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문화Ⅱ> 5. 해양 문화 콘텐츠로서의 표해록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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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아시아의 문화Ⅱ> 5. 해양 문화 콘텐츠로서의 표해록 전시
안재연 아시아문화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기획팀장
  • 입력 : 2020. 08.27(목) 14:48
  • 편집에디터

안재연 아시아문화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기획팀장

표해록(漂海錄)은 뜻하지 않게 정처 없이 '표류(漂流)'하다 돌아온 이가 남긴 기록으로서, 문인, 무사, 군인, 상인, 어부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비공식적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 구체적이고 현장감 넘치는 서사를 볼 수 있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한자문화권을 기반으로 한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등에서 아시아의 주요 표해록이 생산되었는데, 이를 전시에 활용한 콘텐츠 개발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더구나 박물관이나 전시관의 교육 프로그램, 해양 문화 콘텐츠로서의 표해록 전시구성이나 활용방안에 대한 실제 사례는 매우 찾아보기 어렵다.

이 글은 2019년 광주와 2020년 부산에서 개최했던 표해록 전시를 소개함을 목표로 한다. 두 전시 모두 아시아 전역에서 나왔던 15-19세기 주요 표해록을 주요 소재로 삼았다. 전자가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에서 이 시기에 출간된 약 20편의 표해록을 소개하였다면, 2020년 전시는 20편의 표해록 중 대표작을 골라 번역한 '아시아의 표해록'과 '조선표류일기'출간을 기념하여 기획되었다. 표해록 전시는 박진감 넘치는 해양체험과 이국의 풍속·제도 등의 견문을 주고받았던 전근대 아시아 해상 문명 네트워크를 복원하는 한편, 표해를 기반으로 한 해양 문화 콘텐츠의 발전 가능성을 다각도로 살피고자 진행됐다.

2019년 ACC 라이브러리파크 테마전 '아시아의 표해록: 바다 건너 만난 이웃' 전경. 아시아문화원 제공

2020년 부경대학교 '아시아의 표해록: 바닷길, 아시아를 잇다' 포스터. 아시아문화원 제공

표해록은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는 낯설고 접하기 쉽지 않은 자료다. 더욱이 아시아의 중국, 일본, 베트남에서 표해록이 15세기에서 19세기에 많이 생산되었다는 사실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시아 전역에서 볼 때, 제주도와 일본이 그나마 섬이라는 환경 덕에 가장 많은 표해록이 나왔고, 이에 대한 연구도 활발한 편이다. 따라서 전시 콘텐츠의 구성방안은 기존의 연구자료와 출간된 전시 도록 및 관련자료 등을 활용했다.

2019년 ACC '아시아의 표해록: 바다 건너 만난 이웃' 전시장 내 연표. 아시아문화원 제공

먼저, 표해록에 대한 기본적 개념과 이해를 돕기 위하여 표해록을 대주제로 설정하고, 정의와 범위, 특성, 체제, 내용 등을 분석하였다. 표류민이 떠돌다 한 곳에 표착하면, 대개 지방관리나 군인 등이 나와 공문서나 조서 등을 작성하였는데, 일정한 형식과 체제를 갖춘 지방지, 공술서등이 이에 속한다. 공적 기록과 달리 민간 표해록은 구성이나 편폭이 자유롭고, 서술자의 인간적 면모나 주관적 시선이 담겨 있다. 그 내용에 있어서도 표착한 곳의 환경, 행정과 군사 체계, 민속과 역사, 언어까지 망라하여 '민간 백과사전'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2019 '아시아의 표해록'전 1부 전시장 전경

표류라는 대주제 아래 표류와 관련된 자연, 사회적 영향 요인을 소주제로 제시하였다. 선박제조술과 항해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전근대시기. 아시아의 선박들은 바다 한 가운데서 예기치 않게 태풍과 풍랑을 만나 좌초되거나 표류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배가 표류할 때에는 아시아 해양을 일정하게 흐르는 해류와 계절풍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통계적으로 자연 환경 이외에 표류에 영항을 미친 또 하나의 요소는 아시아 내 표류민 송환 시스템이다. 자국에 도착한 표류민을 구휼 원칙에 입각하여 무상으로 돌려보내는 제도가 아시아 각국에서 17세기 이후 체계화되는데 이는 아시아 해양 네트워크 구성의 핵심적인 요소였다. 또한 표류에 관한 기록과 보고, 해양 지식과 과학의 발달에 따라, 전근대 아시아인의 확장된 해양 인식을 보여주는 아시아의 주요 지도도 중요하다.

