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위의 인생23-생명의 기운, 와디무집 계곡 어드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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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위의 인생23-생명의 기운, 와디무집 계곡 어드밴처
※ 차노휘
  • 입력 : 2020. 03.26(목) 14:24
  • 편집에디터

23-2. 와디무집 계곡 어드밴처, 물살에 누워서 몸 맡기기.

요르단은 관광국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지뿐만 아니라 가나안에 자리 잡은 나라여서 기독교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모세와 이스라엘인이 이집트 땅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향하면서 지나갔다고 하는 왕의 길, 모세가 죽었던 네보 산,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았던 요르단 강 등이 있다. 대다수의 요르단 사람들은 무슬림이지만 기독교와 유대교 유적지를 잘 보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비한 지형이 여러 곳이다.

《아리비아의 로렌스》 영화 배경이 되었던 와디럼의 광활한 사막에서의 사막 체험, 유일한 항구인 아카바에서 스쿠버 다이빙, 소금 호수인 사해에서 몸을 둥둥 띄우거나 머드 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요르단 관광지 입장료는 유독 비싸다. 페트라의 경우 내국인에게는 1디나르(2천 원 정도)를 받는 반면 외국인에게는 하루 입장료가 50디나르(10만 원 정도)나 된다. 비싸지만 꼭 둘러봐야 한다는 것이 페트라의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1. 페트라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 영화 배경이 된 페트라(그리스어로 바위라는 뜻)는 해발 950미터에 위치한다. 그 주위로 높고 가파른 암벽이 골짜기를 형성한다. 적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하고 모래 바람까지 막아주는 암벽, 물이 지나가는 자리이기까지 한 이곳을 기원전 400년에 유목민족 나바테아 인들이 자리 잡는다.

골짜기가 워낙 좁아 큰 규모의 건물을 세울 수 없자 이들은 자연환경을 이용한다. 암벽을 파고 들어가서 무덤과 주거지를 만든다. 암석은 파거나 조각하기 쉬운 사암이었다(현재까지 8km에 달하는 마을에 800개의 주거지와 무덤이 있다).

그 당시 나바테아 인들은 부유했다. 지중해 연안까지 여러 대상로를 장악했다. 무역 수입뿐만 아니라 페트라를 통해 이집트의 기자, 지중해, 시리아 등으로 가야 했던 대상들에게 통행료를 받았다(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 사이에 전성기를 누린다).

하지만 1812년 루트비히 부르크하르트가 이곳을 발견하기 전인 700년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무역로가 바뀌어서 쇠퇴하기도 했지만 요새와 같은 마을 입구 때문이기도 했다.

마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좁은 계곡을 지나가야 한다.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좁은 계곡을 시크(Siq)라고 한다. 밖에서는 그 입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입구부터 높이 100미터에 이르는 구불구불한 사암 절벽이 1킬로미터나 길을 덮칠 듯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르단에 있는 동안 페트라를 두 번 다녀왔다. 처음에는 우버 택시를 이용했다(150디나르 달라는 것을 130디나르로 조율했다). 차를 렌트한 뒤에는 직접 운전해서 한 번 더 갔다. 캔들 나이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캔들 나이트는 월, 수, 목요일 오후 8시부터 진행하는 일종의 이벤트이다.

캔들 나이트가 열리는 밤이면 마을 통로인 1km 시크뿐만 아니라 시크가 끝나는 암벽 사원 앞 광장까지 촛불을 밝힌다. 그곳에서 베두인들이 공연을 한다. 지금은 베두인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2. 와디무집

페트라와 비슷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와디무집(Wadimujib adventure)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여행 포인트이다. '와디'는 '협곡(계곡)'이라는 뜻이며 요르단 지명에 와디가 들어간 곳이 빈번하게 나온다. 그만큼 사막과 협곡이 많은 곳이 요르단이다. 하지만 와디무집 협곡 사이로는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진다. 그곳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와디무집 계곡 어드밴처다. 인터넷 검색으로 이곳을 알게 됐을 때부터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곳이기도 하다.

