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나눔은 서로 만나서 주고받는 공감의 선물입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 스페셜

"나눔은 서로 만나서 주고받는 공감의 선물입니다"

자선냄비로 ‘큰 사랑’ 전하는 구세군 김영애·임양술씨 부부

게재 2018-12-03 18:24:47
김영애 구세군.
김영애 구세군.

'딸랑딸랑~딸랑딸랑'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세밑은 구세군 자선냄비와 함께 찾아온다. 바쁜 일상에 잊고 살아왔지만, 거리에 빨간 자선냄비가 등장하고 구세군 종소리가 울리면 사람들은 비로소 가는 세월을 실감한다. 추위 속에 살아가는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는 것도 이때다. 40여 년 넘도록 구세군 자선냄비를 따라 자원봉사 활동을 펼쳐 온 구세군 광주 본영 김영애(69) 가정단장과 남편 임양술(70) 씨도 마찬가지다. 이맘때만 되면 그들은 따뜻한 마음을 상징하는 구세군의 붉은 외투를 입고 날마다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찾아 거리로 나선다. 모두가 힘겹고 어려울 때, 서로 나누는 마음에서 행복을 찾겠다는 일념 때문이다.

김 단장은 지난 1977년 구세군에 들어와 올해로 41년째 거리에서 자선냄비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구세군의 직급 가운데 하나인 가정단장은 일반 교회의 장로역에 비교할 수 있다. 남편 임양술 씨와 올해 47세인 큰 딸 등 그의 가족들도 평생 그와 같은 길을 걸어왔다. 특히 남편 임 씨는 생업인 중장비를 운전하는 틈틈이 자선냄비를 지키고 차량 봉사를 하는 등 궂은 일을 도맡아 김 단장에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작은 나눔으로 큰 사랑을 만들어 가겠다'는 게 이 부부의 가장 큰 바람이다.

1950년 장흥에서 태어난 김 단장이 구세군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대 후반 셋째를 낳고 나서부터라고 한다. 난산으로 심하게 앓아누워 있을 때 구세군 윤학원 사관 동부인을 만나 정신적으로 많은 힘을 얻었고 봉사에도 눈을 떴다는 것이 김 단장의 설명이다. "어릴 때 정미소집 딸로 자라면서 무엇이든 이웃에게 퍼준다며 어머니에게 엄청 꾸지람을 들었어요. 아마도 천성인 것 같아요. 구세군을 떠나서 지금도 내 집에 오는 사람은 그냥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살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김 단장에게 나눔의 의미가 거창한 것도 아니다. 스스로 우러나와서 하는 자발적인 행동인 만큼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누구와 경쟁하거나 비교하지도 않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이라는 것이 김 단장이 말하는 나눔의 의미다. 내가 지닌 재능이나 여유로움에 대한 감사이기도 하다. "밥하고 음식 만들고, 빨래도 하고…눈을 뜨고 마음을 열면 누구나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아요. 나는 그중의 하나를 남들보다 좀 더 빨리 찾아냈을 뿐입니다."

나눔에 대한 철학도 명확하다. 나눔이나 봉사가 일방적으로 누군가를 돕는 것이 아니고 서로 만나서 주고받는 공감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구세군 표어 중에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말이 있어요. 손길은 관심입니다. 만나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봉사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의 하루는 매일 봉사의 연속이다. 연말이면 자선냄비를 통한 모금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평상시에는 독거노인들의 생활을 돌보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그나마 쉬는 날에는 음식을 만들어 노인정이나 주변 장애인을 찾아간다. 노인, 장애인, 어린이 등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녀 광주 시내 복지시설이라면 모르는 곳이 없을 정도다.

구세군에서도 그는 노인들을 위한 식사 봉사 등으로 잠시의 쉴 틈이 없다. "누구나 어려운 게 세상사 아닙니까. 자기 생각대로 살아지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힘든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모든 분을 동생같이 언니같이, 우리 어머니같이 대합니다. 그분들을 돌보는 것도 내가 어려워지면 나도 누군가가 이렇게 도와줄 것이라 생각하고 할 때가 많죠. 해드린 음식 맛있게 드시면 뿌듯하고, 제가 발품 팔아 도와드리면 시원해하시고, 그분들 보면 제 배 부른 것 같고 제 등 시원한 것 같고 해서 이렇게 삽니다."

40년 봉사 활동을 하는 동안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까지 구세군 생활을 회상해 달라는 질문에도 김 단장은 잠시의 망설임 없이 '힘들었다'고 했다. 추운 날씨에 덜덜 떨면서 종일 선체로 사랑의 종을 흔드는데 시민들이 본체만체할 때는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단다. 찬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종일 자선냄비를 지켰는데 모금액이 몇만 원이 채 되지 않을 때는 좌절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지나가던 한 시민이 악의적으로 자선냄비에 담뱃불을 넣어 절망감도 맛봤다. "그때는 정말 큰 충격이었어요. 세상을 어찌 그렇게 사나. 독선적이고 편협한 사고에 얽매인 듯한 그들을 위해 항상 기도하지만 지금도 서운함이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 저도 아직 공부를 더 해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를 다시 현장에 서도록 만드는 힘은 시민들이 보여준 작은 사랑이다. "추운 겨울 자선냄비 앞에서 종을 흔드느라 손이 얼어붙었는데 지나가던 여학생이 군고구마를 손에 쥐여주고 가더라고요. 구세군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훈훈하고 행복한 경험을 하지 못했을 텐데.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몰라요."

10년 가까이 매년 수표로 100만원씩 기부하던 이름 모를 시민, 행색이 남루해 오히려 자신이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시민이 부끄럽다며 구겨진 지폐를 기부하던 모습, 장애인이 거리에서 구걸한 돈을 모두 자선냄비에 넣고 가던 모습들도 그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이다. 길거리에서 온종일 시주한 것으로 보이는 노스님이 시주받은 모든 것을 기탁했던 순간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랑과 나눔은 이 세상 어떤 것보다 귀하고 큰 가치입니다. 구세군 자선냄비를 통해 이 가치의 소중함을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과분한 행복입니다."

앞으로의 계획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오랫동안 꿈꿔온 그의 소망이다. "자선냄비가 가진 가치 중 하나는 모금 봉사나 모금에 동참하는 모두 어떤 차별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세군은 빈부격차, 남녀노소, 지역, 인종, 종교를 초월해 누구나 참여할 할 수 있도록 문이 열려 있습니다. 모금된 성금의 배분도 어떤 차별을 두지 않고 공정하게 배분됩니다. 거창한 것 같지만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배곯지 않고,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면서 구세군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오는 8일 첫 시종식을 앞두고 마지막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던 지난달 25일 충장로우체국 앞에서도 그는 당당하고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이었다. "사회가 어려울수록 자선냄비는 더욱 활활 타올랐습니다. 올해도 많은 시민이 '힘들고 어렵다'는 말보다 희망과 꿈을 얘기하고 기적을 만들어 줄겁니다. 저와 구세군은 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믿습니다."