17세기에서 18세기에는 서양의 지도 제작법이 아시아에 소개되고, 지도 제작법과 측량법의 발달, 인쇄술의 발달 등으로 인하여 한, 중, 일에서 중요한 지도가 제작됐다. 당시 지도에는 세계 지리와 해양에 대한 인식의 확장과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와 같이 자연적, 사회적 환경과 공간 정보를 이용한 전시콘텐츠의 구성을 통해 아시아 해양 문명 네트워크에 대한 올바른 이해 뿐 아니라, 역사적 발전 과정에 대한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되고자 하였다.

제작자 미상 '천하도'(조선후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제작자 미상 '셀던의 중국 지도' (17세기). 옥스퍼드대학교 보드레이안 도서관 소장

아시아 각국의 주요 표해록 텍스트 분석을 통해 언어, 신앙, 의식주, 의례 등의 소주제를 구성했다. 표해록은 이국의 풍경과 생활상을 담고 있는 한 편의 민속지라 할 수 있다. 외국에 나가는 일이 드물었던 당시, 이웃나라의 음식과 전통 가옥, 언어, 옷과 머리장식, 결혼식과 장례식은 물론 산세와 운하, 으리으리한 관가부터 저잣거리의 장사치까지 호기심의 대상이었고, 표류민들은 이를 상세히 기록하였다. 표해록 텍스트를 실물(의복, 전통가옥, 전통 신앙, 각종 의례관련 유물)과 함께 제시함으로써 입체적으로 전근대 아시아의 풍속을 전시콘텐츠를 구성했다. 이를 통해 관람객이 표해록 텍스트의 내용을 이해하는 한편, 오늘날까지 맥을 잇고 있는 아시아의 문화적 유산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2019 '아시아의 표해록'전 2부 전시장 전경. 아시아문화원 제공

마지막으로 표해를 소재로 한 문학, 영상, 드라마, 다큐멘타리 등을 시각적으로 구성하였다. 표해록에는 국적을 불문하고 표류를 하며 느꼈던 극한의 감정이 담겨 있다. 대표적 문구를 레터링으로 시각화하여 제시함으로써 보편적 인류애와 고난 극복 서사로서의 가치를 환기시킬 수 있다. 또한 극적 생환과 구조에 이르는 드라마틱한 줄거리는 'Cast away(2000)'와 같은 영화나 드라마, 공연 등에 마르지 않는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음을 영상을 모아 제시한다. 특히 평면 그림인 '범사도(泛槎圖,1858)'를 디지털 동영상으로 제작, 문화 기술(CT)적 요소로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시키고자 했다.

특히 2020년도 부경대학교에서 개최한 전시 일부는 공공기관으로서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적극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가령, 부산점자도서관과의 협업으로 점자 전시 리플렛을 제작, 배포하였고, 부산점자도서관 관장님 이하 직원을 포함, 시각 장애인 세 분을 모셔서 직접 전시에 대해 설명을 하고 체험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2부 전시 콘텐츠의 일부를 점자를 활용하여 구성하였고, 이를 직접 읽어보도록 하여 전시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2020 '아시아의 표해록'전시 체험 장면. 아시아문화원 제공

동아시아 표해록은 최부(崔溥, 1454〜1504)의 '금남표해록'이나 일본 상인들의 '달단표류기'처럼 왕이나 국가의 명령에 의해 작성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뜻밖에 접한 아시아의 풍경과 간난신고의 경험을 기록하려 한 아시아인의 자발적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전근대 아시아의 표해록의 가치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아시아의 표해록을 통하여 서양과의 접촉이 본격화되기 전 실재했던 아시아 문화교류의 한 양상을 복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아시아를 위한, 아시아에 의한 기록 발굴은 정복의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탈피하려는 최근의 문화 연구의 흐름에도 부합한다.

또한 표해록이 가진 해양문화 콘텐츠로서의 가능성도 빼 놓을 수 없다. 표해라는 돌발적인 사건과 표류의 발생→바다에서의 위기→표착→이국 생활과 송환→귀국이라는 서사 구조는 당시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온갖 역경을 뚫고 귀환한 주인공들은 '해양 영웅'으로 소화되기도 한다. 또한 표해록에 담긴 박진감 넘치는 해양체험과 이국의 풍속과 제도 등은 현장감 넘치는 해양 문화 콘텐츠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표착한 국가의 산천, 사람, 사회, 제도와 문물 등을 담은 일종의 해양 민속지라 할 수 있다.

광주와 부산, 두 차례에 걸친 전시는 표해록의 해양 문화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내용 분석뿐 아니라 표해를 기반으로 한 각종 콘텐츠를 동시에 소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표해록이 전근대 아시아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생산된 기록임을 입증해보였다.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아시아 해양 문명 네트워크의 한 축을 구성하는데 일조했음을 규명하고자 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