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공대라는 꽃을 피우기까지 5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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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공대라는 꽃을 피우기까지 5년의 기록
•한국에너지공대 설립까지 막전막후||2017년 대선 공약서 2021년 특별법 통과까지||매 순간 위기와 편견의 파도를 막아낸 사람들||청와대, 기재부, 산자부 문턱 닳도록 드나들어||굵직한 위기 매번 찾아왔지만 설득 또 설득||마지막 위기땐 2022년 개교 포기 이야기까지
  • 입력 : 2021. 04.14(수) 13:33
  • 노병하 기자
2017년부터 5년을 달려온 한국에너지공대 건물 조감도. 전남도 제공
지난 2017년 대선 공약에서부터 출발한(과거에도 거론이 되긴 했었지만) 한국에너지공대가 관련 법까지 지난 3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되면서 내년 3월 개교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번에 의결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법'은 에너지특화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사 운영과 학생·교직원 선발 등 대학 설립·운영의 자율성,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의 재정지원 법적 근거, '2022년 3월 개교'를 위한 설립기준 완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이 의결되면서 한전공대는 산자부 시행령 제정을 거쳐, 5월에 캠퍼스 착공과 대학모집 요강 공고를 진행한다. 이후 9월 원서접수를 진행하고 2022년 2월 캠퍼스 임시사용승인 등의 일정을 거쳐 2022년 3월에 개교하게 된다.

바로 '2022년 3월 개교'라는 이 문장을 위해 지난 5년간 거의 매일 속이 바짝 타던 사람들이 있었다. 수십 년 만에 간신히 찾아온 지역 인재 육성의 토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숱한 위기와 편견에 맞서 싸우던 그들. 바로 전남도 공직자들과 김영록 전남도지사다.

여기에 지역 국회의원, 전남도의원, 향우회 등까지 전·후면에 나서면서 사실상 한전공대 개교는 전대미문의 지역 대 협력 프로젝트였다. 이에 지난 5년간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지면에 소개하고자 한다.

●한전공대 개교라는 막이 오르기까지

2017년 4월 17일,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에서 한전공대 설립안 담은 제19대 대통령선거 지역공약을 공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전공대에 대해 많은 이들이 몰랐다. 그저 지역에 대학이 하나 더 생긴다는 정도로만 인지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고 있었기에 광주·전남 유치가 가능할까라고 의심했다.

같은 해 5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광주 유세에서 한전공대 설립안 포함 광주·전남 상생공약을 제시하면서 한전공대는 본격적으로 지역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다. 그리고 7월 19일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한전공대 설립안이 담긴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했고, 같은 달 31일 한국전력공사 공대 설립 태스크포스(TF)가 구성, 국내외 운영 사례 조사, 정부·지자체와 설립 부지 및 재원 주체 등 핵심과제 협의가 시작됐다. 시간은 정신없이 흘렀다.

2018년 1월 15일 한국전력공사 공대 설립 마스터플랜 용역 입찰공고가 떴고 8월 14일, 광주·전남 시·도의회 한전공대 설립 특별법 제정 촉구 공동 성명이 발표됐다.

10월 21일엔 광주시장·전남지사, 더불어민주당 광주·전남 시·도당 등이 부지선정을 한전 결정에 따른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9년 1월 28일 여러 절차를 거쳐 '한전공대 설립을 위한 범정부 지원위원회'가 나주시 부영CC(컨트리클럽)로 입지를 확정했다.

이후 7월 10일 한전공대 설립지원회가 '한전공대 설립 기본계획안'을 확정했고 8월 8일 한국전력 임시 이사회가 '한전공대 설립 및 법인 출연안'을 가결하면서 순항하는 듯했다.

