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노 광주시의원. |
마치 하늘이 우리에게 잊지 말라고 호통이라도 치는 듯 11일 신안산선 복선전철 5-2공구에서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16일, 사고 엿새 만에 실종된 근로자가 싸늘한 주검으로 우리 품에 돌아왔다. 또 지난달 24일 서울 강동구에서 싱크홀(땅 꺼짐)이 발생해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세상을 떠났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부산의 도로에서, 강원도의 주택가에서 땅이 꺼지고 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싱크홀은 2085건이다.
대한민국은 정말 안전해졌는가. 아니, 우리는 정말 ‘기억’하고 있는가.
세월호 참사 이후 수많은 안전 대책이 쏟아졌다. 여러 상황에 대한 매뉴얼이 생겼고, 위기 대응 체계가 개편되었고 법이 바뀌었다. 하지만 문제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작금의 상황들이 보여주고 있다. 제도가 있어도 실제 위기 상황에서 작동하지 않는 사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우리는 안전한 사회를 기대했다. 실제 산업재해와 시민 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려는 목적처럼 공공영역과 기업들도 이 까다로운 법령을 준수하며 안전 확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일반 시민이 겪는 ‘시민 재해’는 적용 범위가 좁아 안전 확보에 빈틈투성이다.
중대재해법 시행 3년차, 시민 재해가 적용되고 인정된 사건은 청주 오송지하 차도 참사 1건뿐이다. 최근 발생한 창원NC파크의 구조물 추락사고와 이태원 참사, 지난 12월 29일 제주항공 참사와 싱크홀 사고 모두 중대 시민재해의 적용 범위 밖이다. 법령은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의 결함을 원인으로 해 발생한 재해’만 시민 재해로 인정하고 있어 인도, 차도, 활주로 등은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 시스템과 매뉴얼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
싱크홀은 단지 지반의 문제만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관리 실패, 예산과 안전을 맞바꾸는 무책임한 결정의 문제, 사고 후에야 관심 가지는 책임 회피의 태도가 만든 예고된 붕괴다. 공개하지 않겠다는 서울시의 지반침하 우려 지역 329곳을 MBC가 밝혀내 보도한 것은 우리 사회 안전망의 민낯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기도 하다. 제주항공 참사는 더 뼈아프다. 구태여 예산을 들여 만든 시설물이 결국 우리 가족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점검은 형식적이었고, 설계와 시공 등에 대한 실질적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다.
11년 전의 세월호 역시 단순히 바다에서 가라앉은 배가 아니었다. 이 사회가 가진 무관심, 무능, 무책임의 총체였다. 그래서 우리는 별이 된 304명을 기억하며 더 이상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꺼지는 땅 위에서, 무너지는 구조물 아래에서, 비 오는 날 불안한 역사에서 여전히 목숨을 걱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안전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우선이다. 정치가 안전을 정책의 중심에 두지 않으면, 행정은 비용을 줄이려 할 것이고, 기업은 책임을 떠넘길 것이다. 기억은 애도에 그치지 않고 행동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11년 전 참사의 기억을 돌아보며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되물어야 한다.
우리는 안전한 나라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