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백신 '비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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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셀프 백신 '비누'
  • 입력 : 2020. 09.27(일) 16:52
  • 박상지 기자
박상지 문체부 차장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1960년 '사상계'에 실린 강신재의 단편 '젊은 느티나무'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젊은 느티나무'는 엄마의 재혼으로 새오빠가 된 스물두 살 청년 '현규'를 연모하는 열여덟 살 여고생 '숙희'의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카피 한 문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문장의 힘'은 유효하다.

강신재는 '그에게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청춘의 열병을 앓게 했다.

이복 남매사이 금단의 사랑을 다루면서도, 사랑이 주는 미묘하고 아련한 감성을 수려한 문체로 풀어내 당시 최고의 화제작이 됐고, 나중 이 소설은 드라마로, 영화로 다시 제작된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옆 동료에게서 상큼한 비누냄새가 나면서 언젠가 읽었던 강신재의 소설이 일순 떠오른다.

'비누'는 한자어도 외래어도 아닌 순우리말에서 왔다. 선조들은 화학비누가 들어오기 전부터 녹두, 팥, 콩을 갈아 세안이나 목욕, 그리고 빨래하는 데 썼다. 이를 '비노'라 했는데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양비누는 네덜란드 선원 하멜이 우리나라에 표착하면서 처음 전해졌고, 이후 1882년 청나라와의 무역협정 조인 이후 본격 들여왔다.

의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인류의 생명을 가장 많이 구한 물품으로 꼽는 비누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학설에 의하면 기원전 3800년께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이 산양기름과 나무의 재를 끓여서 비누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비누 제조법은 산업화 이후에 확립됐다. 1791년 9월 25일 프랑스 화학자 니콜라스 르블랑이 소금으로 세탁소다를 만드는 공정, 일명 '르블랑 공정'을 개발해 비누가 대중화된 것이다.

비누는 인류가 겪어왔던 각종 피부병과 전염병을 줄여주고, 인류의 평균수명을 20년 늘린 위대한 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가장 중요한 셀프백신으로 마스크와 함께 '손 씻기'가 강조되면서 비누의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코로나 비상시국이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나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손씻기는 감염병 예방의 기본이 되는 생활수칙이다. 청결의 상징 비누가 새삼 고맙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