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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창·조경희> 익면성(匿面性)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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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창·조경희> 익면성(匿面性)의 시대

조경희 동화작가

게재 2020-11-15 14:16:13
조경희 동화작가
조경희 동화작가

가을은 백일장의 계절이다. 청명한 하늘 아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주어진 글제를 자신의 언어로 공글리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가을다운 것이 있을까. 그것은 가을을 맞은 그 어떤 식물의 열매 맺기보다 진중하고 한편 추억과 기쁨을 주는 아름다운 사람의 풍경으로 존재한다. 특히 어린이들의 백일장은 작품의 완성도를 차치하고라도 참가하는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백일장(白日場)의 어원을 살펴보면 원래 뜻 맞는 사람들끼리 달밤에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시재(詩才)를 견주는 망월장(望月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한 목적의 행사를 밝은 대낮(白日), 그것도 공개된 장소에서 치룬다 하여 백일장(白日場)이라는 말로 명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행사의 목적도 한시·시조를 지어 겨루던 것을 시·산문으로 바뀌었고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지 않는 순수 비전문가들의 글 재능 겨루기 한 마당 인것이다.

올해는 감염병인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여기저기에서 열리던 야외 백일장 행사가 전면 취소되었다. 그리고 대체 수단으로 거의 모든 기관과 단체들이 온라인 백일장을 열었다. 시쳇말로 '랜선 글짓기대회'였다. 구태여 여기에서 백일장이라는 고유의 행사명을 아주 낯선 언어로 조립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백일(白日)이란 무엇인가. 직설적으로는 밝은 대낮을 의미하고는 있지만 상징적으로는 부끄러움이 없어야 된다는 뜻도 해당이 된다. 거기에 장(場) 역시 열린 곳, 공개된 곳을 의미하여 백일장(白日場)이란 거짓과 숨김이 없어야 되는 것이라고 풀이 할 수 있다. 문제는 랜선 글짓기대회의 '익면성'이었다. 본래의 이름을 감추는 익명성(匿名性)을 안타깝게도 자신의 얼굴을 감추는 익면성(匿面性)으로 바꿔야 했다.

얼마 전에도 모 백일장의 아동·청소년부 작품 심사를 맡았다. 전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온라인 백일장대회를 열어 글제를 내주고 정해진 시간 내에 역시 온라인으로 접수된 작품들이었다. 우선은 심사위원의 입장에서 불편한 장소에서 불편한 자세로 원고지에 옮긴 제멋대로의 글씨들을 읽지 않아서 좋았다. 거의 오·탈자가 없고 띄어쓰기도 정확한 반듯하게 인쇄한 작품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 편 한 편 읽어 내려갈수록 알 수 없는 의구심에 머리를 갸웃거려야 했다.

아동문학가는 아동·청소년이 읽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대상에 맞는 글을 쓸 때는 그 연령의 마음과 생각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다. 흔히 눈높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글의 높이이며 생각의 높이라고 할 수 있다. 1차로 걸러낸 글들을 대상 연령에 맞춰 높이를 맞춰보는데 도저히 수긍이 가지 않은 작품들이 많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온라인의 익면성(匿面性)을 이용한 부모의 간섭이 개입되었다는 것이었다. 나의 느낌이 다른 심사위원의 눈도 비껴 갈 수 없었다. 하긴 옛날에도 시재(詩才)를 견주는 백일장이 명예욕을 충족시키는 방편이 되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 牧民心書≫에서 남의 글을 표절한다든지, 수령이 자녀의 시험지 심사에 관여하는 잘못된 풍조를 지적했을까.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일부 백일장에서도 동행한 부모가 글제에 맞게 제목을 정해주고 내용을 수정해 주는 경우는 종종 있다. 그러나 온라인 백일장처럼 이렇게 노골적이고 적나라하지 않았다. 운문은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여기저기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 글제에 맞는 기존의 시어들을 불러와 교묘하게 꿰어맞춘 작품, 곧 표절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결론적으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랜선 글짓기대회'에 참여를 한 것이었다.

일부 사회저명인사들의 자녀 경력위조 등으로 세간이 시끄럽다. 진위여부를 떠나 자녀에 대한 일에 있어서 자칫하면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이 세상의 모든 부모의 입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부모의 입장이다. 만약 부모의 관여로 심사위원의 눈을 속여 수상을 한다고 치자. 그렇다고 아이의 글짓기 실력이 얼마나 향상될 것이며 더불어 성취감을 얼마나 느낄 것인가. 아마 아이는 거짓으로 받은 상장으로 인해 평생 마음속에 양심불량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익면성(匿面性)의 시대라지만 백일(白日)처럼 떳떳한 부모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