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18> 밀렌드 가족과의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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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18> 밀렌드 가족과의 이별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입력 : 2020. 01.09(목) 14:08
  • 편집에디터

18-1. 개구쟁이 미나(가운데)는 나를 볼 때마다 못살게 군다. 오른쪽은 케럴.

1) You are my sister.

두 번째 밀렌드 집을 방문했을 때는 그의 부모님이 정식으로 나를 초대했다.

사무실에서 밀렌드를 만나 지하철을 10분 타고 내려서 툭툭이를 탔다. 툭툭이 기사가 어찌나 외국인인 나를 째려보는지… 그는 밀렌드가 외국인 요금이 아니라 현지인 요금을 낸다고 하니깐 가는 내내 바가지요금을 씌우지 못한 것에 대해 투덜거렸다. 그의 억양과 힐끔 거리는 표정으로 충분히 상황을 짐작했다. 밀렌드도 한 치도 밀리지 않고 대거리를 했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물건 흥정을 이렇게 배우는지도 모르겠다.

이틀 전 밀렌드와 그의 형 미나와 번화가에 간 적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허락했다. 나는 저녁 9시가 지난 시간이었지만 은근히 현지인과 외출하는 것에 기대를 했다. 운동을 좋아하는 대학생 미나는 노련했다. 택시 흥정부터가 달랐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택시를 떠올리면 안 된다. 그것은 그나마 외국인이나 돈 있는 사람이 탄다. 굴러가기만 하면 도로로 모두 자동차를 끌고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폐차장으로나 가야 할 차가 택시로 둔갑한다. 한 팀만 태우는 것이 아니다. 자리가 다 찰 때까지 합승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나는 고물차에 타기 전부터 흥정을 시작했다. 무시할 것은 아예 무시를 했다. 뒷좌석에 앉을 경우에는 다른 손님들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듯 둘은 나를 가운데에 앉혔다.

모스크가 있는 앨 모어즈 딘 알라 앨 팟미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모스크를 중심으로 상점들이 이어졌고 거리마다 환한 등을 밝힌 상점은 길가에 상품을 내놓았다. 정찰 판매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흥정은 기본이다.

흥청거리는 거리로 미나가 나를 끌고 갔다. 그는 길가 상점에서 목걸이 하나를 샀다. 목걸이 펜던트 글자가 아랍어로 '노라'라는 거였다. 외국 여행을 할 때면 외국인이 '휘' 자 발음을 어려워해서 종종 'Nora'라는 애명을 사용하곤 한다. 내 애명과 같은 노라라고 적힌 목걸이를 내게 선물해주고는 둘은 아주 흡족하게 웃었다. 돌아가는 길, 환율 차이가 있으니 택시비 등은 내가 지불해도 부담스럽지 않다고 했는데도 미나가 한사코 거절한다. 그러면서 "You are my sister."이라고 말한다. 죽일 놈, 내 나이가 몇인데?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나는 속없이 좋아서 웃었다.

철저하게 나는 미나의 누나가 아니라 여동생이 되었다. 밀렌드와 툭툭이를 타고 집에 도착하자 미나가 나를 아예 대놓고 장난을 쳤다. 장난이 심할 때면 그를 협박하곤 했는데 실은 그의 은밀한 비밀을 알고 있었다.

첫째인 케럴은 진지하다. 형편이 되면 독일 유학을 가서 독일 회사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등 명문 이공대학 학생처럼 앞으로의 거취에 대해 고민한다. 둘째 미나는 인생 자체가 삶의 선물인 듯 유쾌하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에 낀 반지를 내게 자랑한 적이 있다. 감을 잡은 나는 여자 친구 사진 좀 보여 달라고 했다. 그는 비밀을 들킨 것에 당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워했다. 여자 친구 사진을 내게 보여주고는 걱정스럽게 아버지한테는 비밀이라고 했다. 여자 친구가 있는 것을 아는 한 자신은 죽음이라고 했다. 나는 이런 그의 약점을 이용하여 장난이 심할 때면 여차하면 그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눈치를 줬다.

