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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겉사정(事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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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겉사정(事情)

게재 2020-09-14 16:13:06
김해나 사회부 기자
김해나 사회부 기자

사람들은 각자의 '속사정'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전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의 형편'을 속사정이라고 정의한다.

비가 마을을 덮쳐 모든 것을 쓸어간 지 한 달여가 지날 즈음 찾은 구례 양정마을.

지난 8월 수마가 할퀴고 간 이 곳 주민들에게 속사정은 존재하지 않아 보였다. 무너져버린 삶의 터전을 어떻게든 복구해보려는 그들에게는 겉으로 드러난 절망, 포기 등의 '겉사정'이 곧 '속사정'이었을 뿐이다.

비에 젖어 곰팡이가 피어 버린 장독대를 연신 물로 씻어내고 있는 주민을 만났다. 처음 그는 자택 앞에서 서성거리며 질문을 하려는 외지인을 경계했지만, 이내 자신의 '사정'을 털어놨다.

부모, 시부모, 자녀까지 대가족 10여명이 함께 사는 그의 집은 물에 잠겨 터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어쩌겠어. 살아가야지'하는 마음으로 가전제품, 옷 등을 건조대에 말려 보지만 어차피 무용지물이 됐다는 건 그가 제일 잘 알았을 테다. 하필 그날 따라 하늘은 무심하게도 또 다시 비를 뿌려 댔다.

게다가 코로나19 장기화로 자원 봉사자들은 모두 떠나가 버려 일손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는 "다부진 꿈을 품고 귀농해서 축산업을 하려고 했다. 이번 수해로 소 대부분이 사라지거나 아프다"고 털어놨다. 이어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는데 밥은 드시면서 하셔?"하는 그의 물음이 굉장히 아이러니했다. 집을 잃은 그는 남을 더 생각하고 있었다.

그 후 전용주 양정마을 이장을 만났다. 취재를 마치자 그 역시 "밥은 먹었냐"고 물어왔다. 이번 수해로 집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긴 그였지만, 자신보다 마을 주민들을, 취재차 방문한 외지인을 챙기는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양정마을 전체는 소 먹이로 쓰는 조사료가 물에 잠겨 썩어 악취가 풍겼다. 악취에 꼬인 파리떼가 가득한 마을회관 앞 정자에서 전 이장이 선뜻 나눠준 도시락을 먹었다. 파리 밥인지 내 밥인지 모를 도시락을 먹으며 그들의 '겉사정'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으레 사람들은 '속은 썩어 문드러져 가는데 겉으로는 행복한 척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양정마을 주민들은 스스로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놓여 있다고 했다. 처음 만난 그들은 일말의 희망까지 포기한 듯 보였다. 하지만 기자에게 보인 관심과 배려는 '척'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들이 노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양정마을을 비롯해 이번 집중호우로 집을 잃고 생계를 잃은 이재민들의 아픔을 당장 씻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남을 배려하는 그들의 행동은 배울 점이 많아 보인다.

그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대한적십자사에 후원을 하려 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