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농가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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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친환경 농가의 그늘
  • 입력 : 2020. 07.29(수) 16:08
  • 최황지 기자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진다. 지난 6월24일부터 시작된 빗줄기는 29일까지 계속됐다. 36일간 지속되는 장마다. 남부지방 평년 33일 기록보다 3일 더 긴 기록이다.

"예년보다 긴 장마, 추운 여름, 다습한 기온…". 날씨는 식물의 생육에 지장을 주고 예년과 같지 않은 상황에서 식물은 병이 나거나 썩어간다. 장마전선이 남부지방을 휩쓸 때마다 농업 관계기관은 "병해충 방제에 적극 신경을 써달라"고 지시하지만, 사각지대가 있다. 'NO농약'으로 농사를 짓던 친환경 농가들이다.

최근 취재차 친환경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한 농민을 만났다. 서글서글한 웃음과 다부진 손가락을 가진 귀농 4년차 청년농부였다. 대학 전공과 졸업 후 직업까지 '농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길을 걸었던 그는 전남의 한 지역에 내려와 농사에 뛰어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얻으며 여기저기 바쁘게 농사를 배우러 다녔다. 농업 4년차에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겠다"는 철학이 확고했던 인물이었다.

그 후 길고 긴 장마는 이어졌고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서 그의 근황을 듣게 됐다. 그가 한해 공들이던 재배 작물을 전부 갈아엎었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준 이는 친환경 농업이 '이상적'인 경우가 상당수라고 했다.

그는 "농사 전문가도 친환경 농업을 어려워한다. 작물, 날씨 생육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며 "귀농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농부가 그 어려운 친환경 농업에 올인하니 갑작스런 재해에 넘어진 게 아니냐. 청년농부들에게 '친환경 농업'에 대해 가르칠게 아니라 '농약 하는 방법을 먼저 알려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라고 한숨을 쉬었다.

소식을 전해듣고 청년농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농이 아닌 소농인터라 올해 흉작은 분명 내년 농사에 지장을 줄테다. 그러나 그는 "친환경 농업을 시작할 때 주변인들이 왜 말리는 지 알았다. 알고 시작하긴 했지만 막상 농사를 그르치니 속상한 마음이 크다"며 헛헛하게 웃었다.

친환경 농업은 합성농약, 화학비료 및 항생·항균제 등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화해 생산하는 농업 방식다. 웰빙 사회에 친환경 농산물이 안전한 먹거리라는 인식이 커지며 농업 교육기관은 '친환경 농업=농가소득 증대'라는 조급한 태도로 귀농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태도로 농부들을 교육하고 있다. 농약 뚜껑 구분법조차 모르던 청년농부들은 친환경 농업에 섣불리 뛰어든다.

친환경 농업 방식은 친환경 약재, 미생물 등을 활용해 작물을 재배한다. 특히 약재는 발효 상태, 정도, 추출물 합성 방식 등 세분화 돼 있는 데다 일반 농약처럼 체계화 돼 있지 않아 어떤 작물에 어느 약재를 사용해야 하는 지는 농부 혼자가 아닌 전문 멘토와 함께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혼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따끔 청년농부들이 "친환경을 포기해야 하나"라고 말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농업 교육 단계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농약 농사는 잘못된 게 아니다. 농약 농사로 자리를 잡은 뒤 땅과 기후, 작물의 변동을 유심히 관찰한 뒤에야 "친환경 농업 전환을 생각하고 있다"가 맞다.

올해 그의 농사엔 먹구름이 끼었다. 그러나 그는 친환경 농업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다른 청년농부들을 위해서 현 교육 시스템은 개선됐으면 한다고 했다.

지금 대부분 친환경 농업 교육은 외부 초청강사에 의해 이뤄진다. 하지만 땅은 주위환경과 그 땅을 일구는 농부의 자세까지 모든 것이 다르다. 그런 데도 지역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외부 전문 인사가 지역의 농부를 대상으로 친환경 농업에 대해 교육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역에 맞는 친환경 농법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대답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농부는 외부 전문가가 아닌 지역 토양을 기반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다.



최황지 기자

최황지 기자 orchi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