2) 이집트 음식

두 번째 방문은 첫 번째와 느낌이 달랐다. 그의 가족이 사는 맨션 골목은 삶의 냄새로 가득 차 보였다. 작은 슈퍼 앞에 진열된 상품도 어두운 1층 조도 낮은 이발소도 낡고 작은 수선집도 골목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까지도… 그리고 밀렌드가 구경시켜주었던 옥상을 이번에는 미나와 그의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올라갔다. 닭뿐만 아니라 비둘기 사육장이 있었다.

이집트는 95퍼센트가 사막이지만 나일 강변 기름진 땅은 야채와 곡물을 재배할 수 있다. 이집트 음식은 기본적으로 콩을 비롯한 야채를 많이 사용한다. 나일 강 유역에서 수확한 질 좋은 야채와 지중해에서 온 올리브, 홍해와 지중해에서 직송되는 해산물이 이집트인들의 식탁을 풍성하게 한다. 또한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지리적 위치로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한다. 음식 또한 레시피가 다양하다.

그중 비둘기 요리인 마흐시 하맘(mahshi hamam)이 있다. 몸통을 발라 그 안에 향신료와 쌀, 허브 등을 넣어서 실로 꿰맨 뒤 올리브기름을 발라 오븐에 구워내는 고급 음식이다. 이집트인들에게는 정력제로 알려져 있다. 나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먹어본 적이 있다.

밀렌드 가족은 음식 재료인 비둘기를 사육하고 있었다. 미나와 아버지는 나를 위해 사육장 문을 열어서 비둘기를 날렸다. 파드득, 하얀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는 비둘기는 공중에 떠 있는 연 사이로 사라졌다. 암컷이 있으니 다시 날아온다고 했다.

3) 짧은 시간 동안 든 정

통통한 몸집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밀렌드 어머니는 한 옥타브 목소리를 높여서 나를 불렀다. 음식 솜씨도 뛰어났다. 무엇보다도 진짜 이집트 위스키를 내놓았다. 하도 내가 위스키, 하고 노래를 불러서인 줄도 모르겠다. 잘게 자른 과일에 부은 위스키는 달콤하면서 목 넘김이 좋았다. 나는 밀렌드 아버지와 각자 한잔씩(이미 한 잔 마신 뒤다) 마셨다. 한 잔을 다 들이켠 그가 위스키를 마시면 춤을 춘다고 했다. 술을 마시면 춤을 추듯 행동한다는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 그들은 춤을 추었다.

잘 생기고 모범생인 아들 셋!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 정말 음악 틀어놓고 방방 뛰면서 몸을 흔들었다. 아, 이들의 못 말리는 열정(사진은 못 찍었다)… 춤판은 밀렌드 아버지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가서도 이어졌다. 결혼식장에 간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알아도 샌들을 신었을 것이다. 옷이 두 벌밖에 없으니 말이다. 어쩌랴, 그곳에서도 샌들 신고 땀 냄새 풍기며 열심히 춤출 수밖에.

결혼식장 유쾌한 분위기와 달리 나는 착잡했다. 이들 가족과 곧 헤어져야 한다. 다음날 사막투어를 떠난다. 카이로에서 차로 다섯 시간 걸리는 곳에 있다. 그 다음날 밤늦게 돌아오지만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아침 6시 30분 요르단 암만으로 향하는 비행기 예약이다. 새벽 3시에는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니깐 잠잘 시간도 없다. 결혼식장을 나서면 밀렌드 가족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사막 투어에서 돌아와서 여행자를 가족처럼 대해줬던 밀렌드 가족의 배웅을 받으면서 공항으로 출발했다. 자정이 지난 시간에 그의 집에 방문했는데도(굳이 밀렌드 아버지가 그의 아내에게도 작별 인사를 했으면 했다) 음식을 차려주었다.

6개월 뒤 다합에서 스쿠버 다이빙 다이브 마스터를 딴 뒤에는 일부러 카이로를 방문해서 이들 가족을 만났다. 사람이 좋으면 먼 거리도 가깝기 마련이다. 모든 거리는 마음이 정한다는 것을 밀렌드 가족을 만나면서 새삼스럽게 알았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18-2. 앨 모어즈 딘 알라 앨 팟미 거리의 모스크가 있는 풍경.

18-3. 밀렌드 형제는 내게 요 괴상한 것을 씌워놓고 낄낄거렸다.

18-4. 밀렌드 어머니가 차려준 음식과 위스키.

18-5. 결혼식장. 신랑신부는 밤새도록 춤을 춰야할 것 같았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