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 세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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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역적 세 놈'
  • 입력 : 2022. 01.05(수) 16:06
  • 이용환 기자
이용환 문화체육부장.


"대한에 큰 역적 세 놈이 있어 근일 기탄없이 까불며 나라를 병들게 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 정부는 알지 못하여 아니 잡는지, 알고도 짐짓 엄호하는지 그 까닭은 진실로 알 수 없도다.… 이에 우리가 마지 못해 이 역적 놈들의 성명을 광고하노라." 1899년 2월25일자 독립신문에 나오는 '역적 세 놈'이라는 기사의 일부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제목부터 도발적이지만 읽어보면 기울어가는 대한제국에 기댄 채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간신들에 대한 탄식이다. 백성의 안위보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관리를 향한 통렬한 야유이기도 하다.

독립신문이 언급한 3명의 역적은 금적, 직어, 소곤이다. 이들의 죄상은 "어진 사람을 질시하고 능력있는 사람을 미워하며, 무리와 당을 지어 자기 가까운 사람들만 호의호식하는 것"이다. 죄 없는 이들이 누명으로 관직에서 떨어지고 되레 무식한 사람이 높은 직위에 오르는 것, 일부 역적의 꼼수에 휘둘려 백성을 지켜야 할 관리가 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도 이들의 횡포다. 눈을 꿈적거린다며 지어낸 금적, 손으로 남을 꾹 찍어 쳐 낸다는 의미의 직어, 남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아첨한다는 소곤이라는 이름도 재미있다.

1970년 시인 김지하도 사상계에서 '5적'을 발표해 세상을 발칵 뒤집었다. 김지하가 말한 5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 다섯이다. 국민 다수가 독재에 시달리고 가난하게 살던 시절, 부정부패로 엄청난 부를 축적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5적은 독립신문에 나오는 '역적 세 놈'이나 마찬가지다. 여기에 추상같은 어명을 받아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할 포도대장마저 5적에 매수됐다고 했다. 당시 권력의 시녀였던 경찰과 사법부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다.

더 우울한 것은 독립신문이 발간된 지 한 세기가 훨씬 더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에 금적이나 직어, 소곤 같은 역적이 기승을 부린다는 것이다. 당장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나라의 미래나 국민의 안위보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지금도 눈만 꿈적거리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찍어내고, 끼리끼리 모여 소곤소곤 모사를 꾸미는 행태도 직어와 소곤이다. 뻔뻔한 거짓말도 일상이 됐다. 탐관오리의 횡포를 알면서도 침묵하는 관리의 모습마저 똑같다. 독립신문이 창간된 지 올해로 꼭 126주년, 독립신문의 기상을 빌려 '역적 세 놈'을 추상같이 나무라고 싶다.

이용환 기자 yhlee@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