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형 사고와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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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후진국형 사고와 트라우마
노병하 사회부장
  • 입력 : 2022. 01.19(수) 16:33
  • 노병하 기자
노병하 사회부장
어느해 봄날 오전, 갑자기 큰 배 하나가 침몰했다. 수백명의 아이들이 탄 배였다. 다행히 긴급보도에서 '전원 구출'이라고 떴다.

안심하던 찰나, 그것이 오보였음이 밝혀지면서 대한민국이 들썩였다. 그날 많은 아이들이 배와 함께 물 속에 잠겼다. 어른들의 '가만 있으라'는 말을 믿고.

이 사건은 대한민국 전역에 큰 충격과 트라우마를 안겼다.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나 가족이 사라진 사람들 이외에도 한동안 많은 이들이 배를 타는 것을 두려워했다.

기자들에게도 트라우마를 안겼다. 당시 가족들이 머물던 진도체육관은 기자들이 자거나 기사를 쓰기도 한 곳이었다. 주로 윗 층의 관중석에 기자들이 있었다. 그 큰 공간을 가득 채운 침묵의 무거움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절대 알수 없다.

기침 소리, 한숨 소리 한번 내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가족들의 눈물과 간절함이 잔인하리만큼 생생하게 전달돼 와 거기서 하룻밤이라도 보낸 기자들은 다음날 업무 교체를 요구하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2주를 버티면서 기사를 썼다. 바닷 속에서 아이들이 건져질 때마다 그것을 보기 위해 뛰어갈 때마다 가족도 기자도 경찰도 모두 마음 한구석이 부서져 내렸다.

그때 우리는 그 사고를 '후진국형 사고'라고 불렀다.

그리고 10여년이 흘렀다. 지난해 광주 동구 학동에서 건물이 무너졌다. 피해자는 건물에서 일하던 인부도 아닌, 그저 밖에서 버스에 타고 있던 일반 시민이었다.

현장에서 시체를 찾아낸 소방대원들은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인근 주민들 역시 천둥소리만 들려도 아직까지 벌벌 떤다고 했다. 그때도 우리는 '후진국형 사고'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1월 11일, 신축 아파트가 공사 중 붕괴했다. 붕괴 장면이 지나가던 차량의 블랙박스에도 찍힐 정도로 엄청났다. 사고 원인은 조사 중이지만, 이 역시 '후진국형 사고'라고 말한다.

왜! 우리는 인간의 목숨이 가치 없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후진국'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야 하는가. 그것이 우리가 할수 있는 위안의 전부인가? 그리고 트라우마는 가해자가 아닌 일반 국민들이 받아야 하는가. 이것은 바뀌지 않는 어떤 법칙 같은 것일까?

세월호 취재를 마무리 하고 복귀하던 그 봄날, 결국 광주까지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차를 멈춰 한참 어깨를 들썩였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서였다.

그 미안함이 지난해부터 다시 살아나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지난 10여년간 뭘 했단 말인가.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