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취재수첩>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지연된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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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전남일보]취재수첩>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지연된 정의'
강주비 취재2부 기자
  • 입력 : 2024. 01.02(화) 18:04
강주비 기자
지난달 28일 대법원 앞에선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만세’ 소리가 울려퍼졌다. 대법원이 전범 기업들에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직후였다.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인정된 2012년 대법원 판결 이후 다른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잇따라 제기한 ‘2·3차 소송’이 오랜 지연 끝에 원고 측 승소로 결론이 났다. 소송이 제기된 지 꼬박 9년10개월 그리고 8년7개월만이다.

원고 중 광주·전남서 징용된 피해자들은 6명에 달한다. 2차 소송은 양영수·심선애·김재림 할머니와 오길애씨의 유족 오철수씨, 3차는 최정례씨의 유족 이경자씨와 김영옥 할머니다.

원고들이 일본에 끌려간 건 1944년 5월 말이다. 동네 구장 등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중학교도 보내준다’는 회유·강압에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소녀들은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갔다. 그러나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책가방 대신 하루 10시간에 달하는 무임금의 강제 노동뿐이었다. 오길애·최정례씨는 이곳서 반년 동안 노역을 하다 같은 해 12월 발생한 도난카이 대지진으로 무너진 공장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현재 광주·전남 원고 중 생존자는 김영옥 할머니가 유일하다.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던 5년 동안 심선애 할머니가 별세하셨고, 지난해 5월과 7월 양영수·김재림 할머니가 대법 선고가 내려지기 불과 몇 개월을 앞두고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지연된 정의’가 된 이유다.

그나마 이번 판결들에서 의미 있는 점은 그간 일본 기업 측이 주장해 왔던 ‘소멸시효 만료’와 관련한 쟁점이 해소됐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피고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사실상의 장애상태가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시까지 계속됐으므로 피해자들은 그날 이후 상당 기간 안에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여전히 강제동원 피해자와 관련한 여러 건의 소송이 각급 법원에 계류 중이다. 법률적 쟁점은 이번 판결로써 해소됐다. 남은 피해자들에겐 ‘신속한 정의’를 보여줘야 한다.

원고 이경자씨는 대법원 판결 전 언론에 공개한 자필 글에서 “역지사지를 생각해 보라.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 딸을 죽게 한 일본 정부는 사죄하고 미쓰비시는 각성하라”고 촉구했다. 가해 당사자인 미쓰비시 등 전범 기업들도 하루빨리 사과를 서두르길 글로나마 함께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