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100년 만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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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100년 만의 기적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5. 01.09(목) 17:34
이용환 논설실장
“1000가지 용도를 지닌 인류 문명을 바꿀 기적이다.” 1924년 어느 날 벨기에 출신 화학자이면서 미국 기업가 리오 핸드릭 베이클랜드가 실험실에서 새로운 물질을 발견했다. 축음기 판과 장식품 등 폭발적 수요로 공급이 부족하던 천연수지 셀락의 대체 소재를 연구하던 그는 그날도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다양한 온도와 압력에서 가공하는 실험을 했고, 어느 순간 두 물질이 안정적인 물질로 합성되는 것을 확인했다. 열에 타지 않고,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꿀 수 있는데다 값까지 저렴한 소재. 인류 역사상 처음 탄생한 합성 플라스틱이었다.

플라스틱의 발견은 그야말로 인류에게 기적이었다. 개인의 일상뿐 아니라 농·수산과 건축, 자동차·비행기, 통신, 의료, 스포츠까지 지난 100년간 인류의 생활 모든 곳에 스며들었고 산업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지금도 플라스틱은 인간 생활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공산품의 50%가 플라스틱과 조합돼 있다. 식품부터 의약품과 화장품 등 생활에 필수적인 제품을 플라스틱 없이 생산한다는 것도 상상도 할 수 없다. 만약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인류는 더 많은 지하자원과 산림자원을 훼손시키고, 지금과 같은 문화생활은커녕 식량 확보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천연자원의 대체 물질로 자연의 훼손을 줄이겠다는 당초 목적과 달리 불과 100년만에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떠올랐다. ‘썩지 않는다’는 장점은 결국 썩지 않아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는 문제를 불러왔고, 가벼우면서 물에 녹지 않는다는 강점은 바다 수질에까지 악영향을 미쳤다. 지구를 뒤덮을 정도의 양도 문제다.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 세계에서 발생한 폐플라스틱은 3억 5300만 톤에 이른다고 한다. 이 가운데 재활용 된 것은 9%인 3400만톤에 불과하다. 플라스틱 100개 가운데 91개가 환경을 오염시키는 끔찍한 상황이다.

최근 국내 연구팀이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세계 최고의 물질을 개발했다. 경북대 김경진 교수와 CJ제일제당 연구팀이 공동으로 개발한 이 물질은 자연에 존재하는 바이오촉매 30여 종 가운데 분해 효율이 가장 높은 ‘쿠부’를 개량한 것으로 자연에서 유기물이 썩는 것처럼 생명촉매가 1㎏의 플라스틱을 분해해 8시간 내 90%를 없앨 수 있다고 한다.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도 없다. 오염과 축적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상징이면서 재앙으로 전락한 플라스틱의 폐해를 쿠부가 해결할 수 있을까. 100년 동안 인류의 문명을 바꿔왔지만 지금은 인류의 필요악으로 전락한 플라스틱. 그 플라스틱의 미래를 바꿀 100년만에 찾아온 또 다른 기적이 반갑다. 이용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