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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광장·안경주> '능동적 주체'로 사는 삶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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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광장·안경주> '능동적 주체'로 사는 삶의 출발점

안경주 전남여성가족재단 원장

게재 2022-06-30 13:05:54
안경주 원장
안경주 원장

인간은 다양한 활동을 한다. 우리의 일상은 종류가 다른 다양한 것들로 채워진다. 그중 어떤 것을 의미있는 노동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의 능동성에 가치를 부여하는 활동으로 규정한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우리는 매일 쉬지 않고 선택하며 고민하며 살아간다. 5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 요즘 앙드레 고르의 '에콜로지카'를 비롯한 생태경제학이 주목받고 있다. 앙드레 고르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생산-소비-친밀성 체제에 완벽히 종속되어 폐쇄 회로망에 갇혀 있는 우리의 몸과 정서를 배열하는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 삶과 세상을 바꾸는 페미니즘'이라는 부제가 붙은 연세대학교 김현미 교수의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책에 소개된 이야기를 잠깐 들여다본다.

앙드레 고르는 인간의 노동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타율노동, 자율노동, 자활 노동이 그것. 타율노동은 사회적 필요에 의해 명령된 노동이다.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을 수행하는 것으로 우리가 익히 아는 경제적으로 합리화된 임금노동이 이에 해당한다. 자율노동은 개인의 욕구와 일치하는 자발적으로 명령한 활동이다. 자신의 자발적 의지로 참여하는 다양한 관계망을 활용한 활동으로 NGO나 마을 활동처럼 관계를 맺고 지역사회를 살려 사회를 유지하는 노동을 말한다. 사람들과 우연한 만남에 의한 친교와 연대, 그러한 활동을 통해 얻게 되는 기쁨과 쾌락의 가능성까지를 포함하는 것이 자율노동이다. 마지막으로 자활 노동이다. 먹고 입고 집을 관리하고 아이를 길러내는 등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의 생존과 성장, 유지에 요구되는 기본적인 일을 말한다. 자활노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은 무임 노동인 데다 엄마라면, 딸이라면 마땅히 해야 한다는 우리 시대의 젠더 규범이 덧붙여져 억압적인 노동이 돼버렸다. 하고싶지 않은, 억울한 노동 영역이 됐다.

옛 어른들은 (지금은 아니지만) 아들이 부엌에서 설거지하거나 집안일을 하는 것을 말렸다.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아들이 자라 평생 다른 사람의 자활 노동에 의존해 삶을 사는 의존적 인간이 된다. 평생 대접만 받고 살아서 복지관의 급식대 앞에서 식판에 자기 음식을 채우는 법도, 다 먹은 식판을 반납해야 한다는 사실도 인지 못 하는 어르신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가 늘 도와줘야 한다. 이 자활 노동이 여성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노동이 되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자활 노동은 인간이 자신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해 당연히 해야만 하는 노동이며 남녀를 불문한 기본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자활 노동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은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어떠한 기본 활동을 해야 하는지를 어릴 때부터 배우지 않고 성인이 되어서도 생활지수가 제로인 경우가 많다. 간혹 엄마들이 자기 딸이 설거지하는 것을 말리는 일이 있다. 시집가서도 할 건데 내 집에서는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성별화된 노동이 낳은 폐해가 얼마나 컸던지 그 엄마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문제는 20세가 넘은 성인인데도 밥도 못 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돼있다. 자신의 생존을 책임질 기본 노동이 생략되다 보니 생활지수, 생존 능력이 떨어진다. 자신에 대한 돌봄을 늘 타인의 노동에 의존해 살다 보면 자신과 타인을 돌볼 수 있는 관점과 태도를 익힐 기회를 영구히 잃게 된다.

집안을 청소하면서 정리 능력을 배우며 요리를 하면서 협동을 배운다. 정리 능력은 공간의 구성과 배치, 분류와 관련된다. 모든 학문의 시작과 끝은 분류 즉 범주화이다. 사물과 세계에 대해 구분하고 분류하고 배열하며 범주화하는 작업을 통해, 분석하고 비교하며 연관 짓고 종합화하는 작업을 해간다. 인간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과 적극적 관계 맺기 시작하고 이러한 활동으로부터 배우고 익힌다. 이때 이러한 노동을 엄마나 누군가 모두 대신해 본인이 직접 자활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 생활의 현장에서 자기 삶의 생존력을 높여가는 능력을 훈련할 기회를 상실한다. 소통하며 협력하는 훈련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건강한 가정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적정한 의무를 지며 그에 따른 권리를 보장하고 행사하는 공동체다. 누군가의 전적인 희생과 봉사는 구성원들의 자활 노동을 대신해줌으로써 서로의 성장과 행복을 가로막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서로 다른 세대가 건강하게 공존하며 양성이 평등하게 상생하기 위해 가정 내 구성원들의 자활노동이 훈련될 필요가 있다. 자활노동을 익히는 것은 자립과 자급의 출발점이 된다.

'힐러리에게 암소를'이라는 부제를 지닌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라는 책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영부인 시절 힐러리 클린턴이 방글라데시를 방문해 낙후된 농촌 사회의 여성들을 만난다. 이들 여성을 구제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뤄진 만남이었다. 여성들이 힐러리에게 물었다. "무슨 일을 하세요?" 힐러리가 "미세스 프레지던트예요, 영부인"이라고 답했더니 이 여성들은 근심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 어떻게 하냐. '누구의 부인'으로 어떻게 그렇게 의존적으로 사느냐, 아무래도 우리가 힐러리에게 암소 한 마리를 줘야겠다"고 했다 한다. 힐러리에게 생산수단을 줘 자급 관점, 탈의존적 경향, 능동적 주체성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고 했다는 얘기다.

예로 든 자율노동, 자활노동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하는 일의 중요한 관점과 태도를 말해주고 있다.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자립적 훈련은 능동적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개인은 타인 또한 잘 돌볼 수 있는 태도와 관점을 갖게 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언명의 핵심은 내 몸을 잘 돌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물론 이 조항은 남녀 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