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건물 붕괴사고>"삼풍과 다를바 뭐냐"… 원시적 대참사에 시민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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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광주 건물 붕괴사고>"삼풍과 다를바 뭐냐"… 원시적 대참사에 시민 분노
광주 건물붕괴 9명 사망·8명 중상||수평하중 무시한 방식 사고 예견||도로통제·제한도 없이 공사 강행||붕괴 조짐에 인부들만 대피라니
  • 입력 : 2021. 06.10(목) 17:06
  • 노병하 기자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돼 지나가던 버스를 덮쳤다. 119 소방대원들이 무너진 건축물에 매몰된 버스에서 승객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9명의 생명을 앗아간 어이없는 사고의 본질은 역시 후진적인 안전불감증이었다.

지난 9일 오후 4시22분께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사업 근린생활시설 철거 현장에서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시내버스와 인도, 편도 4차선 도로를 덮쳤다. 이 사고로 버스에 타고 있던 17명 중 9명이 숨졌고, 8명이 크게 다쳐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수사관 40여 명을 투입해 전담수사반을 꾸려 부실공사와 안전점검 소홀 여부 등을 조사 중이며, 위법 사실이 드러나면 관련자를 처벌할 방침이다.

10일까지 밝혀진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이번 사고는 안전사고, 즉 인재(人災)였다.

현재 경찰 당국이 조사 중이지만 건물 붕괴로 인한 인명피해 발생은 위험도에 비해 부실한 안전 점검·관리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너진 건물은 굴삭기로 구조물을 조금씩 허물어가며, 위에서 아래로 허무는 이른바 '탑다운' 방식으로 철거 중이었다. 안전사고 위험이 높은 공정인데다 해당 현장의 경우, 이미 뒤편 일부를 허물어 버린 상태여서 구조가 불안정한 건물 앞 편이 도로변으로 쏟아질 가능성이 높았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고 장소에서 굴삭기는 4~5층 높이의 폐자재·흙더미 위 건물 뒤편 벽체를 부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8일 건물 뒤편 아래층 일부를 허문 뒤 쌓은 폐자재·흙더미 위에서 작업한 것이다. 이 경우 수평 하중이 앞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어 애초부터 인도·차도 쪽부터 철거했어야 했다. 그래야 붕괴 사고가 발생해도 인도 반대편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게 된다. 더욱이 해당 현장은 굴삭기 무게를 지탱할 안전장치도 없었다.

종합하면 수직·수평 하중을 고려하지 않은 철거 방식 탓에 굴삭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흙더미 또는 벽(기둥 역할)이 갑자기 무너져 내린 것이다.

더군다나 사고 발생 당시 철거현장에 공사를 관리·감독하는 감리자도 없었다.

감리자는 사업자와 시행자 사이의 중립적 위치에서 해당 공사가 설계도대로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시공 관리, 공정 관리, 안전과 환경관리 등에 대한 기술지도를 하는 현장 관리감독자다. 부실공사와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필수인력이지만, 이번 사고 당시에는 현장에 있지 않았다.

시공사인 HDC 현대산업개발 측은 "규정상 반드시 상주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은 없다"며 "감리 분야는 비상주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사고발생 위험도가 매우 높은 현장임에도 의무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감독자가 부재한 것이다.

철거 업체의 어처구니없는 대처도 분노를 유발케 한다. 사고 당일 건물이 앞쪽으로 쏠리며 무너질 위험이 높았고 특이 소음 등이 나면서 명확한 이상 징후가 발생했다. 이때 철거 업체가 제대로 된, 아니 최소한의 후속 조치만 취했어도 사람이 죽는 사고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철거업자들은 아무런 조치없이 자신들만 대피했다.

광주시민들은 "이게 삼풍백화점 사고와 다를 바가 뭐가 있냐? 그때도 관계자들은 자신만 살려고 도망갔다"면서 "하다못해 신고를 하든 보고를 하든, 뭐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크게 분노하고 있다.

삼풍백화점 사고란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구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부실공사로 붕괴되면서 502명이 사망하고 실종 6명, 부상 937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고를 말한다.

사고가 발생한 날 뿐만 아니라 철거업체는 공사기간 내내 허술한 가림막을 사이로 대로변과 접해 있었으면서도 차량 통행을 제한하지 않았다.

인근 주민들이 "왜 철거 현장 바로 앞에 승강장을 그대로 뒀는지 불안한 마음이 늘 있었다"고 말할 정도로 불안을 느꼈지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부주의와 후진적인 안전 의식 때문에 건물은 무너졌고 죽어서는 안 될 안타까운 9명의 생명이 사라졌다.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