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사옷입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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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망사옷입은 은행나무
  • 입력 : 2021. 10.07(목) 17:24
  • 편집에디터
이기수 수석 논설위원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절기인 한로를 맞았지만 늦더위탓인지 광주 주요도로 가로수인 은행나뭇잎은 아직 푸르스름을 유지하고 있다.하지만 은행나무는 잎색깔과는 달리 열매는 노랗게 익었다.매년 이맘때가 되면 은행나무가 보도위로 쏟아낸 열매로 인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기 일쑤였다. 열매가 역한 냄새를 풍겨서다.악취를 내는 것은 열매 바깥껍질에 있는 은행산(aid)과 점액질의 빌로볼 (bilobol) 성분 때문이다. 열매가 아스팔트 도로위에 떨어지거나 사람발에 밟히면 이 점액질이 터져 마치 인분냄새를 내뿜는다. 행인들은 이런 점을 알기에 은행 열매를 밟지 않으려고 살얼음 위를 걷듯이 나무 아래를 조심스럽게 통과하고, 상인들은 악취로 인해 장사가 안된다며 해당 자치구에 민원을 제기해왔다.한데 올해는 이 고질적인 계절성 민원이 많이 줄듯 싶다. 행정기관의 노력 덕분이다.서구는 진동 수확기를 도입해 열매를 처리하고 있다.동구와 북구, 남구는 은행나무 열매 수집 전용 그물망을 설치했다. 광주를 상징하는 금남로의 은행나무들도 이 그물망을 두르고 있다. 동구는 지난 2018년 광주 한 업체가 개발한 은행나무 열매 수집 장치를 지자체중 처음으로 시범 설치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자 설치 지역이 광주 전역으로 확대 된 것이다. 파란색 깔때기 모양을 한 이 아이디어제품은 가정집 모기장에서 착안한듯 보인다.비바람에 은행열매가 떨어지면 둥글게 입을 벌리고 있는 그물망에 걸려 아래로 내려와 하단부에 열매가 쌓여 수거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나무가 파란 망사 하의를 입은 것 같은 모습이다. 이런 조치로 인해 도심 거리는 한결 쾌적해진 느낌이다.하지만 얻은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너무 튀는 색깔과 부자연스런 그물망은 도시 미관과 시민 정서를 해치는 면도 없지 않아보인다. 광주 가로수 암행목에 설치될 그물망 숫자는 점차 증가할 전망이다.각 자치구는 매년 예산을 늘려 그물망 설치를 확대할 계획이어서다.광주시에 따르면 시내 전체 가로수 16만 194그루 가운데 은행나무는 4만 4972그루인데 열매가 열리는 암은행나무가 8145그루에 달한다. 1만그루에 가까운 가로수에 그물망이 설치될 경우 도심 풍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개선의 손길도 필요해보인다. 도시미관과 시민정서를 두루 고려한 공공디자인개념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매년 샛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땅바닥에 나뒹구는 열매 모습을 보면서 가을 정취를 만끽했던 감수성이 남다른 시민들에게는 이물감을 주는 그물망 설치가 반갑지 않을 수 있다. 사람 통행이 적은 곳 은행나무에는 그물망 설치를 하지 않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는 이유다. 은행나무는 여름철 녹음과 가을철 금빛 단풍 제공은 물론 병충해에 강하고 도심 공해 정화 능력이 뛰어나 가로수로 각광을 받았는데 열매 악취로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 급기야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기에게 기저귀를 채운 것처럼 여겨져 은행나무와 인간과의 공생문제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기수 수석논설위원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