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철 미디어국장 |
한승원만의 절제되고 깊이 있는 필치로 쓰인 ‘흑산도 하늘길’은 조선 순조 때 신유박해로 흑산도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끝내 해배되지 못하고 생을 마쳤던 ‘천주학쟁이’ 정약전의 삶이 그 대강이다.
소설은 비록 다시는 뭍으로 돌아오지 못할 절해고도에 갇혔으나, 자유의 삶을 구하고자 했던 약전의 치열한 몸부림을 생생하게 풀어냈다.
‘흑산도 하늘길’은 나주 다경포에서 배에 올랐던 ‘흑산도행’에서, 책 말미 ‘손암과 작가의 가상 인터뷰’까지 소흑산에서 9년, 대흑산에서 7년을 보낸 유배자의 삶이 짙게 배어 있다.
소설 가운데 256쪽 ‘조개속에 들어 간 새’에 나오는 승률조개 이야기는 소설의 절정이다. 이 대목을 읽노라면 전율이 인다.
‘자산어보’를 쓰던 약전은 조개 속에서 새가 나왔다는 승률조개를 발견한다. 조개의 입 속에서 나온 것이 새의 머리와 부리 모양을 닮아 붙인 이름이다. 정약전은 하늘을 날던 파랑새가 어느 날 조개 속으로 들어가고 그 조개가 변해 다시 파랑새가 되어 날아가는 장면을 떠올린다. ‘정약전이 파랑새가 되어 창공을 나는 꿈’이다.
‘짙푸르고 거친 바다 물결 속에 떠 있는 섬 흑산도는 거대한 조개껍데기이고 나 정약전은 그 속으로 들어온 한 마리 파랑새다. 그 새는 머지않아 거대한 검은 껍데기를 열어젖히고 훨훨 날개를 저으며 뭍으로 날아갈 것이다.’(259쪽)
사방이 거친 바다로 둘러싸인 절해고도 흑산도에서 벗어나는 길은, 새가 날아가는 하늘길뿐이었다. 한 작가는 흑산도와 우이도를 부지런히 드나들면서 그 참담한 갇힘과 슬프도록 황홀한 자유의 길을 동경해 약전의 감정에 작가의 삶을 투영한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한강 작가가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했던 말이 되뇌어진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어쩌면 200여년 전 흑산도 손암이 장흥의 해산을 돕고, 구했는지도 모른다.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을 돕고 구했듯이….
나라 돌아가는 꼴이 영 마뜩치 않고, 연말이라 헛헛한 마음까지 들어 오랜만에 책읽기에 열중했는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