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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승호> 백아산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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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승호> 백아산은 알고 있다

정승호 이서 백아면 피해자 대표

게재 2022-06-23 12:59:11
정승호 대표
정승호 대표

산 형세가 흰 거위와 비슷하여 백아산이다. 지금은 구름다리가 설치되어 등산객이 많이 찾는 유명한 산이 되었지만 1950년부터 1954년까지 5년간은 핏물로 얼룩진 동족상잔의 전쟁터였다. 피아간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갔다. 그래서 백아산 철쭉꽃은 해마다 붉게 핀지 모른다.

인천상륙작전으로 패잔병이 된 빨치산들은 백아산, 지리산, 백운산, 백암산 등으로 숨어들었다. 11사단 토벌군은 빨치산 토벌 작전 수행을 위해 이서면 월산마을 뒷산 고지에 진지를 구축하고 무등산 뒷마을부터 백아산에 걸쳐 있는 산간마을 50여 마을을 모조리 소각했다. 주민들은 엄동설한에 삶의 터전을 잃고 사방으로 남부여대 살길을 찾았다. 매일 주민들은 소나무 대나무를 베어 울타리를 치고 군 두둔지 호를 파고 울타리 작업에 동원되었다. 소개민들은 배가 고파 굶주림에 시달려 얼굴이 붓고 노랗게 되어 죽은 사람이 많았다.

토벌군이 잡아온 사람들은 대부분 민간인들이었다. 토벌군이 무서워 산으로 도망간 사람이지 공비도 빨치산도 아니었다. 피해 주민들은 잿더미 쑥대밭이 된 옛 집터에 막집을 짓고 농사를 지어 연명을 하고 살았으나 국가에서는 복구사업이나 피해보상이라곤 전혀 없었다.

주민들 스스로 재생의 길을 찾아 지내다보니 1960년 자유당 부정선거로 4·19 혁명에 이어 5·16 쿠테타가 일어나 국군이 민간인 집에 불을 질렀다고 어느 곳에 말 한 마디 못하고 살았다.

암울한 군사독재 정부가 무너지고 민주화 바람이 일어나 노무현 정부 2005년에 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되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생각에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그러나 재산 피해는 진실 규명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살고 있는 집은 단순 일반적 재산이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생명권에 해당 되는 것이다. 즉 생존권을 박탈한 것이다. 위원회의 법적 해석에 동의할 수 없어 이의신청 등 진정서를 계속 제출 하였으나 나의 주장은 헛수고였다.

그러던 중 양민학살 희생자 조사 과정에서 이 진실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진실비명서에 수록되었다. 그러나 국가에서는 피해보상에 대해서는 현행법상 어렵다고만 하고 특별법을 제정하여 보상은 해줄 노력은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피해지역에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2006년부터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수차례 진정서를 냈으나 공염불이었다. 국회의원이 할 일을 주민이 그 정보를 제공했으면 앞장서서 일을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과연 그런 국회의원들이 자격이 있는가 의심스럽고 한심스럽다.

한국전쟁사에도 은폐 왜곡으로 기록 되어 있어 진실대로 기록해 줄 것을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에 요청하고 행정심판까지 제기 했으나 들어주지 않고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국방부에서는 법에 의해 설치된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 규명 관련 내용이 대부분 공식 전과 보고 기록에 들어 있지 않기에 피해자들의 일방적 주장을 인정할 수 없고, 민간인 희생 사건 자체가 전사의 기록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적반하장이요 반민주적 망설이라고 본다. 대통령에게 진정을 하면 국방부에 이첩을 하고, 국방부에 진정을 내면 진실화해위원회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진정을 하면 담당 조사관의 말이 힘이 부족해서 민원인의 요구를 충족할 해결법이 없다고 한다. 민원 처리를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리 보내고 저리 보내고 한다.

요사이 뉴스에 백아산 전투 전사자 유해 1구를 발굴했다고 전하고 있다. 70여년이 지난 과거사를 잊지 않고 애국전사 유해 발굴사업은 참 잘한 일이다. 그런데 동시에 할일이 있다. 백아산 작전 시 주변마을 50여 마을을 불을 질러 공비토벌작전을 한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위로와 사과를 하는 일이다.

국방부에서는 할일을 잊은 것 같다. 향토사단인 31사단에 민원을 냈으나 민원처리 담당장교 회신은 여러 가지 여건상 민원에 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공비들을 백아산 속으로 고립시킬 목적으로 민가를 소각한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위로 사과의 말 한마디 할 수 없을 만큼 책임감이 없는 군부는 아직도 군사독재의 잔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통탄할 뿐 힘없는 피해 주민은 과연 어디에 호소해야 한이 풀어지고 해결될까 망망하기만 하다.

왜곡되고 숨겨진 진실은 영원히 감출 수 없을 것이다. 백아산은 기억하고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