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정찬호>"경비원 주제에"…어느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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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정찬호>"경비원 주제에"…어느 아파트 경비원의 죽음
정찬호-광주시 비정규직지원센터장
  • 입력 : 2020. 05.19(화) 14:49
  • 편집에디터
지난 5월 10일 서울 강북구 ㅇ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던 故최희석씨가 입주민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이 근무하던 아파트 입주민들은 사망 소식에 놀라면서도 평소 친절하고 따뜻했던 최씨를 추모하기 위해 분향소를 차리고 추모촛불을 켰다. 한 60대 경비원의 사연이지만 정세균 국무총리가 직접 조문할 정도로 이번 죽음은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이번 사고는 경비원 최씨가 비좁은 주차장에 평행으로 주차된 가해자 심씨의 차량을 이동하면서 시작됐다. 최씨는 평행주차된 차량을 밀어 입주민들의 주차를 원할하게 해줬다.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가해자 심모씨는 "경비원 주제에 우리가 주는 돈으로 먹고 살면서 왜 하지 말라는 짓을 하느냐"며 폭언·폭행으로 일관했다. "상처 안나게 때릴테니 각오해", "후배 열 명 불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암매장 한다", "너 이 새끼 사직서 안 썼으니 100대 맞아" 듣기조차 민망한 조폭 수준의 폭언을 했다. CCTV가 없는지 확인까지 하고 화장실에 가둔 뒤 폭행했다. 경비원 최씨가 자신의 친형과 싸우다 코뼈가 부러진 것으로 허위 협박성 문자까지 보냈다. 막가파식 가해자의 행동에 국민적 분노가 들끓고 있지만 그는 아직껏 고인과 유족에 대한 사과 한마디 없다. 경찰 조사에서는 쌍방이라며 자신의 혐의도 부인했다. 가해자는 알만한 사회적 위치의 인사라 한다. 어쩌다 이런 괴물이 탄생했는지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경비노동의 가치'에 대해 되돌아봐야 할 때다. "경비원 주제에 주는 대로…"라는 심씨의 폭언은 경비 노동에 대한 명백한 하대와 경시다. 기름 떼 묻히는 공장의 노동자가 없다면 이 나라 이사회는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자동차 전자제품 의류 주택 스마트폰 등등 각종 공산품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이 사회는 돌아가지 않는다. 정작 사회를 사회답게 돌아가게 함에도 이들의 노동은 판검사에 비해 공무원에 비해 정신노동에 비해 하대받기 일쑤다. 아파트 입주민인 우리 자신도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경비원을 냄새난다며 멀리하지나 않았는 지, 나이 먹어 오죽하면 이런 일 할까라며 은근히 깔보지나 않았는 지, 비싼 관리비 들여 고용했더니 경비실에서 노는 것 아니야랄지, 우리 안에 '경비원 주제에'라는 심씨는 없는 지 생각해 볼 일이다.

경비원의 노동은 일반 노동자의 노동과 결코 다르지 않다. 일반 노동자들이 사업주에게 고용돼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댓가로 임금을 받듯이 경비원도 마찬가지다. 입주자대표자회의나 이들에 위탁 받은 업체에게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대가로 최저임금을 받는다.



제조업 노동자들은 공산품을 만들어 사회에 기여하고 경비 노동자는 주민의 안전과 쾌적한 주거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생산이 중단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듯 경비원들이 일손을 놓으면 아파트는 악취나는 쓰레기와 도둑들의 먹이감으로 전락해 주거문화는 크게 훼손된다. 경비 노동도 노동의 대상이 무엇이냐만 다를 뿐,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으며 인간 생활에 기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경비는 정년 퇴직한 60세 이상 노인 일자리의 대표 직종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의 고연령대 경비원은 25만명이며 이중 아파트 경비원은 16만명이다. 광주시는 아파트 1070개 단지에 4000명이 종사하고 있다.

광주시비정규직지원센터 '2019년도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참여자 304명의 평균 연령은 67세였고 '입주민으로부터 갑질 등 부당한 대우를 경험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25.7%가 부당대우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회수로 따지면 월 평균 2.5회다. 적잖은 경비원들이 입주민으로부터 부당한 대우(갑질)를 받고 있어 관계기관이나 입주자대표자회의측의 인식개선 활동이 필요하다. 아파트에 입주민 대다수도 어딘가에 고용된 노동자들이다. 직장이나 고객으로부터 "청소부 주제에, 노가다 주제에, 계약직 주제에, 운전기사 주제에, 은행원 주제에, 점원 주제에, 종업원 주제에…" 라는 하대와 경시를 받는다면 어떡할 텐가. 모든 노동자는 경비원처럼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 딸들이다. 모든 노동은 소중하며 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평행주차 해서 수고를 끼쳐드렸네요. 다음부터는 주의하겠습니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모두가 존중받는 생활공동체는 노동에 대한 올바른 인식으로부터 나온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