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트로이카는 제각기 지닌 남다른 개성으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지만 윤정희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들이 처음으로 함께 출연한 영화가 '팔도기생'(김효천 감독·1968년)이다. 흥선대원군이 조선의 8도 기생을 불러 모으는 이야기다. 여기서 윤정희는 사실상의 주인공인 진주 기생 '남흥' 역을 맡았다. 조연이 되고 만 김지미·남정임·문희는 자존심이 상했을 법도 하다. 1971년 남정임, 1972년 문희가 결혼과 함께 은퇴한 이후에도 윤정희는 홀로 남아 50년 간을 현역 배우로 활약했다.
1944년 광주에서 태어난 윤정희(본명 손미자)는 22세 때인 1966년 친구의 권유로 보게 된 신인 배우 오디션에서 무려 1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다. 그해 영화 '청춘극장'의 여주인공으로 은막에 데뷔해 단박에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한국 영화의 맥을 잇는 '안개' '분례기' '석화촌' '무녀도' 등의 여주인공은 그녀 몫이었다. 윤정희는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만 24회를 수상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녀는 인기 절정이던 1972년 돌연 프랑스로 떠난다. 당시 세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좋아해 육영수 여사가 파리로 보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한 그녀는 1977년 북한으로 납치당할 뻔한 사건도 겪었다.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윤정희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딸과 동생도 구분하지 못한다니 안타깝다. 남편 백건우에 따르면 이미 10여 년 전부터 증상이 있었다고 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서 치매 걸린 '미자' 역을 맡아 15년 만에 영화에 복귀했을 무렵이다. 화려한 '은막의 여왕'과 알츠하이머는 어울리지 않는다. 전남일보 논설위원실에서는 그녀가 여고 시절을 보낸 전남여고 교정이 훤하게 내려다 보인다. 만추의 계절, 교정에 쓸쓸하게 노오란 은행잎이 지고 있다.
박상수 주필 sspark@jnilbo.com
박상수 기자 ss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