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하 치안감 생전 모습. |
광주지법 제13민사부(재판장 정영호 부장판사)는 안 치안감의 유족 4명(배우자·아들 3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안 치안감 유족들의 정신적 피해 등이 모두 인정된다며 국가는 총 2억5000만원(배우자·장남 7500만원씩, 차남·삼남 5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1979년 2월 전남도경 국장으로 부임했던 안 치안감은 전남도 경찰국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경찰관들에게 평화적 시위가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총기 무장을 금하며 과잉 진압하지 말라는 취지로 지시하는 등 유혈사태 확산 방지에 노력했다.
1980년 5월25일에는 당시 광주·전남 시도민에 대한 ‘전두환 내란 세력’의 발포와 강경 진압을 거부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26일 시위 진압에 실패했다는 이유로 보직 해임돼 대기 발령 상태에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로 강제 연행됐다. 8일간 안 치안감은 불법 구금돼 고문을 받은 후 풀려나면서 의원 면직됐다.
이후 극심한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 등을 겪었으며 담낭염·당뇨·신부전증 등 고문 후유증으로 8년간 투병하다 1988년 10월10일 향년 60세의 나이에 급성심정지로 세상을 떠났다.
안 치안감은 이후 2002년 광주민주화운동유공자로 선정됐고, 2005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묘지 현충원 경찰묘역에 안장됐다. 2006년에는 순직 인정을 받아 국가유공자에 이름을 올렸다.
국가는 이번 소송에서 ‘원고들이 유족으로서 갖는 고유 위자료 채권이 이미 소멸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안 치안감이 군인 등 국가 소속 공무원들로부터 겪은 강제 연행, 불법 구금, 폭행, 고문 등 가혹 행위와 의원 면직 형식의 강제 해직 등은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성이 인정된다"며 "안 치안감과 유족인 원고들이 국가의 불법 행위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은 경험칙 상 명백하다”고 밝혔다.
이어 “과잉 진압이 이뤄지지 않도록 지시하는 등 유혈사태 확산 방지에 노력했음에도 불구,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로 강제 연행돼 가혹행위를 당한 것에 대한 가족들의 정신적 피해는 인정된다”며 “국가는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