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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량한 동교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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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량한 동교동계

게재 2020-10-13 17:07:08

1970년대 이후 한국 야당 정치의 본산 역할을 해온 곳이 동교동과 상도동이다. 엄혹한 독재 정권 시절 김대중(DJ), 김영삼(YS) 두 야당 지도자는 사저를 중심으로 정치 활동을 했다. 신문은 이들 DJ와 YS를 따르는 계보 인사들을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로 불렀다. '김대중계', '김영삼계'라는 말보다 훨씬 함축미와 운치가 있다 보니 그 후 각계에서 널리 통용됐다.

동교동의 DJ 사저는 측근 정치인들의 사랑방이었다. 장기간 정치 규제에 묶여 국회에 진출하지 못한 DJ와 동교동계 인사들은 사저로 모였다. 비서진 중에서 권노갑은 좌장,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의 한화갑은 책사, 김옥두는 행동대장으로 불렸다. 이들은 초창기 동교동계의 핵심 3인방이었다. DJ의 미국 망명 당시 후원자 역할을 했던 박지원이 귀국하고, 새롭게 총애를 받아 복심이 되면서 이들 사이에 갈등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 철이면 호남 출신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지망생들이 동교동 사저를 찾아 장사진을 쳤다.

DJ의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서 동교동계는 뿔뿔이 분화된다. 동교동계가 주도하던 민주당은 한나라당, 자민련과 손잡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다가 역풍을 맞고 17대 총선에서 몰락했다. 18대 대선 과정에서는 동교동계의 한광옥과 김경재, 한화갑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 20대 총선을 앞둔 시점에는 동교동계 인사 상당수가 문재인 민주당 대표를 공격하면서 탈당하고 안철수의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 동교동계는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서 서서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루고 DJ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등 큰 역할을 했다. 반면에 가신정치, 돈정치, 지역볼모정치라는 구태 정치의 산실 역할을 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정대철을 비롯한 동교동계 원로들이 최근 더불어민주당 복당을 타진했다가 면박을 당했다. 당내 친문계는 "배신자들의 복당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동교동계 출신인 이낙연 대표마저 "동교동계 원로들은 당 바깥에서 원로다운 방식으로 민주당을 도와주시리라 믿고 있다."고 말해 사실상 복당 거부 방침을 시사했다. 이에 앞서 DJ-이희호 여사의 유일한 혈육인 김홍걸 비례대표 의원은 재산 신고 부실로 민주당에서 출당을 당했다. 동교동계 인사들의 처량한 모습을 보면서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박상수 주필 ss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