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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26>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통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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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26>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통 예술

게재 2021-12-26 14:46:15

2021년 다사다난(多事多難) 했던 해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새롭게 맞이하는 해마다,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익숙한 이미지들이 하나씩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내년 2022년 임인년(壬寅年)을 맞이하여 많은 예술가들이 호랑이 그림을 온·오프라인으로 보여주는 기념 달력과 SNS연하장 그리고 전시회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26번째 칼럼 '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여 우리나라 전통 예술, 민화(民話)의 이미지와 역사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았다.

민화는 조선 후기 소박한 서민미술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본래 왕실에서 사용됐던 궁중 장식화를 기반으로 18, 19세기 상공업의 발달과 여유로운 시대상을 기반으로 문화예술에 관심이 고조되면서 서민층까지 널리 전파돼 민화로 이어진 것이다. 예술은 예로부터 고급문화로 왕실이나 상류 신분의 전유물이었다. 조선 후기에 민화가 그려지며 대중성을 지니게 됐을 때, 궁중 장식화와 민화는 왕실 화원이 그린 그림과 자유로운 필치로 작자 미상의 무명화가가 그린 그림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표현의 근간은 어쩌면 같았다. 왕실에서 서민층까지 조선 후기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작가로서 창작열과 작품에 담긴 염원은 일치한다는 의미이다. 덧붙여 무명화가에 이르러 작품이 양산됐기에 이들도 창작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수준 역시 숙련돼 갔다. 궁중에서 규제하는 요소들에 제한을 받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더 독창적이고 다채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 Korean folk painting (한국 민화)" 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그 속의 호랑이, 용, 토끼, 닭, 꿩, 거북이가 다 우리들과 같이 춤출 수 있는 친구들로 표현 된 그림이다. 필요할 때는 비도 오게 하고 귀신도 쫓아주고 복도 갖다 주는 영물들이다. 그 속의 나무, 바위, 물, 구름까지도 다 신령이 깃든 대상들이다. "

조자용(趙子庸, 1926~2000)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민화를 처음 전시할 때 전시장의 해설사들이 미국 관람객들에게 생소한 민화를 설명하던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민화가 자유분방하고 격외적인 것은 외래문화의 영향을 덜 받은 민중들이 순수하게 그렸기 때문이다. 작가 미상의 민화는 많은 민중 화가들 대부분 정식 미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과거 그들의 그림은 귀족들의 그림보다 세련미나 격조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점차 그들의 그림은 나름의 시대적 정서와 서민들의 생활환경을 잘 표현 한 '좋은' 장르의 작품이라는 재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민화인 조선시대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 는 다섯 개의 산봉우리, 해와 달을 그린 그림으로 각 궁궐 정전(正殿)의 어좌에 병품처럼 꾸며져 설치되었다. 조선 궁궐은 총 5곳이나 실제 사용되었던 곳은 경북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구 경운궁)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현재는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덕수궁의 중화전에 일월오봉도가 배설되어 있다. 어좌 뒤에 놓인 <일월오봉도> 는 절대자가 다스리는 세계를 시각화 한 것으로 음양과 오행의 원리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왕의 초상인 어진(御眞)을 모신 곳에도 배설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어진을 이동할 때에도 항시 일월오봉도를 배설했으며 왕이 죽고 난 후 시신을 모실 때에도 일월오봉도를 함께 배설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는 해와 달의 도상이 빠진 오봉도 장자와 장지문이 여럿 전한다. 형식으로 4폭이나 8폭의 병풍, 삽병(揷屛), 장지문 형식 등 다양한 형태로 조성되었고 대중적인 형식은 8폭과 10폭 병풍이다. 높이가 4미터에 가까운 것도 있지만 대개는 2미터 미만인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_247×333cm_조선 후기_ⓒ국립고궁박물관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_247×333cm_조선 후기_ⓒ국립고궁박물관

두 번째, 신년보희(新年蕔喜) 라는 새해인사를 대신하는 그림으로 알려진 민화들은 올해의 안 좋은 기운을 내보내고 새해의 기쁜 소식만 담으라는 뜻과 액막이로 문에 붙이거나 신년 선물용으로 이미지가 사용되었다. 이런 문화의 형식은 그 땅에 살고 있는 모든 것들과 연결하며 공유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만들어 주는 동양철학 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민화 안에서 호랑이와 표범은 나쁜 기운 즉 액(厄)을 물리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된다. 호랑이가 민화에 더 많이 그려지게 된 이유는 우리 민족은 호랑이가 표범보다 훨씬 친숙하고 영험한 동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또 호랑이나 표범이 나오는 그림에서 대부분 소나무나 까치가 함께 하고 있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까치 호랑이' 그림은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 서민들의 자유롭고 해학적이며 풍자적인 표현을 담아 호랑이의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자세로 그려져 다양한 민화적 특징을 통해 다의적 의미를 선보여주고 있다.

호작도(虎雀圖)_종이에채색_100.5x60cm_19세기_이우환컬렉션ⓒ프랑스기메동양박물관소장
호작도(虎雀圖)_종이에채색_100.5x60cm_19세기_이우환컬렉션ⓒ프랑스기메동양박물관소장
까치 호랑이_종이에채색_55x90cm_1967년 조자용 발견_ⓒ호암미술관소장
까치 호랑이_종이에채색_55x90cm_1967년 조자용 발견_ⓒ호암미술관소장
우리나라신년맞이풍습_ⓒ네이버이미지
우리나라신년맞이풍습_ⓒ네이버이미지

이처럼 민화는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와 고유문화(固有文化)가 잘 드러나 있고, 우리 생활 속에서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백성의 그림이 틀림없지만, 한국 중요 회화사에서는 소외 받았던 점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민화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며 특정 계층이 향유하던 문화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미술장르로 자리 잡았다. 최근 세계 곳곳에 소장된 우리나라의 전통 민화는 한국적 채색화로 높은 인정을 받아 새롭게 재평가되어지고 있다.

처음 모방에서 시작됐으나 폭넓은 작품을 제작하게 된 민화는 근대에 이르러 예술성을 인정받게 됐으며 현재는 민화를 기반으로 취미 혹은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오늘날까지 민화가 이어지게 된 계기는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삶의 애환을 달래는 예술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민화는 동시대의 가치를 담는 창작 민화로 발달해 가고 있다. 단지 기존의 민화를 재현하는 영역에서 벗어나 현 생활과 관련된 소재, 혹은 작가 특유의 개성을 투영하고 있다. 감상자는 비로소 민화를 통해 현시대를 바라보고 이들이 원하는 바를 유추할 수 있다. 이에 훗날 현대 민화 역시 조선 후기 전통 민화와 같이 역사적 사료로서 대중의 삶과 시대의 흐름을 비추는 중요한 보물이 될 것이다.

다가오는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