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15> 이라크 청년 이즈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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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15> 이라크 청년 이즈마엘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입력 : 2019. 11.28(목) 13:40
  • 편집에디터

15-1. 이라크 청년 이즈마엘을 처음 만났을 때.

1) 이집트 사람만 아니면 되었다

이즈마엘과의 만남은 극적이다.

박물관 프리 해설가와 헤어지고 나서 2층에 있는 화장실을 찾았다. 몸과 마음을 비우고는 박물관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새로운 기분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부터 꼬였다. 공항 화장실에서는 늙은 여자가 지키고 있으면서 푼돈을 받았다. 박물관 화장실도 히잡 쓴 젊은 여자 셋이 입구에 서 있었다. 나는 얼마냐고 물었다. 세 여자는 그냥 까르르 웃기만 했다. 재차 물었다. 그녀들은 입을 가리면서 또 웃었다. 아마도 영어를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나는 듣든 말든 그럼 공짜라는 거지? 하고는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 발에 힘이 풀렸다. 이 건물 밖을 나가면 어떤 일이 또 기다리고 있을까. 도저히 정을 줄 수 없는 도시였다. 가벼운 현기증이 일었다. 계단참에서 그만 발을 헛디뎠다.

넘어지면서 뒤늦게 신음을 뱉었다.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지만 자존심상 잡을 수는 없었다. 괜찮다고 하면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일어섰다. 내밀었던 손이 들어갔다. 돌아서려는데 갑자기 미안했다. 친절을 발휘한 사람의 얼굴이라도 봐야 했다.

이집트인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의 얼굴빛이 달랐다. 실은 이집트 사람만 아니면 되었다. 그들 모두가 사기꾼처럼 보였으니깐. 손을 뿌리쳐서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하면서 그가 앉아 있는 계단에 앉았다.

2) 뒷모습도 눈여겨보다

이집트도 관광국이다. 그때까지도 외국인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배낭 여행객과 무리 지어 다니면 이들의 손을 덜 탈 것 같아서 내심 외국인 관광객을 찾고 있었다.

그는 이라크 출신이었다. 다행히 영어로 대화가 가능했다. 나는 전날부터 겪었던 일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와도 초면이었다. 상대가 아군인지 적군인지부터 파악해야 했다.

그는 조용조용 말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긴 속눈썹까지 깜박일 때는 그의 옆모습이 우수에 젖어드는 듯했다. 상당히 아름다운 얼굴에 점잖은 성품을 지녔다는 것을 몇 분 만에 알 수 있었다. 경계심만은 풀 수 없었다. 그는 다음 행선지를 내게 물었고 자연스럽게 박물관 인근 나일 강으로 향했다.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나일 강은 햇살에 수면이 은빛으로 빛났다. 은빛 비늘 위로 조각배 한 척이 한가로이 떠 있었다. 강변에는 플라스틱 의자를 내놓고 차를 팔았다.

우리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차를 주문했을 때(그가 권했다) 얼굴이 시커먼 소녀가 와서 푼돈을 요구했다. 그는 생각과 달리 나일 강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소녀를 모른 척했다. 소녀가 가자 그가 말했다.

"저 소녀에게 돈을 주면 말이야, 어떤 일이 벌어지는 줄 아니? 그녀가 잔뜩 다른 아이들까지 데리고 올 거야. 여행객인 너는 더 조심해야 해."

그의 말이 내 말의 포문을 열게 했다. 나는 그동안 불만이었던 것들을 털어놓았다. 이집트 해설가부터 도마에 올렸다. 그는 끝까지 다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내게 한 마디 건넸다.

"네가 열흘 이곳에 머문다고 했지? 열흘 정도면 이곳 사람들을 다 알지 못할 거야. 1년 머문 나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거든."

내 솔직한 심경도 밝혔다.

"알아. 나도 이들을 오해할까 싶어 늘 그들의 뒷모습까지 눈여겨보고 있는 걸."

그와 걸었을 때도 이집트 사람들의 상술은 변함이 없었다. 동행이 있어도 외국인은 무조건 표적의 대상이 된 듯했다(그가 나를 숙소까지 걸어서 데려다주면서 하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다들 우리만 쳐다보지? 네가 외국인이어서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그 거리는 관광지가 아니었다. 동양인 여자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을 것이다). 어떤 이는 커플이라고 생각했는지 그에게 장미꽃을 사라고 안겼다.

오페라하우스를 보기 위해 다리를 건널 때 만난 60대 아저씨는 더 가관이었다. 그는 자신을 의사라고 밝혔다. 서울에 온 적도 있단다. 오지랖 넓게 대뜸 다음날 저녁에 딸이 결혼한다면서 처음 보는 우리를 초대했다. 급기야 다리를 다 건넜을 때는 차 한 잔 마시고 가라면서 끌었다. 아들 내외가 운영하는 상점이었다. 낌새가 이상했다. 나는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고 들어가자마자 선을 그었다.

그는 내 이름과 파피루스 그림 중에 어떤 것이 마음에 드는지를 친절하게 물었다. 나는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재차 말했지만 그곳에 내 이름을 적고는 한사코 사양하는 내게 1달러만 달라고 했다. 나는 내 고집을 꺽지 않았다. 이즈마엘은 작은 향수 한 병을 사서 들고 나왔다. 상기된 내 얼굴과 달리 그는 온화했다.

그는 나일 강변에서 마셨던 찻값도, 무작정 상인이 안겼던 장미꽃과 저녁 식사비용까지 지불했다. 내가 계산한다고 해도 그가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중동에서는 말이야, 이것이 여자를 보호해야 할 남자의 의무 중 하나야."

"그리고는 여자의 무조건적인 복종을 원하지? 난 거절이다. 그런 보호보다는 자유가 좋다, 자유!"

내가 대거리했다. 그는 웃고만 있다가 물었다.

"내일은 어딜 갈 거니?"

"가자 지역. 피라미드. 왜? 너도 가려고?"

"응."

나는 앞서 걷다가 뒤돌아보면서 물었다.

"너는 왜 'NO'라는 말을 못 해? 그것도 중동 남자들의 의무니?"

3) 이라크라는 국적에 묶인 그

바그다드에 있는 그의 할머니 자택이 이집트 박물관보다 더 넓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그. 경찰 서장 아버지와 예술 학교 선생인 어머니. 그가 이집트로 왔을 때는 개인 선생(상당히 나이가 지긋한)과 함께였다. 그는 시종일관 선생에게 보고를 했다. 그는 배우였다. 아트스쿨에 1년 교환 학생으로 왔고 일주일 뒤 귀국이었다. 이집트 생활을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박물관에 다시 들렀을 때 나를 만난 거였다.

그는 고전과 코란을 제대로 공부했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화에 심취해 있었다. 섬세하고 여린 감수성은 이라크라는 국적에 묶여 그를 시종일관 우수에 잠기게 한 듯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어떤 중동 남자들 보다 기품이 있었던 그를 몇 번 더 만나게 된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사진 설명

15-1. 이라크 청년 이즈마엘을 처음 만났을 때.

15-2.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즈마엘 얼굴 중 하나. 그가 직접 분장했단다.

15-3. 나일 강의 낮 풍경.

15-4. 나일 강의 밤 풍경.

15-5. 작은 상점과 중동 여인.

15-2.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즈마엘 얼굴 중 하나. 그가 직접 분장했단다.

15-3. 나일 강의 낮 풍경.

15-4. 나일 강의 밤 풍경.

15-5. 작은 상점과 중동 여인.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