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남구 공무원이 주로 사용하는 행정전산망 ‘새올’의 익명 게시판에 지난달 10일 ‘인사철 문화’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와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독자 제공. |
광주시 남구에 ‘퇴직 욕구’를 부르는 공직사회의 부조리한 조직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작은 좋은 취지였어도 내용이 변질됐다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9일 남구에 따르면 지난달 초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주로 사용하는 행정전산망 ‘새올’의 익명게시판에는 “남구만의 ‘편지 인사’를 그만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다.
앞서 남구 공무원들은 구청장에게 편지를 통해 남들에게 말하기 힘든 개인 상황이나 고충을 토로하며 상담 하곤 했다. 특히 평소 구청장을 대면하기 어려운 행정복지센터 소속 공무원이거나 젊은 공무원들에게는 중요한 소통의 창구 역할이 됐다.
하지만 이 문화가 인사를 앞두고 편지를 쓰지 않으면 안되는 문화로 전락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부 직원들이 구청장에게 편지를 쓴 뒤 승진을 하거나, 원하는 부서로 이동하는 등 ‘소원 수리’로 이용하는 일이 빈번해졌고, 한명 두명 따라하다 보니 인사를 앞두고 편지를 안 쓰면 이상한 상황까지 됐다는 것이다.
남구 소속 한 공무원은 “편지를 쓰기 싫은 사람도 주변 분위기를 의식해서 어쩔 수 없이 쓸 수 밖에 없다”면서 “직원의 업무 성과만을 고려해야 할 인사에 공정성이 휘둘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남구에는 인사철 공무원들이 지켜야 하는 문화가 더 존재했다.
비슷한 시기 게시판에 ‘인사철 문화’라는 제목으로 “인사발령 때마다 부서이동 직원의 근무처에 간식을 사들고 인사 가는 문화는 이제 없어져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게시글에는 “간식 준비하며 인사 다니는 일이 하위직 직원들에게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된다는데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분위기 속에서 안 갈 수도 없는 직원들도 있다”며 “시보해제 기념 떡 문화가 없어지고 있는 만큼, 이러한 문화도 없어져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게시판에 이러한 글들이 잇따르자 직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인사철에 간식을 사들고 인사 가는 것을 두고 ‘먹을 것이 풍부해진 지금 시대에 인사로도 충분한 것 같다’, ‘불필요한 문화 같은데 유별나게 저희 남구만 그러는 것 같다’처럼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맛있는 것 먹어서 좋은데’, ‘사사건건 색안경 끼고 보면 세상이 온통 한가지 색깔로만 보인다’는 등 관습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편지 문화가 사라질 경우 과거 구청장실 앞에 줄 서서 승진을 어필했던 문화가 부활할 수 있고 직급이 낮은 공무원들에게는 편지만큼 편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소통 창구가 없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에 남구는 인사 과정에 불공정하거나 불필요한 사유가 개입되는 일은 없다는 입장이다. 전보는 한 근무지에서 최소 1년 6개월 이상을 근무한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등 기준을 두고 시스템화 하고 있으며, 승진 또한 승진 후보자 순위에 기초하며 경력과 업무 평가 등을 고려해 깨끗하고 공정한 인사를 하고 있다는 것이 남구의 설명이다.
남구 관계자는 “개인의 고민사항이나 말하기 힘들었던 고충들을 토로하고 소통하며 더 나은 인사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인데, 몇몇 사례들이 직원들 사이에 퍼지며 다소 변질된 것은 사실이다”면서 “더 좋은 인사 차원에서 참고만 하고 있을 뿐 모든 내용이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민현기 기자 hyunki.mi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