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네 사진을 걸어주게 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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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네 사진을 걸어주게 됐구나"
●전재수 열사, 사진 묘비 제막식||41년 만에 유품 정리 중 얼굴 사진 찾아||5·18 당시 신발 줍는 도중 오인사격에 참변||"잊은 줄 알았는데"… 유가족 참배하며 오열
  • 입력 : 2021. 05.05(수) 17:14
  • 김해나 기자

전재수 열사 41주기 사진묘비 제막식이 열린 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유족 전재룡씨가 전 열사의 영정 사진을 교체한 후 오열하고 있다.

전재수 열사 41주기 사진묘비 제막식이 열린 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유족 전재룡씨가 41년 동안 무궁화 사진이 담겨 있던 전 열사의 영정 사진을 교체하고 있다.

"재수야. 형이 이제 와서 미안해. 이게 네 얼굴이야."

12살의 어린 동생이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한 지 40년이 넘었다. 그 흔한 사진 한 장도 없어 묘비에 무궁화 사진으로 동생 얼굴을 대체했다. 강산이 4번이나 바뀌는 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그런데 기적처럼 동생 얼굴을 찾았다. 지난 1월 오래된 유품 속에서 가족들을 기다렸다는 듯 단 한 장의 얼굴 사진이 발견된 것이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오인 사격으로 숨진 '오월의 막내' 전재수 열사의 묘비가 41년 만에 사진을 품었다.

5·18유족회는 5일 오전 11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전재수 열사 41주기 사진 묘비 제막식·추모제'를 열었다.

제막식에는 전재수 열사 유족과 5·18유족회 관계자, 광주시 관계자, 정동년 5·18기념재단 이사장, 오월어머니, 전 열사의 모교인 효덕초교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당시 효덕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전 열사는 1980년 5월24일 광주 남구 진월동 마을 앞동산에서 또래 친구들과 놀다 참변을 당했다.

광주 재진압 작전 준비를 위해 광주비행장으로 향하던 11공수여단이 전 열사와 그의 친구들을 향해 총을 난사한 것이다. 무장 시민군으로 착각한 계엄군의 오인 사격이었다.

총소리에 놀라 도망치던 전 열사는 생일 선물로 받은 고무신이 벗겨져 주우러 돌아섰다가 총을 맞았다. 다리, 허리 등에 여섯 발 이상의 총을 맞고 숨졌다.

어린 나이였기 때문일까, 그 흔한 사진 한 장도 집에는 없었다. 그렇게 그는 영정 사진을 대신한 무궁화 사진을 묘비에 붙인 채 41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큰 형 전재룡(60) 씨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가족사진 속 전 열사를 발견했다. 유족들은 마치 전 열사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기뻐했다.

이후 전 열사가 좋아했던 어린이날 사진 묘비 제막식을 열게 된 것이다.

제막식 동안 유족들은 저마다 부둥켜안거나 눈물을 닦아내며 전 열사의 사진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유족 대표로 나선 전 열사의 형 전재룡 씨는 흐느끼며 무궁화 사진을 표지석에서 떼어냈고, 그 자리에 동생의 사진을 붙였다. 동생을 어루만지듯 표지석을 계속해서 쓰다듬던 전 씨는 연신 "재수야,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삼켰다.

전 씨는 "5·18 당시 12살 어린 나이에 계엄군 총탄에 맞아 피 흘린 동생을 생각하니 다시 한번 가슴이 미어진다"며 "유가족과 그 형제·자매들도 오월 영령의 넋을 위로하고 5·18 정신이 계승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막냇동생인 전영애(49) 씨는 "여덟 살 무렵 오빠랑 마당에서 물총 싸움을 했다. 오빠가 물총으로 나를 쏘고 나는 바가지로 물을 뿌렸다. 오빠에게 물총을 쏘지 말라고 짜증을 냈다"며 "아버지께서 시끄럽다고 야단치시니 오빠가 나갔다. 그날 물총 놀이를 하며 시끄럽게 싸우지 않았으면 오빠가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흐느꼈다.

이어 "오빠의 죽음에 대해 가족끼리 이야기할 수도 없었고, 기억할 사진조차 없었다. 41년 동안 잊고 살던 오빠와의 추억이 사진을 보는 순간 모두 생각났다"며 "나는 아직도 그 나이고, 내 머릿속의 오빠는 함께 물총 놀이를 하던, 내 손을 잡고 다니던 모습 그대로다"고 말했다.

제막식을 끝내고 전 열사의 영정 사진은 유영봉안소에 놓였다.

원순석 5·18민중항쟁 41주년기념행사위원회 상임위원장은 "전 열사의 희생은 41년 전 비극을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드러낸다. 이제서야 전 열사의 영혼을 편히 보낼 수 있게 돼 조금은 마음의 무거움을 떨쳤다"며 "반드시 진상을 밝혀 오월 영령들의 한을 풀겠다"고 말했다.

전재수 열사 41주기 사진묘비 제막식이 열린 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유영봉안소에 41년 만에 찾은 전 열사의 영정 사진이 놓였다.

전재수 열사 41주기 사진묘비 제막식이 열린 5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유족 전재룡씨가 41년 동안 무궁화 사진이 담겨 있던 전 열사의 영정 사진을 교체하고 있다.

김해나 기자 min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