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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세월호와 트라우마
김동수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혈액원장
  • 입력 : 2025. 04.16(수) 18:41
김동수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혈액원장
2014년 4월 16일, 오보와 함께 희망이 절망이 되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살아 나오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골든 타임이 지날수록 불안과 초조가 엄습했다. 이제는 시신이라도 발견되기를 희망했다. 끝내 5명의 시신은 수습되지 못했다. 이렇게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깊은 슬픔과 충격을 주었다.

얼마 전 목포해상케이블카를 가는 도중 먼발치에서 세월호의 잔해를 보았다. 그 당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필자는 사고 다음 날 바다를 앞둔 팽목항으로 갔었다. 그곳에서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힘든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비는 쏟아지는 가운데 구조작업은 더디고 생존확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브리핑 때마다 실종자 가족들은 오열했고 지지부진한 수색작업에 분통을 터뜨렸다.

적십자 봉사원들은 식사를 마련하고 가족들을 마주했다. 아무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들을 말로 위로 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 심리회복지원 활동가도 마찬가지였다.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야 식사도 할 수 있었는데, 마침 완도 수산업체에서 기부한 전북으로 죽을 써드리니 가족들은 그나마 한술을 뜰 수 있었다.

그때까지 이와 같은 대형사고로 발생한 수백 명의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돌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의 역량은 충분하지 못했다. 이후 행정자치부는 재난이 있는 곳에는 늘 적십자가 함께 한다는 사실에 대학, 병원, 단체에 산재했던 센터를 일원화하여 대한적십자사에 위탁했다. 이제는 최근 대형 산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 각종 재난 현장에서 급식 및 물품 구호와 함께 심리회복지원 활동은 적십자의 필수불가결한 활동이 되었다.

아직도 그날을 기억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설명할 수 없는 무력감이 밀려온다. 무엇보다도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 공포, 분노, 불안, 수면장애, 우울증 등 깊은 트라우마를 겪었고 아직도 여전하다.

이러한 재난 상황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심리적 회복’을 통한 일상의 복귀다. 그러나 이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사고 직후뿐만 아니라 수년 후에도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기에 지속적인 상담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심리회복지원은 단기간의 위로가 아니라,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치유의 여정이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치료받아야 할 고통’으로부터 방치되고 있지 않나 싶다.

세월호 11주기를 보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과거를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희생자뿐만 아니라 각종 재난 피해자에 대한 ‘심리회복’지원 활동이 보다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협력하고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우리 국민의 트라우마다. 세월호 11주기 인식조사에 의하면 국민 10명 중 4명이 ‘대형 재난으로 안전하지 않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인식은 이태원 참사,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산불 등 연이은 대형 재난으로 더욱 가중된 것이 아닌가 싶다.

“꽝” 소리만 나도 깜짝 놀라며 위를 올려다본다.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 이후 많은 시민이 길을 걷다가 건물이나 아파트가 무너진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서 나온 행동이다.

이러한 트라우마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방법은 불안감이 들 때마다 마음을 단단히 할 수 있도록 서로 “괜찮아”하며 지지하고 격려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