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학원숙제 하는 곳?” 공교육 붕괴 부른 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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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학교는 학원숙제 하는 곳?” 공교육 붕괴 부른 사교육
●‘호남 사교육 1번지’ 봉선동 집중해부
선행학습 학생들 교실수업 외면
‘하지 말라’ 권유 외에 제재 못해
학교 숙제 내주면 학부모들 ‘불평’
“학생 불성실한 태도가 수업 방해”
‘수업권 보장’ 맞춤형 지원책 필요
  • 입력 : 2024. 07.03(수) 18:37
  •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
지난달 26일 광주 남구 봉선동 학원가 인근 카페에서 한 학생이 밤 늦게까지 공부하고 있다. 나건호 기자
과열된 사교육 시장은 공교육 질서까지 무너뜨렸다. ‘학교 수업으로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없다’는 불신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교실 수업을 외면하게 했고, 이는 교권의 추락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이런 양태는 2년마다 실시되는 ‘광주교육 종합실태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난다. 교사 10명 중 4명은 잡담과 잠자기 등 학생들의 불성실한 태도로 수업 진행이 힘들다고 했다. 자녀를 사교육에 맡긴 학부모들은 학교에 ‘지식’보단 ‘인성 지도’를 요구했다. 과열된 사교육 경쟁으로 무너진 공교육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 “과학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

지역 교사들은 학교 교육을 등한시하는 분위기가 사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학원과 과외를 통해 선행학습을 받은 학생들은 수업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교실에서 부족한 잠을 보충하거나 학원 숙제를 한다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학원 공부를 하지 말라’며 교사와 학생이 실랑이하는 것은 이제 ‘흔한’ 풍경이라고 교사들은 입을 모았다.

특히 사교육 비중이 큰 영어나 수학 과목의 경우 더욱 그랬다. 광산구 모 중학교에서 근무 중인 수학교사 A씨는 “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며 “3학년 한 남학생이 수업 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고 있길래 교재를 압수했다. 그런데 나중에 교무실에 찾아와 ‘서로 조용히 끝내죠’라며 학원 교재를 돌려달라고 당당히 말해 매우 화가 난 기억이 있다”고 토로했다.

영어·수학 등 주요교과 과목이 아닌 경우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30년차 과학교사 B씨는 “학원은 영어·수학 중심으로 돌아가고, 대부분이 절대적 시간이 부족할 만큼 많은 양의 숙제를 내준다. 그러니 오히려 착실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교과서 속에 영어·수학 학원 숙제를 숨겨서 하는 등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학생들이 한 반에 4~5명은 된다. 일일이 지적하는 것마저 다른 학생들에게는 피해가 될 정도고, 강경한 제재를 가하지 못하니 매우 난감하다”고 덧붙였다.

일부 교사들은 ‘학원 뺑뺑이’를 도는 학생들의 입장에 공감하면서도 공교육과 사교육이 주객전도된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북구에서 근무하는 국어교사 C씨는 “시험기간에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학원에 가서 새벽까지 공부하니, 정작 교실은 잠자는 곳으로 전락한다”며 “학원에 쫓기듯 생활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고 했다.

이어 C씨는 “일부러 시험 범위를 학원에서 준비한 것과 다르게 내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기도 하지만, 학부모들조차 학교에서 숙제를 내주면 ‘선생님이 양심이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니 교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 교사 33% “그만둘까 심각한 고민”

광주교육정책연구소가 발표한 ‘2022년 광주교육 종합실태조사’에도 이같은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8694명의 광주지역 학생 중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78.7%에 달했으며, 이들 중 73.7%가 ‘사교육을 받는 목적 달성에 도움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공교육에 대한 흥미는 매년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학교 수업에 대해 ‘매우 흥미 있다’고 답한 학생은 △2018년 36.4% △2020년 19.3% △2022년 15.1%로 하락했다. 사교육에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격차가 더해져 이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낮은 흥미도는 불성실한 수업 태도로 이어졌다. 응답자 3434명의 교사 중 42.3%가 수업에 방해가 되는 가장 큰 요인으로 ‘학생들의 불성실한 태도’를 꼽았다. 또 스트레스 원인으로는 생활지도 등 학생과의 관계가 43.3%, 교권 침해 32.5%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최근 1년 동안 교사를 그만두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 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33.3%가 ‘예’라고 답했다. 그 이유로 ‘학생 지도의 어려움’이 27.8%로 가장 높았고, ‘과중한 업무’ 24.5%, ‘미래에 대한 두려움’ 10.4% 순으로 나타났다.

학부모들 역시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 학교에는 교과 학습이 아닌 인성 지도를 우선적으로 요구했다. 응답자 6128명의 학부모 중 31.6%가 학교 교육의 가장 큰 목적이 ‘인성지도’라고 답했고, ‘교과학습’이 31.4%로 그 뒤를 이었다. 차이는 크지 않지만, 사교육 목적과 연관시켜 보면 학부모들이 바라는 학교교육의 목적은 인성 지도와 사회성 함양 등이 주된 목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광주교육정책연구소는 “학부모의 학교교육에 대한 인식이 전환될 수 있는 교육정책 수립과 학교 현장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교사의 수업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 학교급별 교사들이 원활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맞춤형 지원 방안을 정책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