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슬이 방은 30도"… 빈곤가정 아동의 여름나기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사회일반
"예슬이 방은 30도"… 빈곤가정 아동의 여름나기
“선풍기서 더운 바람… 자다 깰 정도”||광주 화정동 오래된 주택서 거주 ||"좁은 집 함께 생활… 질병 취약"||온열질환 발병률 저소득층 21명
  • 입력 : 2022. 08.09(화) 17:43
  • 도선인 기자

9일 서구 군분로의 한 골목 주택에서 사는 예슬 양의 집 안 내부 온도가 29도를 가리키고 있다.

광주·전남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9일, 광주 서구 화정동의 한 주택가에 사는 예슬(가명·11) 양의 집 내부 온도는 30도에 육박했다. 외부와 다를 바가 없는 온도였다.

더욱이 다닥다닥 골목마다 붙어있는 주택 건물 탓에 창문을 열어도 좀처럼 바람이 통하지 않았다. 노후화된 주택 곳곳 벽면에는 습기로 인한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오전부터 달궈진 집안 내부는 선풍기를 틀어도 더운 바람만 맴돌 뿐. 더위 해소 방법이라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있는 정도가 전부였다.

방학 기간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예슬이는 너무 덥다 보니, 오히려 에어컨이 있는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두번, 아동센터에서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날은 그나마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어 손꼽아 기다리기까지 한다.

9일 서구 화정동의 한 골목 주택에서 사는 예슬 양이 선풍기 바람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예슬 양은 "샤워를 하루에 몇 번씩 한다. 얼마 전에는 너무 더워서 자다가 깼다"면서 "끈적끈적한 느낌 때문에 몸이 가렵고 너무 더우면 어지럼증을 느끼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아이는 성인보다 체온이 높지만, 체온조절 능력이 떨어져 더위를 더 잘 탄다. 노인과 함께 폭염 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북구 문흥동에서 지어진 지 30년 된 아파트에 거주하는 조모(65·여) 씨도 이번 여름이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오래된 만큼 단열과 통풍 기능이 떨어져 더위는 배가 된다. 에어컨 없는 집에서 버티다 보니, 아파트 거실 바닥에 찬물을 끼얹기까지 했다.

"하이고…. 말도 못 하게 더워요. 옛날 아파트라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너무 더워서 바닥에 물까지 뿌리고 어떨 때는 옷까지 벗고 있어야 해요."

손자 지혁(가명·19) 군도 더위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다. 지혁 군은 "최근 집안 온도가 30도가 넘어가면서 숨쉬기도 힘들 정도로 너무 덥다. 정말이지 꿈쩍도 하기 싫을 정도로 공부는 커녕 아무 의욕도 안든다"며 "불쾌지수가 올라가서 별거 아닌 일에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폭염은 평등하지 않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2020년 발표한 '폭염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고소득층(건강보험료 상위 20%)의 온열질환 발병률은 7.4명인데 반해 저소득층에 해당하는 의료급여수급자의 온열질환 발병률은 21.2명이나 됐다. 3배에 이르는 수치다.

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같은해 발표한 '폭염 민감계층의 건강피해 최소화 방안'에 따르면, 저소득층은 에어컨이 없는 비율이 14.1%로, 일반 인구집단(2.5%)의 7배 수준이다. 에어컨이 있는 경우에도 경제적 이유로 사용을 자제한다는 응답이 68.6%에 달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가 지난해 발표한 최저 주거빈곤 아동가구 실태조사도 폭염의 불평등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광주에서 주거빈곤가구로 추천된 115가구의 24.4%가 주거공간의 냉방상태에 불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정화 전남대학교 생활복지학과 교수는 "통상 도시형 주거빈곤 가구라고 하면 좁은 집에서 여러명의 가족들이 함께 거주하는 형태를 띤다. 이는 더위에 더 취약한 구조다. 특히 오래된 단독주택은 아파트보다 쉽게 달궈진다"며 "더위에 취약한 환경에서 아동, 노인들은 호흡기 및 피부 질환에 노출되고 영양 상태도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관, 아동센터 위주로 지원되는 낸난방 지원 사업을 취약계층 가구마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광주지역본부는 관내 저소득층 가구 대상으로 냉방기기 및 냉방비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후원 문의 062-351-3513.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