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역사 전시 프로그램에 범죄 용어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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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교육청
학생 역사 전시 프로그램에 범죄 용어 사용?
무안고 만화 전시회 명칭 논란||도교육청 점검없이 그대로 홍보||女단체 "성인지감수성 교육 필요"
  • 입력 : 2020. 10.15(목) 16:48
  • 양가람 기자
지난 8월 전남 무안고등학교 미술부 학생들은 전시회 '꼬맹이들의 역사스토킹 8·15에서 5·18까지'를 개최했다. 전남도교육청 유튜브 '전남TV'에는 전시회 소개 영상이 담겼다. 유튜브 캡처
전남의 한 고등학교가 역사 탐구 전시회에 범죄 용어인 '스토킹'이라는 이름을 붙여 뒤늦게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범죄 용어가 교육현장에서 사용될 때까지 전남도교육청은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기관의 낮은 성인지감수성을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이다.

●5·18 등 역사 탐구 전시회에 범죄 용어 붙여

지난 8월 전남 무안고등학교 미술부 학생들은 전시회 '꼬맹이들의 역사스토킹 8·15에서 5·18까지'를 개최했다. 해당 전시회에는 8·15와 4·3, 6·25, 5·18 등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재해석한 만화 10점이 전시됐다.

만화를 통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게 하자는 취지였지만 문제는 명칭이었다. 성범죄로도 이어질 수 있는 '스토킹'이란 명칭을 역사 관련 전시회에 붙인 게 옳느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스토킹(stalking)은 '은밀히 다가서다, 몰래 추적하다'(stalk)에서 파생된 용어로, 타인에게 위험을 느끼게 할 정도로 물리적·정신적으로 괴롭히는 것을 뜻한다.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되는 명백한 범죄 용어다. 이런 용어가 교육 현장에서 버젓이 사용된 것이다.

● 전남도교육청 인지조차 못해

전남도교육청은 유튜브 '전남TV'에 해당 전시회를 소개했다.

보도자료를 전달받은 광주·전남 지역 일부 언론들도 이를 그대로 보도했다. 아무도 지적하지 않은 사이에 해당 명칭이 퍼져 나간 것이다.

뒤늦게 본보에서 취재가 들어가자 도교육청은 "학교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요즘은 프로젝트형 수업이 많아져 학생들이 직접 교육 프로그램 명칭을 짓기도 한다. 학생들이 만든 명칭은 대부분 별도 수정없이 그대로 결정된다"고 말했다.

일선 학교에서 사전에 정해진 명칭을 도교육청이 수정하거나 일일히 확인해 걸러내는 작업은 어렵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에서 1차적으로 검증이 됐다고 생각해 큰 문제 없으면 보도자료로 언론사에 배포한다. 이번 경우는 무안고가 현대사 만화 전시회를 열었다, 정도로만 인지했지 전시회 명칭 자체에 집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도교육청의 답변에도 의문은 남는다.

학교별 홍보를 담당하는 교사가 보도자료를 작성해 도교육청 미디어 포털에 올리면 도교육청은 해당 내용들을 언론사에 전달해 준다.

기사의 파급력 등을 감안하면 언론에 노출되기 전 보도자료의 적절성을 검토해야 한다. 도교육청 내에 해당 절차가 부재한 거 아니냐는 지적이 이는 이유다.

●"엄연한 성범죄 용어… 말도 안되는 일"

여성단체는 스토킹 명칭 사용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여성민우회 관계자는 "학생들이 참여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스토킹'이라는 범죄 용어가 버젓이 사용됐다는 게 황당하다. 일전에 사회적으로 문제됐던 고교생 흑인비하 코스프레 사건처럼 교육계 내부의 낮은 성인지감수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교사 대상 성인지감수성 교육 확대 필요성도 제기됐다.

민우회 관계자는 "우선 교사들 대상 성인지감수성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또 교육의 시간도 현행보다 늘어나야 하고, 내용의 질적 수준도 높여야 한다"면서 "현재는 두어시간 강의형 수업이 전부다. 사례 중심의 토론형 수업으로 자주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