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정상연>가장 아름다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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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광장·정상연>가장 아름다운 시절
정상연 전남과학대 겸임교수·문화학박사
  • 입력 : 2024. 06.17(월) 18:35
정상연 교수
프랑스 파리, ‘가장 좋은 시절’이라는 의미를 지닌 ‘벨 에포크’(belle epoque)는 대략 1880년 전후부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1914년 전까지의 기간을 이르는 말이다. 벨 에포크는 그때가 진짜 아름답고 좋아서라기보다는 훗날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어보니 그나마 그 시절이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회상하는 과거에 대한 향수인 것이다.

당시 파리는 가파른 산업화와 도시화로 극심한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극에 달했고 주거와 생태환경도 최악이었다. 그렇지만 시민들은 뉘엿뉘엿 해가 지기 시작하면, 나름 근사한 옷으로 차려입고 물랭루주와 같은 카페를 찾았으며, 휴일이면 센 강에서 보트를 타거나 주변 공원을 거닐며 삶의 여유를 갖고자 노력했다.

비록 혼란의 시기이고 먹고살기 팍팍했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로 오늘날의 도심을 만들어 냈고 마네, 모네, 고흐 등 수많은 예술가와 시민들은 본연의 리즈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금의 파리는 누구나가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은 최애 도시로 변모했다.

이로 인해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공공외교센터와 영국 포틀랜드사가 발표한 세계 ‘소프트 파워’(THE SOFT POWER 30)의 2019년도 순위를 살펴보면 프랑스가 1위를 차지했고 한국은 19위였다. 소프트 파워를 주창한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Joseph S. Nye, 1937~) 교수는 ‘국제 관계에서 각 나라의 문화 양상이나 가치관, 또는 정치적 목표 등으로 인해 발현되는 그 어떤 매력을 소프트 파워라고 설명하고 있다.

올해도 변함없이 19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소프트 파워 순위가 발표됐다. 놀라운 변화는 2019년도에 27위이었던 중국이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쟁쟁한 유럽의 여러 나라를 제치고 3위로 급부상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음이다. 반면 한국은 15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의 소프트 파워는 안보와 정치적인 요인으로 순위권에 진입하지 못 했지만 이미 영상콘텐츠를 시작으로 K-팝에 힘입어 K-뷰티, K-푸드 등 전 세계의 문화시장을 선도한 지 오래다. 한류는 지구촌 문화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매김했고, 이는 5천 년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유산의 축적으로 이뤄낸 자랑스러움이다.

다만 글로벌 문화 지형을 뒤흔들고 있는 지금의 K-파워 현상들에 잠시 도취 되어, K-콘텐츠의 역사적 순간들을 흩트려 오점으로 남길 수 있다는 염려를 해본다. 그 한 예로 오만하고 불손한 몇몇 연예인들과 이해 당사자들의 도덕적 해이 그리고 그들을 뒤따르는 맹목적 팬텀 현상을 들 수 있다. 소수 스타들에게 한정된 사유라지만 분명 공공에 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일부 추종자들의 배타적인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적 행위는 참으로 꼴불견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방송, 연예, 스포츠 등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정치를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급속도로 파급·확산 되고 있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민주사회의 기본적 가치와도 거리가 멀고, 세계가 주목하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위상과 K-문화의 긍정적 영향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다.

먼 훗날,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 “그 시절이 우리에게 벨 에포크였어.”라고 자조(自嘲)섞인 소리가 나올까 두렵다. 탑을 쌓아 올린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탑이 무너지지 않게 돌보는 일은 더욱 힘들고 어려운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격동기, 어려운 시절에 끊임없는 정책 개발과 보살핌으로 오늘의 파리를 만들어 낸 것처럼 대한민국의 문화적 위상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가꾸고 돌보자.

오늘날 지구촌의 K-문화의 저력은 누구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힘이다. 시간이 흘러, 뒤를 돌아보는 여유가 생길 때 “그때도 좋았지만, 그래도 지금이 제일 행복해.”라고 웃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