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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83> 여인을 잃고 통곡하는 끄앙처럼 먹구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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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83> 여인을 잃고 통곡하는 끄앙처럼 먹구름이…

베트남 달랏! 사랑의 원형 그리고 랑비앙 전설

게재 2022-08-18 15:43:54
랑비앙 라다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 차노휘
랑비앙 라다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 차노휘

달랏 시내에서 12km 떨어진 곳에 달랏의 지붕이라고 하는 산 두 개가 있다. 두 산은 락즈엉현에 위치한 두옹산(Núi Ông)과 바산(Núi Bà)이다. 바산은 해발 2,167m, 옹산은 해발 2,124m이다. 달랏시 중심에서 바라본 바산은 왼쪽에 있고, 옹산은 오른쪽에 있다. 이 두 산을 묶어 사람들은 랑비앙( Langbiang)이라고 부른다. 랑비앙은 꼬호족의 전설에서 끄랑(K'lang)과 호비앙(H'biang)의 이야기에 나오는 두 사람의 이름을 합성한 것이다.

랑비앙 입구 매표소 그리고 지프. 차노휘
랑비앙 입구 매표소 그리고 지프. 차노휘

옛날 이 산악지대는 소수민족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 중 라트족(tộc Lát) 족장에게 '끄랑'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두옹산으로 사냥을 갔고 그곳에서 열매를 따고 있는 여인을 본다. 그녀는 칠족(tộc Chil) 족장의 외동딸인 '호비앙'이었다. 라트족과 칠족은 조상대대로 원수지간이었다. 끄앙은 호비앙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함부로 여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예의에 맞지 않은 것 같아서 가던 길을 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갑자기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서 호비앙을 위협한다. 끄랑은 온 몸을 받쳐 늑대를 쫓아내고 무사히 그녀를 구한다. 첫눈에 서로 반한 그들은 사랑에 빠진다. 두 부족 간의 불화 또한 그들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엄격한 규칙과 종교 의식을 떠나 험한 산속으로 들어간다.

자연호수. 차노휘
자연호수. 차노휘

불행은 얼마가지 않아서 일어났다. 호비앙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갔다. 이미 부족사회에서 낙인이 찍힌 그를 도와주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호비앙의 아버지에게 부탁하러 갔을 때는 딸을 도둑질해 간 도둑이라면서 목숨까지 위협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를 진짜로 죽일 작정이었다. 암살자를 딸려 보냈다. 그들의 은신처를 찾아내서 호비앙을 데려오고 끄앙을 죽이라고 했다. 그 계략을 눈치 챈 호비앙은 끄앙을 향해 날아오는 독화살을 대신 맞고 죽는다.

연인들의 장소 랑비앙. 차노휘
연인들의 장소 랑비앙. 차노휘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끄랑은 슬픔에 빠져 몇 날 며칠을 천둥번개와 같은 울부짖음으로 보내게 된다. 그 눈물이 큰 개울로 흘러들어가서 호수(지금의 다님(Đạ Nhim); 꿈을 울린다)가 된다. 호수와 같은 슬픔을 쏟아내고도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그는 자살하고 만다. 두 사람이 죽은 후에야 호비앙의 아버지는 후회하며 여러 부족과 화해를 이끌어 낸다. 그때의 통일된 부족이 지금의 꼬호족(K'HO)이다. 그때부터 마을의 커플들은 다른 부족과 쉽게 맺어졌다. 그들의 죽음은 부족의 사랑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그들의 사랑의 열매를 영원히 기리고자 생전에 살았고 죽어서 묻혔던 산을 두 사람의 이름을 합쳐 '랑비앙'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달랏 시에 도착한 다음 날, 버스를 타고 랑비앙으로 향했다. 죽어서야 이루어진 사랑을 애도하기 위해서인 듯 산허리 즈음에 걸려 있는 안개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그 환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들이 이곳이 세속적인 관광지구나, 라는 것을 단번에 일깨워주었다. 상가에서 북적이는 관광객들보다 지프를 운전하는 사람들이 눌러대는 경음기는 날카롭게 신경을 긁었다. 흡사 도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지프를 모는 위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경보음처럼 들렸다. 그것을 타고 우리 일행은 1,929m 높이의 라다 언덕(đồi Ra-đa)까지 올라갔다.

랑비앙 트레킹(단체). 차노휘
랑비앙 트레킹(단체). 차노휘

랑비앙은 유네스코에서 세계 생물권 보존지역으로 등재되어 있지만 하이킹 붐이 아직 일지 않아서인지 등산로 정비가 미흡하다. 라다 언덕까지 3시간 걸려서 올라가려면 지프가 다니는 길을 공유해야 한다. 간혹, 지프요금을 지불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현지인이 기꺼이 좋은 전망대가 있는 언덕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그곳은 그렇게 올라갈 만한 가치가 있었다.

랑비앙 트레킹. 차노휘
랑비앙 트레킹. 차노휘
끄랑과 호비앙의 동상. 차노휘
끄랑과 호비앙의 동상. 차노휘

아름다운 전설 때문인지 전망대가 있는 라다 언덕은 연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포토존 또한 세심하게 신경 써서 만들어놓았다. 무엇보다도 자연경관이 경이롭다. 산도 산이지만 그곳에서 바라본 자연호수와 계곡은 눈이 부시다. 운 좋게도 당일 비가 온다고 했지만 그 모든 먹구름이 물러난 그날은 순결한 구름이 하늘빛에 걸렸고 시력이 허락하는 한 자연이 빚어놓은 아름다움을 속 내장까지 들여다볼 수 있도록 투명했다. 수시로 스콜이 온 대지를 휩쓸고 가는 달랏의 여름과 동떨어져 있었다. 우리가 전망대를 떠나 한 시간 동안 가벼운 하이킹을 하는 동안에도 따사로운 햇살이 정수리를 내내 어루만져 주었다.

사랑이야기는 어느 나라든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는가 하면 인어공주,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약간 결이 다르지만 춘향전이 있다고나 할까. 결말이야 어떠하든 금지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그 위기가 사랑을 용기로 변모하게 한다.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없으면 더욱 더 애달파지는 것이 또한 비극적인 사랑의 감정이며 이런 감정은 사랑에 깊이를 더한다. 결국은 새드엔딩으로 눈물샘을 자극하지만 이것은 곧 카타르시스로 작용한다. '나의 힘든 사랑'이 그들의 스토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위안감. 이 세상에서 이룰 수 없지만 저 세상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결국은 새드엔딩이 해피엔딩이라는, 사랑만이 모든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그 위대함으로 다시금 칭송하려고 한다. 만약 인류의 문화원형이 있다면, 그 시원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닐까. 그 오래전부터 나이 들지 않고 생존하고 있는 그 변화무쌍한 그 감정. 랑비앙에서 하산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통곡하는 끄앙처럼 랑비앙이 먹구름이 끼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거리감을 주었을 때에도, 경이롭게 그 산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사랑의 그 밑바탕에서는 '아픔'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