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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태의 남도역사 이야기> 구슬, 옥 장식품 등 독자적 문화 꽃피운 영산강 유역 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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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태의 남도역사 이야기> 구슬, 옥 장식품 등 독자적 문화 꽃피운 영산강 유역 마한

영산강 유역 마한인 황금보다 옥, 구슬 선호
마한인 무덤 출토 부장품중 금·은 제품 소량
옥돌, 유리 가공해 만든 목걸이 등 다량출토
정촌고분 한 석실에서만 1천여 점 구슬 발견
수정가공 유구, 유리 거푸집 등 지역서 확인

게재 2021-03-31 17:13:57
광주 선암동 유적 옥 공방터와 그곳에서 출토된 거푸집(오른쪽 아래)
광주 선암동 유적 옥 공방터와 그곳에서 출토된 거푸집(오른쪽 아래)

기원전 2~3세기경부터 형성된 마한 54개 소국이 어떤 문화를 꽃피웠는지를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 한강·금강·영산강 유역 마한 소국의 성격이 전부 같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백제에 병합되었던 시점도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미 앞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백제의 마한 병합은 3단계로 진행되었다. 1단계는 3세기 말 차령산맥까지, 2단계는 4세기 중엽 노령산맥까지, 3단계는 6세기 중엽으로 영산강 유역 광주·전남 일대를 포함한 남해안까지이다.

마한에 관한 국내 기록은 매우 빈약하고, 3세기 이전 마한의 모습을 담은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이나 『후한서』 동이열전은 6세기 중엽까지 독자적으로 존재했던 영산강 유역 마한의 문화를 서술해내지 못하고 있다. 문헌이 담지 못하니 영산강 유역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해석해 낼 수밖에 없다.

영산강 유역 마한인이 남긴 독특한 문화, 영산강 유역에서 꽃피운 마한만의 독자적인 문화는 무엇일까?

보성 거석리 출토 옥
보성 거석리 출토 옥

옥과 유리구슬

영산강 유역에서 꽃피운 가장 독특한 문화는 거대한 옹관과 대형 분구묘다. 이와 더불어 옥과 구슬도 마한인이 남긴 독자적 문화였다. 삼국시대 사람들이 가장 좋아했던 물건은 황금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면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으며 희귀한 소재였기 때문이었다. 국가는 황금의 소유를 엄격히 통제했으며, 왕족들은 자신들의 절대적인 지위를 상징하는 상징물로 활용했다. 하지만 이보다 조금 앞서 살다 간 마한 사람들은 황금보다는 옥과 구슬을 선호하였다.

마한인들이 옥과 유리구슬을 좋아했음은 『삼국지』와 『후한서』 의 "옥과 구슬을 보배로운 재물로 여겨 옷에 꿰매어 장식하기도 하고 목에 걸거나 귀에 달기도 하나, 금과 은 및 비단은 진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는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두 기록은, 당시 마한인들이 금이나 은보다 옥과 구슬을 더 좋아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마한인들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부장품 중 금·은 제품은 극히 소량인 반면, 수정이나 석영질의 보석인 마노 같은 옥돌과 유리를 가공해 만든 목걸이가 다량 출토되고 있다.

나주 반남과 복암리 고분, 영암 옥야리·신연리·내동리 고분 등 영산강 유역의 모든 고분에서 옥이 다량으로 발견되었다. 특히 금동신발이 출토된 복암리 정촌 고분에서는 한 석실에서만 천여 점이 넘는 엄청난 양의 구슬이 출토되기도 했다. 이러한 옥은 금강 이북에서는 영산강 유역처럼 많이 나오지 않는다.

나주 수문 패총에서는 흙구슬과 유리구슬, 유리 제품을 만드는 유리 공방의 흔적이 확인되었고, 보성 석평 유적에서는 다량의 수정이 나왔는데, 수정을 가공한 공장 유구(遺構, 잔존물)까지 발견되었다. 광주 선암동 유적과 해남 군곡리 패총, 담양 태목리 유적에서는 유리 거푸집이 출토되어 다양한 형태의 유리옥 생산지였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선암동 유적에서는 초승달 모양의 곡옥을 제작한 거푸집도 출토되었다.

국립 나주박물관에도 마한인들이 좋아했던 목걸이와 곡옥(曲玉) 등이 다수 전시되어 있다. 이들 장신구는 나주 신촌리, 영광 화평리, 무안 맥포리, 보성 거석리 등 영산강 유역 마한 땅 곳곳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그중 영광 화평리에서 출토된 푸른 계열의 목걸이와 보성 거석리에서 출토된 붉은 갈색 계열의 목걸이가 인상적이다. 보성 거석리 목걸이는 목 쪽에 갈색 가는 구슬을, 가슴 쪽에 붉은빛이 도는 굵은 구슬을 끼워 넣었다. 마치 현대의 호박 목걸이를 연상케 한다.

