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가운데)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12일 서울 용산구 본사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1946년 고(故) 박인천 창업주가 중고택시 2대로 시작해 한때 재계 순위 7위까지 올랐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무리한 사세 확장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이번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존재감을 잃게 됐다.
재계순위 28위서 80위권 밖으로
매각 주체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으로 그룹 재건을 도모한다는 방침이지만, 아시아나를 떼어내고 나면 재계순위가 28위(2019년 기준)에서 80위권 밖으로 밀려나며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고속→금호산업→아시아나항공→아시아나IDT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아시아나항공은 그룹 전체 연간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핵심 중의 핵심 계열사로, 아시아나항공 매각 후 금호그룹에는 금호고속과 금호산업 외에 남는 계열사가 거의 없게 된다.
매출액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금호아시아나그룹 매출은 별도재무제표 기준 9조7329억원이었다. 이 중 아시아나 항공이 기록한 매출액이 6조2012억원으로 63.7%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금호산업과 금호고속이 기록한 매출액은 각각 1조3767억원, 4232억원에 불과했다.
금호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자회사 에어부산, 에어서울, 아시아나 IDT, 아시아나에어포트, 아시아나세이버, 아시아나개발 등을 함께 통매각한다는 방침이라, 매각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덩치는 작아지고 그룹 전체 매출에서 70% 이상이 빠지게 된다.
자산 규모도 축소된다. 지난해 말 아시아나항공의 별도 자산은 6조9250억원으로 그룹 총자산 11조4894억원의 60.3%를 차지했다. 금호그룹에서 아시아나항공 하나만 빠져도 그룹 자산 규모는 4조원대로 쪼그라든다.
1946년 택시 2대로 시작…한때 재계 7위
고(故) 박인천 창업주는 중고 택시 2대로 그룹의 모태인 광주택시를 1946년 4월7일 설립했다. 이후 1948년 광주여객자동차란 이름으로 운수업을 본격화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88년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키고 2006년 대우건설과 2008년 대한통운을 인수하며 몸집을 불려, 당시 그룹 자산 규모 26조원으로 재계 순위 7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무리한 사세 확장으로 타격을 받았다. 6조6000억원에 대우건설을 인수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돈줄이 막혔다. 유동성 위기에 급기야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되파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행히 2014년 각 계열사는 워크아웃(금호산업·금호타이어)과 자율협약(아시아나항공)을 졸업했지만 이번에 금호아시아나그룹 매출의 64%를 차지하는 아시아나항공이 팔리면서 금호아시아나는 금호고속과 금호산업만 남는 중견기업으로 쪼그라들게 됐다. 자산 규모는 3조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저비용항공사 등 자회사도 매각될까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이 선정된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인 저비용항공사(LCC) 에어부산의 재매각 가능성도 부상하고 있다. 이번 매각은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도 모두 함께 파는 통매각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각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 측이 향후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를 재매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거나, 이를 준수하지 못하면 2년 내에 처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은 △에어부산(아시아나항공 보유 지분율 44.2%) △아시아나IDT(76.2%) △아시아나에어포트(100%) △아시아나세이버(80%) △아시아나개발(100%) △에어서울(100%) 등 6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마무리 지으면 지배구조는 'HDC→HDC현대산업개발→아시아나항공→에어부산·에어서울' 순으로 재편된다.
아시아나항공이 HDC의 손자회사,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이 증손회사가 된다. 즉,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도 모두 보유하려면 나머지 지분도 인수해 보유 지분율을 100%로 끌어올려야 한다.
HDC현대산업개발 입장에서는 나머지 지분 매입을 위한 추가 비용을 부담하거나, 일부 자회사 재매각에 나서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인수전이 완료되기 전, 협상 과정에서 일부 자회사가 재매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산은 측은 '통매각' 원칙을 밝히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분리 매각이 가능하다고 여지를 남긴 바 있다.
한편, 총수일가의 향후 거취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매각이 완료되면 그룹에는 금호고속, 금호산업 등 2개 계열사만 남게 된다. 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자녀인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과 박세진 금호리조트 상무의 향후 행보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박간재 기자 kanjae.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