밤, 숲가에 서서’에서 한해의 가장 어두운 저녁 눈 쌓인 숲속에 서서 아름다움과 고요 속으로 들어갔듯이 이 시인도 그 순간 모처럼 순전한 평화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 부분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더 가야 한다”는 프로스트의 표현처럼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느끼면서 그도 숲을 떠나왔을 것이다. 우리는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갈등과 분열의 현실은 우리에게 민주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상기시킨다.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몇 마일이 있습니다./잠들기 전에 가야 할 몇 마일이 있습니다”

2023년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2024년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국제영화상을 받은 ‘Zone of Interest’는 홀로코스트를 다루었지만 잔혹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인 루돌프 회스와 그의 가족은 수용소 바로 옆에 위치한 아름다운 저택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회스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이자 아내에게는 다정한 남편으로 보이지만 그의 집 담장 너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는 끔찍한 학살의 책임자다. 회스의 가족은 수용소의 비명 소리와 냄새나는 연기를 무시하며 살아간다. 특히 회스의 아내는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고 아이들을 돌보는 전형적인 주부의 삶을 살아가지만, 그녀의 행복이 수용소의 고통 위에 세워진 것임을 외면한다.

존 보인이라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8살 소년 브루노의 시각에서 홀로코스트를 바라본다. 브루노는 나치 군인인 아버지의 승진으로 가족과 함께 베를린에서 시골로 이사한다. 새로운 집은 외딴 곳에 위치해 있고, 브루노는 창밖으로 이상한 농장과 그곳에서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관심을 갖는다. 브루노는 어느 날 철망 너머에 있는 유대인 소년 슈무엘을 만나 친구가 된다. 둘은 철망을 사이에 두고 비밀스러운 우정을 나누지만 브루노는 슈무엘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브루노는 사라진 슈무엘의 아버지를 같이 찾아보자고 말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철조망 안 수용소로 들어간다. 아이의 편견 없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친구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순진하고 순수한 의식(儀式)을 보여준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다룬 이 이야기들은 우리가 현재 직면한 혼란과 혼돈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한다.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는 100년 전 ‘재림(The Second Coming)’에서 이미 이러한 혼돈을 보여주었다. 이 시가 쓰인 세계 1차대전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세계는 추악한 자의 격정으로 전쟁과 혼란에 휩싸이고 있다.

“점점 더 넓어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돌고 도는 /매는 매부리는 이의 소리도 듣지 못하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네 중심이 버티지 못하니,/단지 무질서만이 세상에 풀려나고,

피로 물든 파도가 밀려오며, 어디를 보아도/순수한 의식(儀式)은 물속에 잠기네.

가장 선한 이들은 신념을 잃고,/가장 추악한 이들은 격정적 열정으로 가득 차 있네.”

(재림 (The Second Coming )1연)

묘사된 점점 확장되는 혼란과 그러한 세상 속에서의 무력감은 바로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사회적 분열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얼마나 순수한 의식, 달리 말하면 순수하게 더불어 사는 법도에 관심을 가질지, 또 그로 인한 선택을 할지에 따라 인간의 악함과 무력함, 그리고 도덕적 혼란도 달라질 것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비극을 인지하고 아름답고 고요한 순간에도 “잠들기 전에 몇 마일을 더 가야 한다”는 민주시민의 책임감을 잊지 않을 때 가장 악한 이들의 격정적인 열정을 몰아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