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비 기자 |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이 인정된 2012년 대법원 판결 이후 다른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잇따라 제기한 ‘2·3차 소송’이 오랜 지연 끝에 원고 측 승소로 결론이 났다. 소송이 제기된 지 꼬박 9년10개월 그리고 8년7개월만이다.
원고 중 광주·전남서 징용된 피해자들은 6명에 달한다. 2차 소송은 양영수·심선애·김재림 할머니와 오길애씨의 유족 오철수씨, 3차는 최정례씨의 유족 이경자씨와 김영옥 할머니다.
원고들이 일본에 끌려간 건 1944년 5월 말이다. 동네 구장 등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중학교도 보내준다’는 회유·강압에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소녀들은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갔다. 그러나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책가방 대신 하루 10시간에 달하는 무임금의 강제 노동뿐이었다. 오길애·최정례씨는 이곳서 반년 동안 노역을 하다 같은 해 12월 발생한 도난카이 대지진으로 무너진 공장 건물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현재 광주·전남 원고 중 생존자는 김영옥 할머니가 유일하다. 소송이 대법원에 계류돼 있던 5년 동안 심선애 할머니가 별세하셨고, 지난해 5월과 7월 양영수·김재림 할머니가 대법 선고가 내려지기 불과 몇 개월을 앞두고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이 ‘지연된 정의’가 된 이유다.
그나마 이번 판결들에서 의미 있는 점은 그간 일본 기업 측이 주장해 왔던 ‘소멸시효 만료’와 관련한 쟁점이 해소됐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피고기업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사실상의 장애상태가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 시까지 계속됐으므로 피해자들은 그날 이후 상당 기간 안에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여전히 강제동원 피해자와 관련한 여러 건의 소송이 각급 법원에 계류 중이다. 법률적 쟁점은 이번 판결로써 해소됐다. 남은 피해자들에겐 ‘신속한 정의’를 보여줘야 한다.
원고 이경자씨는 대법원 판결 전 언론에 공개한 자필 글에서 “역지사지를 생각해 보라. 솜털도 가시지 않은 어린 딸을 죽게 한 일본 정부는 사죄하고 미쓰비시는 각성하라”고 촉구했다. 가해 당사자인 미쓰비시 등 전범 기업들도 하루빨리 사과를 서두르길 글로나마 함께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