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언 연구원 |
칠곡군은 평생학습도시를 선도하고 있는 지역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문해교육을 비롯하여 2005년부터는 지자체 최초로 지역 주민 대상 학점은행제 학위 과정을 운영 중이다. 마을 단위 인문학교육도 활성화 되어 말 그대로 도시 곳곳에서 배움이 일어나고 있는 학습도시다.
소설가 한강은 ‘채식주의자’라는 소설로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맨부커상’을 수상하였다. 한 작가는 학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였고, 20대에 소설가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한 작가와는 대조적으로 2018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 ‘밀크맨(Milkman)’의 작가 애나 번스(Anna Burbs)는 30대에 글쓰기를 시작하여 50대에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랐다.
애나 번스는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1990년대 런던으로 이주하여 생활하면서 ‘시티릿’(City Lit)의 글쓰기 과정을 수강하고 글을 쓰기 시작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시티릿(City Lit)은 런던 시민들의 직업역량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열린 배움터다. 런던 시민의 생애단계와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을 고려하여 365일 주·야간, 온·오프라인으로 운영되는 5000여개의 교육과정을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영국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총 인구의 18%이상인 고령사회이다. 때문에 고령인구에 대한 사회적 정책은 정부의 중요하고 지속적인 화두다. 또한 영국은 다민족·다문화 사회로서 시티릿 전체 이용자의 22%가 소수 인종이고 외국어로서의 영어뿐 아니라 한국어, 힌디어 등 30개 이상의 외국어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시티릿의 교육과정에 참여한 학습자들은 처음에는 단순 흥미에 의해 가볍게 시작했거나, 이민자 또는 고령자와 같이 생활 기술을 익히기 위해 수강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배움이 새로운 직업이나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전문기관이나 대학 등과 연계하여 수준별 교육과정을 통해 지속가능한 학습을 지원하고 있다.
앞에 언급한 칠곡 할매들은 한글을 배우는 성인문해교육으로 평생학습에 참여하였고, 한글을 깨우친 후에는 래퍼로서 작사와 노래를 하며 행복한 인생 2막을 즐기고 있다. 할머니들의 노동요가 트로트나 민요라는 편견을 깨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며 자존감도 높아졌다. 영국의 애나 번스 역시 30대 중반에 시티릿의 글쓰기 교육에 참여하면서 작가로서 기반을 다졌을 뿐만 아니라, 노래와 춤을 배우는 교육 과정에 다니며 일상의 큰 활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교육은 예산을 투입한 결과를 가시적으로 확인하는데 오랜 기간이 걸린다. 그리고 성과를 양적 지표로 나타내는 것은 매우 힘들다. 특히 형식이 자유로운 평생학습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때문에 대다수의 정치인, 행정가들은 평생학습 사업을 기획하거나 예산을 투입하는데 인색하다.
하지만 발상을 바꿔본다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평생학습 정책을 만들어 지역 내 산업, 경제, 일자리, 복지, 문화 등이 학습을 성장 동력으로 삼아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이전 시대는 양자택일의 논리(Either-or)가 지배적이었다면, 이제는 ‘And’로 계속 연결되는 시대이다. 엄격한 구분보다는 경계선을 극복하고 융통성을 발휘하는 동시성과 다중성이 요구된다. 평생학습은 특정 기간과 기관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맥락과 사회적 활동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도시는 그 지역이 가진 고유한 역사성과 사회·문화적 특성 및 다양한 문제를 복합적으로 갖고 있다. 시민은 더욱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나의 삶’과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의 삶과 생활 터전을 변화시키기 위해 학습하고 활동해야 한다. 이러한 다양한 가치를 이루기 위한 학습과 활동은 평생학습을 통해 가능하고, 평생학습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하는 이유다. 지역을 변화하고 성장시키는 힘, 모두를 위한 평생학습이 도시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