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눈으로 기록한 곡성 할머니들의 삶과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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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반
초등학생 눈으로 기록한 곡성 할머니들의 삶과 애환
곡성군 예술교육 '기차 너머 마을'||마을 이야기에 예술적 교감 더해||다양한 세대 간의 소통창 마련도
  • 입력 : 2020. 07.05(일) 17:19
  • 김은지 기자

지난 3일 '기차 너머 마을' 예술 교육이 진행됐다. 극단 마실 제공

'찔레꽃 피면 생각나는 울엄니, 네가 건강해야 자식 거둔다고 밥풀로 부친 봉투를 쥐어 주셨던 엄니, 찔레꽃 지면 보고 잡은 울엄니 따뜻한 밥 한 끼 지어 잡숫게 할 것인디…불효자식은 먼 산에 올라 초목고 운다네,' -삼태리 할머니의 이야기

지난 3일 곡성중앙초등학교에서는 소박하지만 특별한 공연이 펼쳐졌다. 곡성군과 극단 마실이 협업으로 진행한 교과연계 예술프로그램 '기차 너머 마을' 일환으로 진행된 초등학생들의 무대였다. 곡성지역 5개 초교에서 선보여진 무대는 곡성지역 초등학교 6년생들이 지역 어르신들의 삶을 듣고 한편의 연극작품으로 구현했다. 극단 마실의 연출, 작곡, 시나리오 담당자들은 작품 시나리오에서부터 연출, 배역 등 연극의 초등학생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다.

초등학생들이 연극작품 제작에 직접 참여해 작품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지만, 이보다도 5개 작품의 모티브가 '곡성 주민들의 삶의 애환과 역경'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극단 마실은 지난 2018년부터 2년간 곡성을 돌아다니며 이 지역 주민들의 인생을 수집했다. 아흔살의 할머니는 혹독했던 시집살이를, 여든 다섯의 할머니는 남편의 바람끼를, 아흔 두살의 할머니는 조혼으로 미처 펼쳐보지 못한 꿈을 한처럼 가슴에 담고있었다. 할머니들의 일상 속에는 전쟁, 보릿고개 등 대한민국 역사의 고비고비가 담겨있었다. 수집된 삶에는 할머니들 뿐 아니라 랩퍼를 꿈꾸는 청소년의 일상과 유치원생의 엄마를 향한 사랑까지 전 세대의 특별하지 않은 듯 특별한 이야기가 있었다.

특별한 교육 예술 프로그램이 곡성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곡성출신 손혜정 극단 마실 대표의 노력 덕이다.

손 대표는 "곡성에서 나고 자랐는데, 워낙 시골이었던 탓에 고향에선 문화적 여유를 누려본적이 없었다"며 "수십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곡성은 문화, 예술적으로 '깡촌'에 불과하다. 문화적 인프라를 조성해 작게나마 고향에 기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기차 너머 마을'은 곡성 지역 초등학생들의 눈으로 바라본 곡성 지역 이야기를 예술교육 속에서 생생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살아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지난 2년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을 받았지만, 올해에는 아쉽게도 선정되지 못했다. 대신 그동안의 활동을 눈여겨 봐 온 곡성군이 곡성교육청과 함께 교과연계 프로그램으로 이 사업을 진행해 보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아 올해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됐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영상, 작곡, 움직임, 연기 등 다양한 예술 기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연극이라는 도구로 자유롭고 진실하게 표현했다.

곡성 사람들의 삶이 진솔하게 녹아있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곡성군 5개 초등학교의 학생 모두는 이야기를 자신의 시각으로 받아들여 다시 해석하고 다양한 예술로 표현하는 창작자로 나선다. 아이들은 평소 딱딱하다고만 느꼈을 교실을 새로운 공연의 무대로 만들어냈다.

'기차 너머 마을' 예술 교육 진행을 위해 곡성 할머니들과 진행한 만남. 극단 마실 제공

이날 재생된 수많은 노래 중에서 아이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 곡은 오랫동안 곡성에서 살아온 '읍써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지난해 예술가들과 마주한 할머니는 "꿈은 뭐였어요?"라는 질문에 "읍써"라고만 대답해 '읍써 할머니'가 됐다. 물음 뒷편으로 하고 예술가들은 가야금 연주와 장구를 두들기며 신나는 장단을 선물했다. 이에 읍써 할머니는 "내가 꿈 없이 살았어도 콩밭을 매며 노래하고 부뚜막에서 부지깽이로 두드리며 윳자로 노래하고 살았어"라며 "오늘 상추는 오늘 만들어 먹고 내일 상추는 내일 만들어 먹으며 살았지"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게 자기의 노래면 노래라는 할머니의 말에 작곡가는 '읍써 읍땅께'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노래는 올해 곡성의 초등학생들과 만났고, 아이들은 읍써 할머니에게 '세상에 젤 행복한 할머니'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한 학생은 할머니에게 "꿈이 없었기에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오늘 상추, 오늘 만들어 먹고 내일 먹을 상추는 내일 만들어 먹는 할머니가 가장 세상에서 오늘을 만족하며 사는 행복한 분 같아요"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이 특별한 수업은 두 세대 사이 자리 잡았던 커다란 격차를 차이를 줄이고, 서로에게 교훈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할머니들이 직접 부른 절절한 노래 속에는 지나온 삶의 애환과 숱한 역경들이 담겼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쌓아온 현안과 지혜도 함께 녹여져있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연극배우로 나선 곡성중앙초등학교 6학년 한서우 학생은 "곡성 할머니들의 사연을 담은 노래를 듣고 놀랐다. 할머니들은 늘 아프다고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 노래의 할머니는 '다 없다 없다'만 하지만 젤 행복해 보인다. 북 치며 노래 부르는 할머니 음악에서 즐거움이 느껴졌어요."라며 소감을 전했다.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