하지만 12월 10일 대학설립 재원 출연안 구체성 결여로 '계속심의' 결정이 내려졌고 이 결정은 2020년 4월 3일 교육부 대학설립심사위원회가 한전공대 학교법인 설립 최종 허가를 내릴 때까지 보류됐다. 그리고 2021년 3월이 될 때까지 1년간 모든 게 멈췄다. 마지막 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한전공대 개교라는 막 뒤에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한전공대가 만들어지게 된 결정적 출발점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뚝심 있게 밀어붙인 것까지는 순조로웠다.

특히 2018년 12월에 구성된 범정부 한전공대 설립지원위원회는 전남도가 적극 건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12명의 구성원들은 위원장은 균형위원장으로 하되 위원들은 기재부 등 7개 부처 차관, 광주시장, 전남도지사, 한전사장 등이 참여했다. 그야말로 핵심 기관의 수장들만 모인 셈이었다.

허나 유치 과정은 피가 마르는 전쟁이었다. 광주시의 전략도 만만치 않았다.

전남도와 광주시는 당시 각각 3개 후보지를 추천했는데 전남은 한국에너지공대 부지로 산림자원연구소(나주시 산포면)를 제 1후보, 부영CC(나주 혁신도시 내)를 제 2후보, 농업기술원(나주시 산포면)을 제 3후보로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너지공대 유치 TF'팀을 구성해 수차례 제안서를 작성하고 검토했다. 당시 팀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공무원 그만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체력 소모가 가장 큰 사람 중 한 명은 김영록 전남도지사였다. 거의 매일 정무부지사, 담당부서 관계자를 불러 제안서를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다행히 부지가 나주 혁신도시로 결정되자 전남도 공직자들은 환호를 질렀다. 어려운 것은 다 끝난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환호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전공대가 예타 대상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만약 예타 대상이 된다면 우선 예타 통과도 장담하기 어려울뿐더러, 통과된다고 해도 추진하는데 최소 15개월 이상이 소요된다. 당연히 2022년 3월 개교는 불가능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했던가. 앞뒤 꽉 막힌 위기 상황이 벌어지자 기재부 출신인 윤병태 정무부지사가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경험과 인맥을 전면에 내세운 윤 부지사를 필두로 전남도는 한전공대가 예타대상이 아님을 기재부, 법제처에 적극 설명하고 설득에 나섰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기재부는 공직자들에게 있어 '통곡의 벽'이다.

특히 전남의 경우는 오랫동안 그러했다. 아무리 두들겨도 눈도 깜짝하지 않는 '갑 중의 갑'이 그곳이다.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함이 전남 공무원들을 계속 움직이게 했고, 정성이 통했을까. 2019년 5월 27일 법제처는 한국에너지공대가 예타대상이 아니라고 유권해석을 했다.

한숨은 돌렸지만 갈 길은 멀었다.

이번엔 범정부 협의체인 균형위 주관의 '한전공대설립지원위원회'에서 '한국에너지공대 설립 기본계획'을 의결하는 과정이 남았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지역의 재원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것이었다. 지역민에게 쓸 예산도 부족한 상황에서 한전공대에 막대한 예산을 지출하게 될 경우 하나마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이번엔 김 지사가 전남도 공직자들을 독려하며 신발 끈을 동여맸다.

청와대, 산업부, 기재부 가릴 것 없이 관련 부서에 다 찾아가 전남도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것을 한두번도 아니고 수차례 반복했다. 한 광역지자체의 수장이 신발이 닳도록 정부 기관을 드나들며 같은 이야기 하고 또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얼굴 붉힐 일도, 자존심 상할 일도, 말 못할 억울한 일도 있었다. 다행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최소 지자체 수준 지원'이라는 최적의 결과가 나왔다.

"이제 겨우 숨 한번 쉬나 했는데 아니더라구요."

당시 참여했던 한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숨도 돌리기도 전에 이번엔 한전공대 건축방안이 문제가 됐다. 전남도와 한전의 건축일정 및 방법 등에 대한 의견이 달라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것이다.

다시 또 김 지사가 전면에 나섰다. 여기에 윤 부지사도 동참했다. 이 두 사람은 서울과 세종을 오가며 청와대, 국회, 산업부, 한전 등의 문턱을 다시 닳도록 드나들었다.

