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표가 필요한 생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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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새로운 이름표가 필요한 생명들
양가람 사회부 기자
  • 입력 : 2020. 07.20(월) 13:03
  • 양가람 기자
양가람 사회부 기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던 날, 아이가 선물처럼 우리 집에 찾아왔다. 길가에서 기적처럼 발견된 아이의 휑한 목엔 '복동이'라는 이름표가 걸렸고, 복동이는 가족이 됐다.

이따금 복동이의 옛 이름이 궁금했다. 주인은 누구였고, 복동이를 어떤 이름으로 불러줬을까. 창가에 놓아둔 화분에서 흙을 파먹거나 간식을 몰래 숨겨두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는 제 이름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주겠다 다짐했다.

사람은 이미지로 과거를 떠올리지만, 강아지는 감각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취재차 방문한 유기동물보호소에는 이름을 '잃은' 동물 500여 마리가 있었다. 보호소에서 지어준 임시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몸에 각인된 과거로 고통스러워 하는 동물들도 많았다. 한 쪽 다리를 잃은 강아지가 내게 잘리고 없는 발을 내밀었다. 본인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달라고 애원하는 듯이.

코로나19는 보호소 내 생명들에게도 위기였다. 입양된 유기동물은 지난 6월 89마리에서 7월 6마리로 줄었다. 지난해 7월 93마리가 입양된 걸 감안해도 상당한 감소폭이다. 입양률은 줄어도 매달 구조돼 보호소에 입소하는 유기동물 수는 비슷하다. 결국 보호소 내 유기동물이 늘면서 공간과 인력에 한계가 찾아올 수밖에 없다. 당장 8월부터 보호소에서 안락사가 대거 시행될 지도 모른다.

안락사의 1순위는 병들고 타 개체에 대한 공격성을 지닌 동물들이다. 좁은 공간에 앉아 하염없이 입양되길 기다리던 시절이 그들의 마지막 기억일 것이다. 어쩌면 버림받았던 순간, 이름을 잃어버린 과거에 마지막 기억을 묻어놨을지도 모른다.

전국 가구의 30% 정도가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대지만, 유기동물은 여전히 많다. 키우기 싫어서 고의적으로 내다버린 경우는 20~30% 정도다. 대다수 반려동물은 이름표를 미착용한 상태에서 대문 단속을 소홀히 하는 등 반려인의 의식 부재로 유기된다. 동물등록이 의무화 된 지 수 년이 지났지만, 많은 반려동물에겐 제대로 된 이름이 없다. 처벌을 강화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현실은 한숨만 나온다. 광주는 담당 공무원 한 명이 동물 복지 분야를 전담하고 있어, 가가호호 방문해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쉽지 않다.

'짝'을 뜻하는 '반려(伴侶)'는 이제 동물 앞에도 붙는 수식어다. 동물이 가족의 영역에 포함됐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애완(愛玩)'으로만 동물을 바라보고 있다. 보호소 문을 두드리면서도 "어리고 얌전하고 예쁜" 강아지만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에 씁쓸해진다. 인간의 눈에 사랑스럽지 않으면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생명들. 온 몸으로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살아가게 될 생명들에게 하루빨리 이름표를 걸어줄 가족이 생겼으면 좋겠다.



양가람 기자 lotus@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