암만에서부터 쉬지 않고 2시간 동안 운전을 했다. 차량에 내비게이션이 부착되어 있지 않아 스마트폰 구글 맵을 보면서 한 손으로 운전했지만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와디무집 계곡 어드밴처 리셉션 데스크에 있는 직원은 내가 혼자라는 것을 문제 삼았다. 가이드가 동행하는 것이 낫겠다고 했다. 나는 망설였다. 익히 위험하다고 누군가가 포스팅해놓은 것을 읽었지만 체력은 자신 있었다. 하지만 물이 문제였다. 물 공포증이 있었다. 점심도 거르고 있었다. 만약 사고가 나면? 그래, 누군가가 있어야 해. 가이드 비를 물어보았다. 35디나르라고 했다(입장료는 21디나르). 입장료와 가이드 비 포함 50디나르로 하자고 하자 직원이 좋다고 말했다.

로컬 가이드와 동행한 것이 결과적으로 잘했다. 첫 단계는 물놀이하듯 얕은 계곡물이지만 오를수록 물살은 강해지고 수심이 깊어졌다. 내 키를 훌쩍 넘는 곳도 있었다. 암벽은 미끄러웠다. 미끄러운 암벽에 로프가 매달려 있거나 철 계단이 있었지만 만만치 않았다. 로프를 잡고 깊은 물을 통과해야 했고 물이 계속해서 쏟아지는 암벽에 걸쳐진 철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가이드가 도와주긴 했지만 내 체력도 쓸 만했다. 30분 만에 목적지에 당도했다. 너무 빨라 작은 폭포 물살에 마사지할 수 있는 포인트를 가이드가 알려주기까지 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폭포 안 공간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는 한참을 있었다. 가이드는 서둘지 않았다. 명상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다.

올라오는 길에 물살을 거슬렀다면 내려가는 길은 물살에 몸을 맡기면 되었다. 하지만 가이드는 내가 더 용기 내기를 바랐다. 철 계단이 나올 때면 그 옆, 들어가지 말라는 금지 팻말 밧줄 안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가 먼저 미끄러지듯 암벽을 타면서 하얀 포말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도 따라서 했다. 그렇게 하기를 두어 번. 가슴이 펑 뚫리면서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터트렸다.

가이드를 믿었기에 가능했다. 안전조끼도 든든했다. 가이드는 나 대신 방수 가방을 메었다. 거센 폭포수가 있어서 방수 가방은 필수다. 그 안에 휴대폰 등 중요한 것들을 넣었다. 중간지점에서는 사진도 찍을 수 없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처음과 끝 지점에서 가이드가 찍어 주었다.

수심이 얕은 마지막 계곡물에서는 하늘을 보고 누웠다. 자연스럽게 물살에 몸을 맡겼다. 그때 나는 좁은 협곡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 속으로 유유히 날아가는 새를 보았다. 내 몸이 가벼워지면서 어느새 나도 한 마리 새가 되어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작렬하는 태양과 적막한 풍경. 치명적인 푸른빛으로 빛나던 사해(Dead sea). 부서지지만 또 살아나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하얀 포말. 마른바람 속에서도 오랜 시간 우뚝 서서 견뎌내고 있는 협곡. 모든 것이 강인했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순간, 내 가슴속에서 꿈틀꿈틀 뭔가가 샘솟고 있었다.

내가 그곳에서 품은 생명력은 강인했다. 귀국하자마자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 해 겨울 스쿠버다이빙 다이브 마스터 과정에 도전했다. 마침내 다이브 마스터가 되었다. 물 공포증을 이겨냈던 것이다.

23-1. 와디무집 계곡 어드밴처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서.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23-3. 카즈네피라움(khazneh Fir'awn, 파라오의 보물). 페트라의 여러 유적 중 가장 걸작으로 꼽힌다. 암벽을 깊게 파서 건설했다. 나바테아 인들이 최전성기를 누렸던 아레타스 3세의 재위 기간(기원전 84~56)에 만들어졌다.

23-4. 시크 협곡은 높이 100미터의 가파른 사암 절벽 1킬로미터나 이어져 있다. 페트라는 이 시크를 통해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조건 덕분에 페트라는 오랫동안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23-5. 페트라에서 만난 베두인.

23-6. 페트라, 베두인 아이들은 어렸을 적부터 말이나 당나귀, 낙타를 탄다.

23-7, 캔들 나이트, 카즈네피라움 앞.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