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항상 웃는 얼굴로, 지역민과 전남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타이틀을 달고 설득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기를 수차례. 마침내 2020년 9월, 2022년 3월 개교를 위한 건축방안이 확정됐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여기서 모든 게 멈췄다.

한전과 합의한 건축방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립학교법 및 고등교육법과는 다른 별도의 법이 필요했다. 전남도는 이미 특별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한전과 공동으로 용역을 추진해 특별법안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특별법안에는 대학자율성 제고 및 정부 재정지원 방안에 2022년 3월 개교를 위한 시설 기준 등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이 나서 줬다. 여야 국회의원 50명과 함께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법을 발의한 것이다.

법안이 발의되자 김 지사는 다시금 여야 국회의원, 청와대 관계자를 수차례 만나며 설득에 나섰다. 허나 입법 과정은 그야말로 철벽 그 자체였다. 이때까지의 위기와는 완전히 달랐다. 코로나 정국 속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산자위 법안소위 자체가 언제 열릴지조차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2022년 개교해야 하는데 2021년 1월까지 올 스톱이 됐다. 간신히 2월 법안소위가 1회 개최됐으나 이번엔 야당이 반대했다.

더는 안되는 것 같았다. 개교를 미뤄야 하는 이야기가 힘을 얻을 무렵, 기적이 일어났다. 지역민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였고 이를 지역 언론들이 일제히 받아서 썼다. 언론의 포문과 함께 지역 국회의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나섰다. 야당에서도 '이럴 필요가 있나'라며 긍정적인 회신을 보냈다. 그 결과 마침내 길고 긴 마지막 터널인 특별법 통과가 3월에 이뤄졌다.

●무대 앞뒤의 말과 말

△"회사(공직) 때려칠까 고민 중입니다.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나 싶네요." - 한국에너지공대 유치 제안서를 한창 작성하던 시기 한 공직자의 말.

△"우리가 해냈습니다. 나주 혁신도시로 선정됐어요!" - 2019년 관련 부서 관계자가 인터뷰에 응할 때, 그의 목소리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서울로 세종으로 저러다 쓰러지시겠어요. 더군다나 이 중요한 시기에 코로나뿐 아니라 감기도 걸려선 안 된다고 집에서도 마스크를 안 벗으세요." - 한전공대 특별법 계류 당시 모 비서실장이 김영록 지사 상황에 대해 설명할 때.

△"어제 제385회 국회 본회의에서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법이 최종 통과되었습니다. 벅찬 감동입니다. 문재인 대통령님께 200만 도민과 함께 각별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신정훈 국회의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불어민주당 당론으로 채택해주신 이낙연 전 대표님과 김태년 당 대표 권한대행님에게 감사드립니다. 이학영 위원장님과 송갑석 간사님과 국민의 힘 이철규 간사님, 그리고 산자위 모든 의원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장시간 토론 끝에 법안을 통과시켜 주신 윤호중 위원장님과 백혜련 간사님, 우리 지역의 소병철 국회의원님, 그리고 법사위 모든 의원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 법 제정 촉구 건의안을 제출해 주신 전라남도의회 의원님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광주‧전남 시민단체, 재경 광주․전남향우회, 언론인 여러분께도 법안 통과를 위해 지지 성명과 성원을 보내 주신 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 한국에너지공대법 제정 관련 김영록 지사 성명서 일부

△"허허허허 (제가) 뭘 한 게 있다고… 직원들이 애썼죠." - 한전공대 특별법 통과 후 김영록 지사에게 소감을 묻자 나온 말.

△"우리 이야기는 안 써도 됩니다. 그런데 정말 지사님과 부지사님이 너무 고생하셨거든요. 그것만이라도 꼭 좀, 한 줄만이라도 부탁드립니다." - 기획기사 취재 중 관계자가 했던 부탁의 말.

노병하 기자 bhn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