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음高麗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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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고려음高麗飮'
  • 입력 : 2022. 01.09(일) 18:12
  • 최도철 기자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 가까이 지내는 스님 뵈러 절집에 가면 어김없이 들었던 말이다. 인적 드문 암자에서의 따순 차 한 모금, 세상 어떤 감로수가 이보다 더 달까.

한국의 차(茶) 문화는 불교와 함께 성쇠를 같이했다. 사찰은 그 맥을 잇는 장소로 차 문화를 향유한 승려들의 수많은 시문과 행적이 남아 있다.

유홍준을 주요 저자로 등재한 '한국의 차 문화 천년'을 살펴보면 왕실에서 음용된 것을 제외하고, 차 문화의 명맥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은 승려들이 선(禪)의 한 방편으로 나눈 다례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7세기 중반 이미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왕족과 귀족, 그리고 불가의 승려 사이에서 차가 크게 유행했는데, 일반 서민의 기호식품으로까지 확대되지는 못했다. 조선에 들어서는 불교의 쇠락과 함께 차 문화도 다소 위축됐지만, 궁중이나 민간의 의식용으로 여전히 쓰였고, 사찰의 승려들이 구도(求道)의 한 방편으로서 차 문화의 맥을 이었다.

특히 조선 후기 다도를 정립해 다성(茶聖)이라 불리는 초의선사와 함께 혜장스님,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시대에 이르러서는 차 문화가 절정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어떤 그릇에 담은들 그 맛이 변할까마는 잘 우려낸 차와 전통 술은 비색청자, 상감청자로 제작된 다구(茶具)와 주기(酒器)를 쓰면 한결 운치가 있다.

국립광주박물관이 겨울을 맞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전시전을 열고 있다. '고려음高麗飮- 청자에 담긴 차와 술 문화' 특별전이다. 올 3월 20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고려는 물론 한국 문화의 정수(精髓)로 꼽히는 고려청자의 쓰임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기 위해 마련했다.

전시 '고려음高麗飮'은 통일신라 동궁(東宮) 월지(月池)에서 출토된 참나무로 만든 주령구 등 전국의 박물관과 관련 기관이 소장한 다구와 주기 250여 점을 엄선해 소개한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역질로 세상살이가 온통 뒤틀려 버린 지 벌써 2년여. 살가운 지인들 만나 정담 나누기조차도 여의치 않은 때 따뜻한 차 한 모금 떠올릴 수 있는 전시를 만나보는 것도 작은 위안이 될 듯하다.

조선의 승려 기화가 진산(珍山) 스님 영전에 올린 게송을 읊조린다. "한 잔의 차는 한 조각 마음에서 나왔고/ 한 조각 마음은 한 잔의 차에 담겼네./ 부디 이 차 한 잔 맛보소서/ 맛보시면 무량의 즐거움 생길지니."

최도철 기자 docheol.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