옥 가공 기술의 선진성이나 옥에 대한 영산강 유역 마한인들의 관심은 영산강 유역에서 형성된 독특한 문화였다.

유공토기
유공토기

원통형 토기와 구멍이 뚫린 유공토기

영산강 유역에서 형성된 독자적인 마한문화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토기가 원통형 토기(墳周土器, 분주토기)와 유공토기(有孔土器, 구멍 토기)다.

원통형 토기는 마한 분구묘 상층부의 평탄면이나 하부 둘레에 배치되어 무덤을 장식했던 토기다. 1917년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처음 출토되었고, 1993년 광주 월계동 장고분을 포함 영산강 유역에서만 40여 기의 분구묘 주변에서 1,000여 개나 발굴되었다.

원통형 토기는 4세기 후반부터 만들어진 일본 하니와(埴輪)와 비슷하기 때문에 왜 세력의 진출과 관련해서 하니와를 기원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었다. 하니와는 4세기 후반부터 5, 6세기의 일본 고분에서 발견된 인물상으로 일본 고대 복장인 기누하카마(衣袴)를 착용한 모습이다.

그러나 영산강 유역의 원통형 토기가 3세기 말 충남 아산지역 마한 무덤의 원통형 토기에서 발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목관 위에서 출토된 이 토기에는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어 술 공헌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술 공헌은 목관 위에 흙을 덮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는데, 영산강 유역에서 4세기 초부터 6세기 중엽까지 성행하면서 완성된 분구를 장식하는 용도로 바뀌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도 신촌리 9호분 출토 원통형 토기는 독자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그 근거로 일본의 하니와는 원통형 외에도 집, 사람, 동물 등 다양한 형상을 보이지만, 영산강 유역에서 출토된 토기는 단순한 기종이면서 일본에 극히 적은 점, 그리고 제작기법의 향토적인 특성을 들었다.

영산강 유역의 토기 중 가장 토착적인 것은 입이 큰 구멍 달린 조그마한 그릇(有孔小壺, 유공소호)이다. 유공소호는 둥그런 몸체 중앙에 대롱을 꽂을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목에서 점차 바라진 아가리를 갖춘 모양의 작은 단지를 일컫는다. 이 유물은 기원 후 5~6세기에 유행한 토기로 백제와 가야에서도 발견되고 있지만, 영산강 유역의 대형 옹관묘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고 있다. 또 유공소호는 일본에서도 출토되고 있어 두 나라의 고대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토기는 맹세나 의식을 행할 때 조그만 구멍에 대나무 관을 끼워 술이나 음료, 피 등을 돌려가며 나누어 마시는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제사를 지낼 때 영혼이 드나드는 구멍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즉 원통형 토기와 구멍 뚫린 유공토기는 모두 영산강 유역 마한의 특징적인 토기이며, 무덤을 장식하거나 영혼의 안식을 위한 것이었다.

담양 태목 출토 구슬 거푸집
담양 태목 출토 구슬 거푸집

마한인의 농경의례와 신앙

마한인의 농경의례에 관련된 기록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 '삼한'조의 "해마다 5월이면 파종을 마치고 귀신에게 제사 지낸다.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술을 마시기를 밤낮으로 계속한다. 춤은 수십 인이 함께 일어나서 뒤를 따라가며 땅을 밟고 구부렸다가 치켜 섰다가 하면서 손발로는 서로 장단을 맞추는데, 그 가락이 마치 (중국의) 탁무와 같다. 10월에 농사일을 마치면 또 이와 같이 한다"라는 기록을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즉 마한인들은 파종 시기인 5월과 수확 시기인 10월에 함께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의례를 행하였다.

마한인들은 일상과 자연 속에서 다양한 신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마한 사람들이 믿었던 신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신은 하늘을 주관하는 천신이었다. 나라마다 천군(天君)이라는 이름의 제사장을 한 사람씩 세웠는데, 주 임무는 하늘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또한 소도라고 부르는 별읍을 하나씩 두었는데, 이곳은 신을 섬기는 장소로 큰 나무를 세우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매달아 표시하였다.

공동체 내의 중요 사항을 결정하거나 일상 속에서 판단의 지침을 구할 때는 점을 치기도 했다. 나주 장동리 수문 패총, 광주 신창동 유적 등에서 출토된 점뼈들은 당시 점을 칠 때 사용된 도구였다.

신창동 유적에서 출토된 신앙 관련 유물로는 새 모양의 목제품과 바람개비 문양 칠기 등이 있다. 이는 농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솟대나 태양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마한 사람들은 새를 영혼과 관련된 존재로 여겼다. 즉 새는 신의 의지를 인간에게 전달하고, 인간의 기원을 신에게 전달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대형 옹관, 옥과 구슬, 원통형토기와 구멍이 뚫린 유공토기, 5월과 10월 등 두 차례에 걸쳐 행하는 농경의례 등은 영산강 유역 마한인들에 의해 꽃피운 독자적인 문화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