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기록물, '국가지정기록물' 등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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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고려인 기록물, '국가지정기록물' 등재 됐다
고려인 연구가 김병학씨 소유 23편 등재 확정||1·2세대 육필원고…5·18다룬 희곡 ‘폭발’ 눈길
  • 입력 : 2020. 01.19(일) 18:11
  • 김진영 기자
고려인 문화예술 기록물 23편이 국가지정기록물로 등재됐다. 고려극장 음악희극 '농민유희'의 한 장면. 김병학씨 제공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 보관중인 고려인 문화예술 기록물 23편이 국가지정기록물 로 등재됐다.

등록된 기록물은 고려인 유명작가나 문화예술인들이 남긴 소설, 희곡, 가요필사본 등 육필원고 21권과 고려극장 80여 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첩 2권 등 총 23권이다.

그간 민간차원에서만 관리돼왔던 고려인 기록물의 역사적 가치를 정부에서 인정한 첫 사례다. 기록물은 올해 개관하는 고려인 역사유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작품의 소장자이자 고려인 연구가 김병학씨는 "고려인 문화예술 기록물은 구소련 사회에서 숱하게 민족수난을 겪으면서도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는 민족의식이 담겨있다"며 "고려인들의 생활상 및 공연 실제 모습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희곡문학사와 연극사면에서도 희소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23권 '고려인기록물' 등재

이번에 등재된 '고려인 문화예술 기록물'은 고려인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고려인 1·2세대 한글문학작가 김기철·김해운·한진의 육필원고 19권과 고려인 구전가요가 수록된 창가집 원고 2권, 고려극장의 활동을 알 수 있는 앨범 2권 등 총 23권의 기록물이다.

김기철은 고려인 1세대 한글문학작가 중 가장 아름다운 문체를 구사한 작가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0년 '붉은 별들이 보이던 때', '금각만'등 작품을 통해 고려인 독립투사들이 일본인들과 항일 투쟁하는 과정을 담았다.

자신의 희곡 8편이 등재된 극작가 김해운은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와 1939년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에서 설립된 조선극장의 창단멤버다. 1950년에는 사할린으로 건너가 조선극장을 크게 중흥시킨 인물이다.

그는 1932년부터 1959년까지 블라디보스토크와 타쉬켄트, 사할린이라는 각기 다른 장소의 고려극장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희곡작품을 남겼다.

1935년 5월12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초연된 연극 '동북선'을 비롯해 1948년 타쉬켄트 조선극장 무대에 오른 '생활', 1957년 사할린 조선극장에서 공연된 '장화와 홍련' 등 당시 소련의 각 우리말극장들을 대표하는 희곡들이다.

특히 '동북선'은 격렬한 항일노동운동을 다루고 있으며 지금까지 작품의 제목만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다 최근 김병학씨에 의해 발굴됐다.

유일하게 5·18 다룬 작품도 포함

9편의 작품을 등재목록에 올린 극작가 한진은 탁월한 고려인 2세대 한글문학작가이자 고려극장의 유일한 프로극작가로 1964년부터 1993년까지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에서 활동했다.

그는 미학적으로 세련된 희곡작품을 생산함으로써 고려극장의 전반적 연기수준을 한 단계 높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희곡 '산부처'(1979년)는 소련문화계의 큰 주목을 받아 두 차례나 모스크바 초청공연이 이뤄졌으며 희곡 '폭발'(1985년)은 소련 고려인이 생산한 모든 장르의 문학작품을 통틀어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주요사건으로 다룬 유일한 작품으로 남아있다.

또 중편소설 '공포'(1989년)는 고려인 강제이주의 참상을 가장 실감나고 적나라하게 묘사한 최초의 고발작품이다.

전명진·리알렉산드르 고려인 창가집은 고려인 구전가요가 수록된 가장 오래된 창가집 중 하나다.

사진기록물로 등재된 고려극장 사진첩 2권은 1932년 고려극장 창단 이후부터 2000년 무렵까지 고려극장이 무대에 올린 각종 연극과 배우들의 활동상황을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는 260여장의 풍부한 자료사진으로 이뤄져 있다. 고려극장은 193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설립돼 현재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으로 그 명맥이 어어져 오고 있는 세계 최초의 우리말 전문연극극장이다.

고려인 예술적 발자취 담겨

등재된 작품들은 항일운동 민족사와 모국어 운동사, 고려인들의 역사에 중요한 연결고리를 담고 있다.

김병학씨는 "우즈베키스탄 조선극장은 1939년 설립돼 1950년 문을 닫았고, 사할린 조선극장은 1948년 설립돼 1959년 문을 닫았다"며 "그러나 극장이 있었다는 사실과 증언만 남아있고 희곡작품은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는데 이번에 등재된 작품들이 당시 무대에 올랐던 작품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려극장은 고려인의 애환과 향수를 달래주는 한편 모든 극을 조선말로 해 고려인의 전통과 문화, 언어를 지키고 보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이러한 활동 모습을 담은 기록물을 통해 당시 고려인의 예술적 발자취를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국가기정기록물 추가 등재를 위해 힘쓰는 한편 소유중인 1만여점의 고려인 관련 유물을 려인마을에 기증할 계획이다.

김씨는 "이번에 등재된 작품들 뿐만 아니라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작품들을 국가지정기록물로 추가 등재할 수 있도록 정리 중이다"며 "소유 유물은 고려인마을과 공동소유하는 과정을 거쳐 궁극적으로 기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진영 기자 jinyo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