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희 시민도슨트 단장 |
항공기 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는 생존자와 유가족에게 심각한 심리적, 정서적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다양한 형태의 PTSD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트라우마는 단순히 개인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지역 사회까지 영향을 끼치며, 장기적인 치유 과정이 필요한 일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이소희 교수 연구팀이 세월호 생존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을 추적 관찰한 결과, 사고 후 1년 시점인 2015년 3월에 우울, 불안, PTSD 증상, 복합애도 반응이 가장 높았으며, 고등학교 졸업 무렵(사고 후 20개월)에는 생존 학생의 24.5%가 복합애도 반응과 PTSD 증상이 다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산 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유가족 중 절반 이상이 PTSD 증상을 보였고, 3명 중 1명은 슬픔과 분노, 무기력감이 지속되는 울분 장애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대형 참사 이후 생존자나 유가족들이 장기간에 걸쳐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됨을 보여준다.
예술, 운동, 정원 가꾸기, 자원봉사 등 사회적 활동과 개인을 연결하여 신체적·정신적 회복을 돕는 접근법인 사회적 처방은 기존의 의료적 접근을 보완하는 새로운 치료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의료 전문가가 환자를 진단한 후, 약물 등의 의학적 처방과 더불어 사회적 활동을 처방하면 사회적 처방 코디네이터(Link Worker)가 환자에게 해당 치료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단순한 증상 완화뿐만 아니라 삶의 질(QoL) 개선을 목표로 한다. 영국은 2018년부터 사회적 처방 서비스를 도입하여, 환자들이 지역 사회 활동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도록 지원하고 있고 2024년 기준 영국, 미국, 캐나다를 포함한 32개국이 사회적 처방을 도입하고 있다.
사회적 처방을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은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미술관도 하나의 장소가 될 수 있다.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서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 대화형 전시, 공공 미술 프로젝트 운영 등 사회적 처방 장소로 활용될 수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Artful Practices for Well-Being’과 같은 인지적 프로그램은 예술로 트라우마 관련 심리 치유를 돕는다. 여기서 도슨트는 사회적 처방의 링크워커로서 단순한 전시 해설가가 아니라 생존자와 유가족을 위한 공감형 해설, 예술 치료 연결, 지역 커뮤니티 네트워크 형성 등을 통해 트라우마 치유 지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제주항공 참사는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심리적, 정서적 상처를 남긴 비극적인 사건이고 단순한 의료적 접근만으로는 효과적인 치료에 한계가 있다. 참사는 과거형이 되었지만, 생존자와 유가족의 고통은 현재형이고 미래진행형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회복을 고민해야 할 차례다. 사회적 처방을 통한 예술의 역할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넘어 삶을 다시 세우는 힘이 될 수 있다. 이제 국가와 지역 사회가 함께 현재를 살아가야 할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지속 가능하고 실질적인 방안을 마련할 때이다. 참사가 남긴 상처를 기억하고 치유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반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